앙코르 유적지에서 지우에게

프란지파니 꽃과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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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미(gracecho)등록 2012.06.14 11:33
앙코르 유적지를 다니려면 툭툭이나 자동차, 자전거 같은 이동수단이 필요해. 여러 사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그 사이를 이동하는 데 걸어가기엔 멀거든. 난 첫 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엉겁결에 자동차를 이용하게 되었어. 차는 편리하지만 호젓함과 느림의 여유가 없지. 기사는 나를 공항에서 픽업했던 살리라는 남자야. 나에게 끈질기게 사흘동안 자동차를 타라고 했지만, 난 나머지 이틀은 다행히 툭툭으로 바꾸었어. 훨씬 저렴하고 또 오토바이 뒤에 수레를 매단 것처럼 생긴 거라 오픈되어 있어 바깥을 잘 볼 수 있어. 종종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여행객들을 보았지만 나같이 방향감각이 없는 사람에겐 미션 임파서블이야.

일몰을 보러 프놈 크롱에 올랐을 때, 한국에서 온 일가족을 보았어. 남매 중 큰아이는 너랑 비슷하며 초등 고학년쯤 되어 보이더라. 일몰을 기다리면서도 끝없이 간식을 먹어대는 그 아이를 보며 지우 생각이 나지 뭐야. 같이 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어.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 그런 것들은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지는 걸 보니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며, 지우는 어떻게 느낄까 궁금하기도 했어.

아이들 이야기를 해줄까. 여기는 유명한 관광지라 엽서나 기념품을 들고 파는 어린아이들이 많아. 까맣게 지저분한 아이들이 1달러짜리 엽서 열장, 팔찌, 생수 2개 등등, 그런 것들을 많이 팔아. 스카프도 팔고 옷도 팔고, 자기네 가게로 오라고 유인도 하고… 주로 너만한 초등학생들이야. 끈질기게 따라오며 엽서 등을 사달라고 하다가 계속 고개를 가로저으면 "그럼, 마담, 나중에 나올 때 꼭 좀 제게서 엽서를 사주세요, 꼭 저에게 사주셔야 해요"하고 간절히 말하곤 하지.

동메본에서 비가 많이 내렸어. 점심도 먹을 겸, 비가 소강상태가 되길 기다리며 낡은 식당에 잠시 앉아서 볶음밥을 먹었어. 옆에는 서양인 커플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두 여자아이가 그 옆에 끈덕지게 붙어서 엽서를 팔려고 했어. 결국 서양여자가 하나를 샀어. 그랬더니 두 여자아이 중 어린 여자아이가 엽서를 팔지 못해서 구석에서 울기 시작하는 거야.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쓴 커피를 마시던 내가 다 난감해졌지. 그래서 그 7살짜리 아이에게서 엽서세트를 샀어. 비 오다가 갑자기 개는 캄보디아 우기 날씨처럼 아이는 어느새 명랑해져서 내가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썩은 앞니를 훤히 드러내며 웃더라. 지우라면 1달러짜리 엽서세트를 많이 샀을 것 같아. 그렇지 ?

바꽁에서도 구걸과 호객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어. 비오는 바꽁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는데 한 소녀가 비에 젖은 붉은 꽃을 내밀더라. 무심코 꽃을 받아드니 이번엔 풀을 엮어서 만든 풀반지를 내밀고 "원 달러"를 달라고 해. 나는 꽃을 거절했어. 그제야 몇몇 소녀들이 꽃을 여행객들에게 내미는 것이 보였어. 늙은 미국 여자가 남편과 다니다가 풀반지를 샀는지 손가락에 낀 것을 보았어. 그러나 대부분은 나처럼 "No"라고 하지.

비가 더 거세어졌어. 멀리서 소년이 하얀색 프란지파니 꽃을 꺾고 나에게로 뛰어오는 것을 보았어. 그 꽃은 내가 태국에서 자주 보던 거라 이름을 알아. 가운데 노란빛을 띤 전체적으로 하얀 이 꽃은 아주 향이 강하지. 습관적인 거절로 나는 이 소년에게도 꽃을 받지 않았어. 그런데 바꽁을 다 걸어나오고 나서 후회를 했지. 비속에서 드문드문 있는 여행객 중에 나를 발견하고 성급히 꽃을 따서 뛰어오던 이 소년은 너처럼 어린 아이였어. 1달러가 뭐 대수라고 그냥 고개를 돌리고 나왔을까. 물론 변명거리는 늘 있어. 구걸하는 아이들이 계속 그렇게 돈을 번다면 그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않고 계속 구걸만 할 거라고… 그래도 마음은 좋지 않았어. 비와 꽃과 소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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