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레삽 호수'에서 만난 아이

까맣게 그을린 앙상한 알몸으로 우리앞에 선 꼬마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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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우(yes4456)등록 2012.06.15 20:38
湖水.
맑은 물이 잔잔하게 물결치는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둥근 달도 호수에 잠깁니다.
문득 여고 때 받은 편지 첫머리에 "잔잔한 마음의 호수에 여울이 인다." 라는 글귀가 떠오릅니다.
호수와 마음은 연결어 있죠. 그래서 더 낭만적인 표현입니다.
일산에도 호수공원이 있습니다.
많은 연인이 데이트를 즐기고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 자전거를 타면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는 종종 마음에 여울이 일 때면 호수공원으로 갑니다.
호수에 노 젓듯이 일렁이는 내 마음을 포갭니다.

제게는 또 다른 호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톤레삽 호수입니다.
5년 전에 가보았습니다. 캄보디아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경제적으로나 문화면에서 많이 뒤떨어진 나라입니다.
앙코르왓트 사원과 킬링필드가 유명한 곳이죠. 전력이 약해 초저녁이면 가게가 문을 일찍 닫고 어두운 거리는 한산합니다.
수도인 프놈펜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도로는 예전 우리나라 시골 길처럼 차선도 없는 외길이어서 위험했습니다. 4시간 넘게 가는 동안 가슴 졸이며 지났던 생각이 납니다. 설령 사고가 난다 해도 큰소리 내고 싸우는 것 없이 사고처리를 하느라 길이 막혀도 태연히 비켜가고 서두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소가 느린 걸음으로 도로를 왕래해도 욕하고 큰소리 치는 일 없습니다.

그해 12월에 찾아간 캄보디아는 늦여름의 우리나라 기후와 맞먹는 날씨로 낮에는 더운 듯 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선들선들하여 시원했습니다.
넓은 들녘에는 농부들의 땀이 밴 보살핌이 없어도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벼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인의 생활태도와 근성이 보였습니다.
고단한 삶 속에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나에게 처음 찾은 캄보디아는 남다르게 각인되어있습니다. 친구들 모임에서 계획했던 유럽여행이 무산되어 아쉬워하던 차에 고등학교 단짝인 미라가 3박 4일 동안 캄보디아 여행을 추진하였습니다. 서로 여행을 좋아하고 잘 통하기에 망설임없이 시간을 맞춰 설레이는 마음으로 갑자기 떠난 여행이기에 더욱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만난 여러 가지 모습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름다움과는 먼 가슴 아픈 장면들이 인화지에 박힌 듯 선명하게
남아 잉잉거리는 풍경은 톤레삽입니다.

톤레삽 호수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모성의 젖줄과 같은 호수입니다.
길이가 160킬로미터, 너비가 36킬로미터이니 호수라기보다는 바다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가 탄 관광차는 톤레삽 호수에 들어섰습니다. 얕은 호수 주변으로 수상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검게 그을려 맨발로 나돌아다니는 어린아이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젖을 물리고 있는 아낙네들의 모습 등은
우리의 정서와는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그런 데다 흘러가는 물은 짙은 황토색으로 물이라고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흙탕물을 보러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하는 마음의 푸념도 있었습니다.
여행가이드 설명으로는 이 물이 식수이고 대소변도 여기에서 해결한다고 했습니다.
듣는 순간 '아휴, 더러워, 어떻게 이런 데서 살아갈까?'라고 놀라워했지만 생각해보니 그 나라 자연환경과 교육, 문화의 차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늘 더운 나라이다 보니 수상가옥이 대부분이고 우리나라 원두막 같은 모습으로 서로 이웃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살림살이라고 해봐야 겨우 끓여 먹기 위해 필요한 가재도구 몇 개만 갖춰져 있었고 호수 위에 배를 띄워놓고 생활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수입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냥 물 위에서 고기도 잡고 살아가는 생활이 다 인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살아가기 위해 처절한 삶을 경쟁하며 사는 모습이 아닌 나태하고 태평한 표정,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톤레삽 호수를 관광하기 위해 함께 간 사람들도 탔습니다. 다들 구명조끼를 입고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고 선상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호수 위에서 바라보니 제법 배 위에서 생활하는 배들이 보였습니다. 온통 호수의 물은 누런 황토색으로 찰랑댔습니다. 메콩 강에서 실려온 황토는 톤레삽 호수를 누렇게 만들었지만 해질 무렵에 보는 톤레삽 호수는 햇빛에 반사되어 온통 황금 바다로 장관을 이뤘습니다.

우리가 타고 있던 배가 톤레삽 호수 중간쯤 왔을 때 갑자기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깜짝 놀라서 옆을 보니 7살 정도 되는 아이가, 우리가 타고 있는 배 쪽으로 속력을 내며 오고 있었습니다. 바나나처럼 생긴 조그만 보트에는 어른과 아이가 둘이 타고서 쏜살같이 우리 배를 향해 오더니 순간 부딪칠 것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가 우리 배 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올라왔습니다. 정말 아찔하고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꼬마는 새카맣게 그을린 앙상한 알몸에 팬티만 입은 채 맨발로 우리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이는 조그만 그림엽서 등 선물들을 내보이며 "1달러, 1달러" 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얼른 물건을 샀고 꼬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건을 팔고 다시 바나나보트로 서커스하듯 미끄러져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금세 우리 눈에서 멀어졌습니다. 꼬마의 위험천만한 곡예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혹시나 불행한 사고나 당하지 않았는지 머릿속은 착잡했고 내 마음은 울렁거렸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여행 온 게 아닌데' 내내 마음이 아파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이드가 또 한마디 했습니다.
"바나나보트를 운전하는 사람은 아버지고 아이를 시켜서 물건을 팔게 하거든요. 그리고 바나나보트가 오면 선장도 속력을 맞춰서 오를 수 있게 도와줘요."
지금도 톤래삽 호수에서는 배를 향해 오르는 일이 여전히 진행 중일까요?
여행의 마지막 날 잠 못 이루고 그 아이의 표정과 행동에 뒤척이던 밤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황토물이 넘실대던 톤래삽 호수에서 만난 꼬마아이로
지금 보육시설에서 내가 키우고 있는 아이들이 감사함으로 살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저는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하고 보육시설에서 자라고 있기에 그늘진 아이들에게 톤래삽 호수 아이의 이야기를 전하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한 마음으로 밝게 희망을 품고 살게 되었습니다.
톤레삽은 황토물이지만 마음의 호수입니다.
톤레삽의 아이들은 저와 우리 아이들에게 선생님입니다.
맑은 호수만 마음의 거울이 되는 게 아니라
황토물도 호수가 됨을 톤레삽 아이들은 내게 일깨워줍니다.
톤래삽에서는 그대로의 삶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톤래삽 호수의 꼬마 아이들이 오늘도 누런 황토물을 뒤집어쓰고 배 위를 오르락내리락하겠지요.
세상은 온통 흙탕물 속에서도 자신이 맑은 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서로 이해타산만 가득한 흙탕물이지요. 톤레삽 아이들은 흙탕물에서 살아가는데도 심성은  맑고 곱겠지요. 그 아이의 삶의 현장에서 내게 묻습니다. 아름다운것이 정말 무엇이냐고.
다시 한 번 톤레삽을 찾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훌쩍 커버린 아들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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