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지혜 선생, 장편소설 “안견”출간

'몽유도원가'의 내력을 안견의 삶을 통해 풀어낸 작품

검토 완료

김동권(kdg4563)등록 2012.06.16 17:03
작가 성지혜 선생이 장편소설 "안견"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제1장에서부터 제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몽유도원도'의 내력을 안견의 삶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안견과 후견인 안평대군이 탄생시킨 도원의 꿈! 명화원 안견과 후견인 안평대군의 우정이 예술작품으로 꽃피우는 과정을 묘사한 이 소설에서 작가 성지혜 선생은 안견의 일생은 험난한 예술가의 삶과 그를 바탕으로 탄생하는 위대한 예술의 운명을 보여준다.

1447년 세종이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는데, 박팽년과 함께 도원을 거닐다가 복사꽃이 만발하고 초가집이 있으며 시냇가에 조각배가 떠 있는 신비한 곳의 꿈을 안견에게 얘기하며 그림을 요청, 3일 만에 가로 106.6cm, 세로 38.8cm크기로 비단 위에 먹과 채색으로 그려 대군에게 바친다.

이 꿈이야기를 담은 몽유도원도로, 후원자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던 안평대군과의 우정은 이 그림의 탄생하는 과정과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전개, 쓸쓸하지만 사명을 다한 노년의 삶까지 안견의 일생이 펼쳐진다. 작가는 안견의 삶을 통해 예술의 위대함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예술 창작 과정과 역사의 비극적 흐름을 절묘하게 엮어냈다.

이 소설은 조선시대 우리 미술을 대표하는 '몽유도원도'의 내력을 명화원 안견의 삶으로 풀어낸다. 소설 속에서 재구성된 안견의 일생은 질곡 가득한 예술가의 삶과 그에 근거하여 탄생하는 위대한 예술의 운명을 대변한다.

르네상스 시대 레오날드 다빈치 등 화가들이 금융으로 성공한 메디치가의 후원에 힘입어 불멸의 걸작을 남겼듯이, '몽유도원도'라는 위대한 예술의 탄생에는 안평이라는 훌륭하고 진실한 후원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성 작가는 안견의 실력과 안평대군의 높은 감식안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더라면, '몽유도원도'는 탄생하지 못했거나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임을 잘 보여준다.

하응백 문학평론가의 평론대로 안견은 박팽년,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등 당대 최고의 문사들의 찬사를 함께 누리는, 가치에 걸맞는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안견의 일생 역시 흥미진진하다. 성 작가는 예술 창작 과정과 역사의 비극적 흐름을 절묘하게 엮어낸 그 솜씨가 훌륭하다. 웅장하고 '몽유도원도'의 내력과 가치를 안견의 삶으로 묘사해 낸 상상력이 치밀하다. 특히 안견의 삶과 예술을 통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또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영원한 이상향 도원의 꿈을 실감나게 풀어내기도 한다.

작가 성지혜 선생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세종대왕 시절로 되돌아가서, 안평대군과 안견 화원, 명유문사들과 랑데뷔하며 밤을 지새웠던 나날들이 어찌나 즐거웠던지. 2009년 9월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하고많은 전시품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 건 '몽유도원도'였다. 너무나 감격스러워 몽유도원도를 작품화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건 나의 기억에 각인된, 최초로 본 그림이었다. 1986년 8월, 국립중앙박물관이 덕수궁에서 중앙청으로 이전 개관된 기념으로 처음 그 전시회가 열렸을 때도 그렇거니와, 1996년 12월 호암갤러리 주최 '조선 전기 국보전'에서 두 번째 전시회가 열렸을 때도 역시 깊은 감동과 더불어 분노가 일었다.

왜 몽유도원도가 한 때 일본의 국보까지 지정되었으며, 그 뒤 법령의 개정에 따라 중요문화재로 변경 되었다곤 하지만, 아쉬운 마음 금할 길 없었다. 몽유도원도가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진상은 알 길이 없다지만, 다른 우리 국보급들과 더불어 임진왜란 당시 그네들에게 착취당한 건 아닌지. 조선 후기에는 저네들이 서로 사고팔고 했다는 기록도 있고, 일본 천리대학 측에선 6.25 전쟁 당시 군용 트럭 한 대 값을 주고 구입했다고 주장한다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걸 기필코 되찾아야 한다는 게 나만의 간절한 바람은 아닐 것이다.

10여 년 전, 프랑스와 이태리에 들렸던 기억이 새롭다. 파리의 몽마르트 거리와 로마의 베드로 성당 입구의 가판대에서 몽유도원도가 인쇄된 엽서를 보고 살폈더니, 화가의 이름은 안견인데 국적이 일본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우리의 몽유도원도가 새삼 자랑스러웠지만, 진실이 허구에 가려진 게 못내 억울하고도 분노가 일었다. 안평대군이 안견 화원을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고 자신의 거처인 수성궁을 떠나지 못하게끔 했다는 기록을 접하고는, 안견 화원이 안평대군에게 기대고 싶은 버팀목이요, 살아가는 길잡이였음을 작품 속에 무르녹게 했다. 몽유도원도 못지않게 그걸 그린 안견 화원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에 대한 의문과 함께 호기심 또한 나날이 더해 가서, 몽유도원도와 더불어 그의 일생을 엮어 보기로 했다. 몽유도원도가 안견이요 안견이 몽유도원도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글이 몽유도원도를 일본 관계자들에게 인수받아 우리 대한민국 국보로 모실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더한 바람이 없겠다."고 역설하고 있다.

기자는 이 작품을 일별하면서 원로 여성작가들의 왕성한 문학에의 열정에 경의와 존경을 표하며, 성지혜 작가를 비롯 최문희 작가, 이유정 작가 등 원로 여성작가들의 소설에의 그 뜨거운 힘에 찬탄을 보낸다.

작가 성지혜 선생은 1945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했다. 진주여고, 한세대 신학과,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월간문학>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첫 장편소설 <환상과 나비>로 문단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밖에도 장편소설 <한글의 얼>, <은가락지를 찾아서>, <베다니의 기적>, 중.단편집 <사랑을 기다리는 의자>, <'옛뜰>, <까치호랑이>등이 있고, 에세이집 <사랑으로 여는 마음>, 시집 <그대가 내게 쏜 화살은 기쁨입니다> 등이 있다.(휴먼앤북스 출판사/12,000원)

첨부파일 성지혜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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