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자락 터밭과 착한 밥 이야기

세상의 밥, 착한 밥 나쁜 밥이 따로 있나?

검토 완료

김혜정(schm16)등록 2012.06.21 09:37
지리산 자락 터밭에 노오란 쑥갓꽃이 피어나다!

해발 600 미터 고지에 자리한 사단법인 밝은마을 지리산연수원 생명의 터밭 소식입니다.
올 봄, 조사장님네 황토집 앞마당 한켠에 주인의 양해를 구해서 땅을 조금 마련해 터밭을 일구었습니다.
온통 자갈돌 투성이인 땅에다 부족한 흙을 보충하기 위해 몇 차례나 농사용 손수레에 흙을 실어 날라다 덮고
일일이 자갈돌을 골라내고 곡괭이와 삽과 호미로 일구어 마련한 것입니다.

비닐도, 농약도, 비료도 일체 쓰지 않은 순수 생명의 농법으로 작물을 심고 가꿉니다.
한 달도 전에 남원 오일장에 나가 푸성귀들 모종을 사다 심고, 작년에 받아두었던 씨앗도 뿌리고
가물었을 때라 아침 저녁으로 물도 주어가며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104년만의 가뭄이라고, 농사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걱정들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상추값, 채소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고 하는 데,  
전북, 특히 이곳 남원은 그래도 비가 많이 와서 아주 우려할 정도는 아닌 듯합니다.

어설픈 초보농부 윤중님과 저의 어설픈 노동이나마 수고한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터밭엔 지금 갖가지 푸성귀들이며 열매가 싱그럽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비싸져서 걱정이라는 상추와 쑥갓은 이미 흔하디 흔하게 뜯어다 먹기 시작한 지 오래인데,
며칠 전에 노오란 쑥갓꽃이 피어올라 터밭 가꾼 즐거움과 보람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랗게 작은 꽃, 쑥갓꽃이 피어나야만 여름의 정취가 한껏 더해지는 듯합니다.
쑥갓꽃이 하도 예뻐 이른 아침, 터밭에 나갈 때마다 그 앞에 붙어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쑥갓꽃과 이야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
온전히 마음을 열고 대하면 꽃이나 나무, 식물들과도 얼마든지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모종으로 심은 가시오이도 여기저기서 다투듯, 역시 노오랗고 앙증맞게 작은 꽃들을 피어내고 
꽃이 지려는 자리에 어느새 푸른 열매, 촘촘하게 가시를 돋운 오이가 달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것은 조숙한 나머지 벌써 먹을 만하게 자라 바닥에 누워있기도 합니다.


오일장에서 모종을 살 때, 주인아주머니의 꼬임에 넘어가 그만 너무 키가 자라 허리가 구부러진 모종을 사오는 바람에
가뜩 척박한 땅에 오이가 잘 안착할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더구나 그땐 비도 오지 않고 있던 때라 가물어 더 걱정했었지요.
윤중님께서 어설프지만 정성껏 지지대를 박고 끈으로 묶어 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조치해 놓으시고 저와 번갈아 물도 주어가며
보살핀 덕에 다행히도 고추모종이 자리를 잘 잡고 안정되어 작고 흰 꽃을 피어내더니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고랑 하나에는 작년에 받아두었던 터박이 오이(조선오이) 씨를 심었더니 그 역시 잘 자라
매어놓은 즐을 타고 하늘까지 오르려는 듯, 마구마구 줄기를 뻗어올립니다.
터박이오이 고랑 바로 옆에는 역시 보관했던 씨로 파종한 차조기가 무럭무럭,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향신채라서 맛과 향이 아주 강한 채소인데, 저는 별로 즐기게 되지 않더군요. 하지만 약성이 뛰어나다고 해요.



외래종 서양무 비트입니다.
씨앗을 포트에서 발아시켜 본잎이 얼마간 자랐을 때 옮겨 심은 것입니다.
처음 심어놓았을 땐 시들시들, 비리비리해서 잘 자랄까, 걱정했더니 몇 차례 단비를 맞고는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쑥갓 이파리에 날아와 앉은 무당벌레... 익충인지, 해충인지 궂이 분별하려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둡니다.



앗, 이분은 밝은마을 이사장님이신 윤중선생님입니다. 최근 왕성한 실무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계신다지요?
터밭 농사에도 이사장님의 실무력이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는 셈입니다.
오이 줄기가 땅바닥을 엉기지 않고 하늘을 향해 타고 올라가도록 줄을 매고 계십니다.
서양의 오랜 동화, '재크의 콩나무'에서는 콩나무가 줄을 타고 올라 진짜 천상까지 올라간 바람에 주인공 재크소년이
신나는 천상의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이던가요?

윤중의 오이나무?
오이줄기가 하늘나라까지 치고 올라가면 과연 윤중님께서 신나는 모험이라도 하시게 될지.....크흑....

아무튼 스스로의 힘으로 터밭을 일구고 농사를 짓게 된 걸 내심 뿌듯해 하시며 은근히 즐기시는 분위기입니다.
제가 볼 땐, 어째 영 어설프기만 한데 말입니다. 푸하......
(그렇지만 정성만은 프로농사꾼 못지 않아요. 잘못하다 줄기 순이라도 꺾을라치면,
"어, 이런...미안해애~~~ 잘못했다아~~~하면서 꺾인 여린 순을 쓰다듬으며 진심어린 사과를 하곤 하시지요.)
앗, 그런데 이른 아침이라 얼굴이 많이 부시시해 보이지요?
어쩌면 지난 밤 곡차 한잔 진하게 하셔서 숙취가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도.....푸힛~



매주고


묶어주고, 쓰다듬어주고....
'나는 그해 여름 윤중이 한 일을 알고 있다!' 흐흐흐.....


방울토마토입니다.
거름기가 적은데도 열매가 제법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한여름의 태양을 받고 점점 붉게 읽어갈 것입니다. 벌써부터 침 넘어갑니다. 꼴깍~



이른 아침부터 터밭에서 줄 묶어주고 풀매고 돌 골라내주고 하며 노동한 뒤끝에 수확한 것입니다.
중간 자란 가시오이 한 개, 땅에 떨어진 덜 자란 고추, 그리고 생강!
호미로 풀을 매다가 생각지도 않게 호미 끝에 딸려나온 생강 몇 뿌리...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입니다.
도무지 언제 생강을 심었는지 통 기억이 없는데, 느닷없이, 난데없이, 뜬금없이, 뜻밖에 얻은 것입니다.

"어, 이거 생강이 다 있고만요?"
"응? 생강도 심었나?"
"글쎄요....생강은 안 심었던 것 같은디요?'
"근데 생강이 왜 나와?"
"심었나, 안 심었나, 도무지 모르겄는디요!"
"도로 심어놔!"
"싫은디요, 안그랴도 짐치 할라믄 생강 멫톨 있었으믄 했는디, 잘 디얐꾸만요."
"허, 이런, 이런....."
"선상님, 요거슨 필시 가이아 대지의 신께서 우리에게 건네는 농담가타 부러요. 심지도 않은 생강이 땅속에서 나오다니,
생강을 심었는지, 안 심었는지 헤깔리게 만듬서 우덜의 기억력 테스트라도 허실라고 농담을 허시는 것 아니겄어요?
암턴 잘 갖다 먹으믄 되지라잉..."
"허, 그거 참...."

터밭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해민이네를 만나다!

난 데 없는 생강 몇톨과 오이 한개, 덜 자란 고추 등, 수확물(?)을 가볍게 챙겨들고 연수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변산에서 학교에 다니다가 일주일 간의 '장마방학'을 맞아 지리산의 엄마아빠에게 놀러온 해민이와 해민이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이들 자연을 닮은, 아니 자연 그 자체인, '레알 퓨어 에코 패밀리'라고 밖에는 표현되지 않을 이  해민이네 모녀께서
숲속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러 간다고 하더군요.
'그래 요샌 산에 가면  주로 뭣을 뜯어다 잡숫냐' 물었더니,
채식주의자인 해민어머니 왈, '나무에 새로 돋은 연한 잎이란 잎은 다 먹는다'고 하더군요.
땅 위의 풀들도 어린 잎은 먹기가 좋다고 하고요. 심지어 꽃도 따다 먹는답니다.
레알 퓨어 에코 래빗!
'산토끼 가족'이라고 바꿔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시간여나 지났을까?
숲에서 돌아온 해민이네를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불러세워서는, 들고 있던 검은 봉투를 풀어보라 요청했습니다.
여린 초록빛의 갖가지 풀들과 잎들이 너무 많지 않게, 세 토끼 먹기좋게 아니, 세 식구 먹기 딱 알맞을 만큼만 들어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먹을거리들에 흥분한 나머지, 똑딱이를 잡은 손이 흔들리는 바람에 피사체의 초점을 놓쳐서
또렷이 분별하기 어렵겠지만 디스 이스 허니 플라워! 바로 꿀꽃도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연수원 마당 평상 우에다가 봉투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한 개씩 차례차례 꺼내어 나래비 늘어놓고는
살아있는 실물 식물도감을 펼쳐놓고서, 즉석에서 생태 학습지도를 받았습니다.
모양과 이름을 잘 알아두었다가 나도 기필코 이들의 착한 섭생을 모방하리라, 다짐하며 탁월한 숲 해설가요, 생태주의자인
해민어머니로부터 하나 씩 이름을 익혔는데, 아뿔사, 잘 적어둘 것을 그만 어느 게 어느 건지 죄 까먹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이들의 이름을 무순으로 열거하자면,
토끼풀, 칡잎, 오가피잎, 산뽕잎, 좀깨나무잎, 질경이, 엉겅퀴꽃, 개망초(풍년초), 등등입니다.
반지꽃과 망초꽃과 엉겅퀴꽃을 먹는다?
그 맛은 어떨까, 나도 한 마리 토끼가 되어 해민이네 집 밥상에 끼어앉고만 싶어졌습니다.

탁월한 자연요리가이기도 한 해민어머니는 조금 쇤 풀들은 찹쌀풀을 씌어 튀겨먹을 거라고 했으며, 여린 잎은 그대로
잘게 썰어 초고추장이나 간장 소스에 버무려 샐러드로 해 먹거나 산야초비빔밥을 해 먹을 거라고 하더군요.

순수하고 맑은 영혼, 레알 퓨어 에코 패밀리, 해민이네 가족의 식탁에 축복 있으라!



윤중님과 저의 아점 식단입니다.
물론, 우리 연수원에서도 되도록 철저하게 채식만을 하려고 하고는 있습니다.
가끔씩 방문객들이 연수원에 겁없이 돼지고기며 생선이며 달걀을 싸들고 올 경우, 결코 거부하거나 배척하지 않은 채,
묵묵히 경계를 버리고 그것들을 잘 먹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윤중님께서 인용하시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탁발하실 때에 찬밥, 쉰밥 가리지 않으시고 주는대로 받아 잡수셨느니라!' 라고 하는.
요즘 세상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유기농인지 친환경인지, 중국산인지 미국산인지 호주산인지,
역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드셨을테지요?
사실 우린 너무 피곤할 정도로 따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밥을 '착한 밥'과 '나쁜 밥'으로 구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오늘의 메인 디시!
터밭에서 따온 푸성귀들과 첫 수확(?)한 가시오이를 먹기 좋게 썰어넣고 코리안 드레싱이라고 이름할만 한
고춧가루, 집간장, 무우효소, 들기름 등 갖은 양념을 섞어 만든 소스로 드레싱한 채소 샐러드입니다.
그 이름조차 열매만큼 앙증맞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앵두!'나무에 마침 보석보다 더 예쁜 앵두열매가 한창이라
밝은마을의 자매업체인 '콩세알'을 본따 '딱세알'을 올려 데코레이숑 해주고 포인트를 살렸습니다. ^^
그랬더니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았습니다.



주식은 누군가 연수원에 놓고 간 누룽지를 뚝배기에 넣고 푹 끓여 만든 눌은밥입니다.
구수하고 훌훌 먹기 쉬워 소화도 잘 되는 '착한 밥'입니다.

이 뚝배기는 남원 오일장 옹기점에서 거금 3만5천원이나 주고 산 것인데, 여기에다 된장찌개도 끓이고
원미소타 차도 달여 먹으면 그 맛이 훨씬 웅숭깊어집니다.
함부로 흉내냈다가는 뚝배기애(愛) 자칫 빠질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망함!

이상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379-1번지, 사단법인 밝은마을 지리산연수원에서
과정에 이르는 진리라는 덕(德)의 손길을 갖고싶어하는 덕수당이 전해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마이뉴스 가족 여러분 모두모두 가뭄도, 장마도 잘 견뎌내시고 21일의 블랙아웃 훈련도 잘 해내시고,
건강하게 여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다음카페 '밝은마을'과 '한울연대'에도 실었습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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