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할례, 아동인권 침해인가 종교적 전통인가

포경수술을 둘러싼 독일 내 논쟁 격화

검토 완료

김강기명(osr1998)등록 2012.07.06 10:06
교복을 입고 줄지어 비명소리가 새어 나오는 비뇨기과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중,고등학생의 행렬은 우리에게 그다지 생소한 풍경은 아니다. 병원을 나와 엉거주춤하게 집으로 걸어가던 굴욕담이나, 실밥을 풀기 전 혈기를 참지 못하고 불온한 상상(?)을 즐기다 맞이한 고통의 경험담 등은 남자들끼리의 모임에서 종종 오가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에게 '포경수술'은 아주 익숙한 경험이다. 이르게는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늦게는 군대에서까지 거의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포경수술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80%이상의 성인남성이 포경수술을 마쳤으며, 이 비율은 거의 무슬림이나 유대인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동 국가들에 필적한다고 한다.

종교적 용어로는 '할례(Beschneidung)'라 불리는 포경수술은 소위 '아브라함 후손들의 종교'라고 불리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공히 행해지는 의례이다. 유대교의 경우 할례는 구약성서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됨'이라는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의식이며, 이슬람교에서도 유대교에서만큼의 종교적 의미를 강하게 갖지는 않지만 광범위한 할례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이 할례 시술을 둘러싼 상이한 입장이 매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독일 쾰른시 고등법원은 4살짜리 소년의 할례 시술을 했다가 합병증을 일으킨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어린이의 신체의 고귀함이 종교의 자유와 부모의 권리를 압도한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할례로 인해 음경의 표피가 벗겨지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irreparabel)" 변화로서 개인이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권리에 크게 위배되며, 부모의 종교교육의 권리가 아동의 신체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이 알려지자 독일 내 유대인과 무슬림 사회 뿐 아니라 카톨릭 진영에서도 반발이 일어났다. 디터 그라우만 유대인 중앙평의회(Zentralrat) 의장은  "이번 판결이 종교 공동체의 자율권에 대한 전례 없는 놀라운 간섭이며 무감각한 행동"이며 "유대교에서 신생아 할례는 수세기 동안 행해져온 전통으로 전 세계에서 존중받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의회의 개입을 촉구했으며 카톨릭 주교회에서도 이 판결이 독일 내 종교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반면 인권단체인 Terre des Femmes(Tdf)의 대표인 이엄가르드 쉐베-게릭은 판결을 환영하며, "이 판결을 통해 아동의 신체보전이 종교적 논리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포경수술이 단지 종교적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위생적이고 문화적인 이유에서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수술이기 때문에, 할례의식을 치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카톨릭이나 개신교의 유아세례와는 다르게 개인의 결정권을 침해하는 종교적 의식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런 점에서 이러한 판결은 종교간 차별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할례를 둘러싼 이 논쟁은 한편으로는 부모 혹은 종교 공동체의 종교 교육의 권리와 아동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몇년간 논쟁이 되고 있는 공공 장소에서 여성들의 히잡 착용 문제와 함께 계몽주의 이후 개인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이고 유럽적인 인권 개념과, 이민을 통해 새롭게 유럽 주민이 된 무슬림들의 종교적이고 공동체적인 인권 개념 사이의 논쟁지점이 될 요소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배경의 이민자들은 오늘날 독일인으로써, 혹은 독일 내 주민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이 반드시 계몽주의의 전통을 받아들이고, 핵심적인 종교적 요소를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번 판결은 종교적 가치가 여전히 공동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는 이주자들과 종교적 소수자들의 통합을 방해하고, 차별이나 인종주의를 낳을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벌어질 논쟁을 주목해 봐야 할 것이다.

독일 사회의 논쟁을 떠나, 필자 역시 부모님에 의해 유아기에 포경수술을 받은 입장에서 이 논쟁에 흥미가 가는 또 다른 지점은, 종교적 이유도 없이 80% 이상의 남성이 음경의 포피를 자르는 세계 최대의 포경국가(?)—요즘 이 포경 말고 다른 포경(고래잡이) 문제가 또 다른 논쟁을 낳고 있기도 하다—인 한국 사회에서 포경수술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정력'이나, 남자로서의 '정체성', 비뇨기과나 부인과 질환에 대한 '위생'을 둘러싼 한국 내 포경담론이야 말로 어쩌면 하나의 세속적이고 근대적인 형태의 '신화'이고 '종교'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이 '할례 전통' 역시 이 판결을 계기 삼아 한 번쯤 되돌아 볼 때가 아닐까.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