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의 연쇄붕괴

하우스 푸어의 임차인에게 도미노 충격

검토 완료

진미숙(lavigne)등록 2012.06.18 13:37
 자영업을 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J씨는 최근, 살고 있던 집의 임대차 계약기간이 만료함에 따라 이사를 결심했다. 지난 여름의 기록적인 폭우 이후로 집은 슬슬 맛이 가기 시작했다. 옥상의 누수 페인트가 벗겨지면서 배수구를 막았고 집안 곳곳에 누수 자국과 곰팡이가 생겨났다. 명절을 맞아 친척집에 갔다가 큰비 때문에 집이 걱정돼 서둘러 돌아와보니 천정에서 흐른 물이 방바닥에 고여 가전제품과 가구를 엉망으로 만든 적도 있었다. 건물의 세입자들은 빗줄기가 세지는 날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퇴근한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가서 배수구 주변을 치웠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단 하나의 생각만 품었다.

"이놈의 계약기간만 끝나봐라. 어디로든 이사를 가야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계약기간을 다 채웠을 때는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계약 기간 만료 전에 한 달도 넘는 충분한 기간을 두고 착실히 해지통보를 했다.
"이번에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이사를 하려고 합니다."
"네, 그렇군요. 그럼 부동산에 내 놓겠습니다."
일이 잘 풀릴 줄 알았다. 사족에 불과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마디를 더 달았다.
"저희도 이사할 집을 알아봐야 하니까 계약기간 만료되는대로 보증금 반환은 확실히 해 주셨으면 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답안에서 한참을 빗나갔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대한민국에는 관습이라는 게 있는데 임대차 계약이 끝나도 그 집이 나가고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와야 그 사람한테 받은 돈으로 보증금을 돌려주는 거예요. 그게 대한민국 관습입니다."
그런 의견 충돌을 피하라고 만들어 놓은 게 주택임대차보호법이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해지의사를 다시 한 번 확실히 했다.
"돈이 있어야 돈을 주지. 돈이 없는데 막무가내로 돈을 내 놓으라고 하면 어쩌라는 거요? 나는 집이 안 나가면 돈 못 주니까 법대로 해요."

계약기간 만료일이 다가옴에따라 몇 번 더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후로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내용증명을 보냈을 때는 폐문부재로 반송이 되어왔다. 변호사를 선임하자 변호사 사무실에서 임대인에게 내용증명을 다시 보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온 내용증명은 받아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는지 그것은 수취를 했다. 피차 사정이 좋지 않은데 임대인에게 소송비용까지 부담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설득을 시도했지만 난데없이 J씨에게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임대차 계약기간이 만료된 것은 사실이나 임차인으로부터 해지통보를 받은 적이 없으므로 본 임대차계약은 임대차보호법에 의거하여 묵시적 갱신으로 2년간 계약기간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것이며......."

임대인은 해지통보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만하면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줄 알고 버텼던 것이다.
J씨는 서둘러 대출기간 연장을 신청하고 대출 상환방법도 총체적으로 바꿨다. 한 두 달 안에는 회수가 될 것으로 생각됐던 보증금이 임대차등기명령과 법원의 지급명령, 소송과 경매 이후에나 회수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였다. 결국에는 임대인으로부터 연 20%에 달하는 지연이자까지 받게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지인과 친척, 각 금융권의 대출상품, 보험약관대출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현상을 유지해 가야만 하는 것이다.

J씨는 옆집에 살다가 이사간 H에게 전화를 걸어서 보증금을 돌려받았는지 물었다.
"아, 그거요? 제가 취직이 돼서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된 건데요. 집주인이 돈이 없는 걸 어쩌냐고 버티는 바람에 1년 넘게 대출 이자를 제가 다 내고 있어요. 계약기간이 남았을 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고도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아요. 어렵게 얻은 직장이라 포기할 수 없어서 급하게 이사를 오긴 했지만 1년동안 제가 낸 이자를 생각하면 화가 나죠. 회사에서 받는 월급의 태반이 대출금 갚는데 들어가니까 이게 뭘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요."

J씨는 같은 건물의 세입자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집주인의 말에 이사를 포기했다고 했다.
"이 집, 이번 여름에도 비가 많이 오면 또 샐텐데......."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훈이 있다. 하지만 J씨의 이웃들은 권리 위에서 잠을 자다가 손해를 입은 것이 아니다.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하고 구입한 건물의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건물을 담보로 돈을 융통할 수도 없게 된 임대인이 자신과 인연을 맺은 임차인들마저 불량 채무자의 신세로 전락시킨 것이다.

하우스 푸어라... 그렇다면 하우스 푸어의 임차인으로서 의도치 않은 고충을 떠안게 된 J씨들을 위한 적당한 말은 무엇일까. 하우스리스, 푸어러(Houseless, Poo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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