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피는 꽃같은 아들아. 엄마는 교과서의 시들을 사랑했다.

교육과정평가원의 도종환 시 국어교과서 삭제 권고 사태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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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미(gracecho)등록 2012.07.10 16:26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중에서

내게 꽃송이처럼 사랑스러운 아들아.
엄마는 학창시절에 김춘수의 시 '꽃'을 배웠다. 이 관념적이고 건조한 시를 존재의 의미니, 사물의 본질이니, 주체적 만남이니 하는 철학적 의미를 캐며 밑줄 그으며 읽던 생각이 나는구나. 학생들의 서툰 연애편지에 종종 인용되기도 하는 시였다. 나는 오늘에서야 '꽃'의 시인 김춘수로만 기억하던
이 시인이 1980년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을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구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릴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중에서

올해 청소년이 되면서 엄마에게 가끔 까칠하게 구는 아들아. 그래도 무척 사랑스러운 아들아. 너는 나에게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다. 나도 몹시 흔들리면서 어두운 시간도 보내면서 이렇게 어른이 되었듯이, 너에게도 무수한 바람도 불고 어둠의 시간도 올 거야. 그래도 너는 종내 꽃을 피워내지 않겠니.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이름을 불러주건 불러주지 않건, 그저 유일무이한 소중한 내 아들이지. 그러니 너는 내게 김춘수의 꽃이 아닌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아름다운 꽃이란다. 네게 꼭 이 시를 들려주마. 네가 아무리 흔들리고 방황하여도 엄마가 너를 믿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단다.

엄마는 청소년기를 힘겹게 보냈단다. 엄마가 네게도 말했듯이,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기 어려웠어. 그중에 국어시간에 낭독을 해야하는 순간은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시를 무척 사랑했어. 혼자 있는 외로운 시간엔 언제나 시를 읽었거든. 그런데 시골이라 엄마가 읽을 수 있던 시들은 교과서에 실린 시들이 전부였어. 시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형편이 좀 달라졌지만, 그래도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단다. 호흡을 가다듬고 시낭독을 하면 마치 사랑스러운 새가 노래하듯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국어책에 실렸던 시들 중에서 한용운, 이상화, 유치환 같은 시인들보다 나는 서정주와 김수영에 매료됬어. 김수영의 모던한 시들이 주는 차가우면서 뜨거운 시민의 시. '시여, 침을 뱉어라'를 읽으면 온몸이 전율하곤 했지. 서정주의 시는 고독함과 쓸쓸함이 묻어있어서, 늘 외롭다고 느꼈던 엄마에겐 마치 나를 위한 시 같았어. 유명한 '자화상'이란 시를 달달 외웠지.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음울한 목소리를 깔면서 낭송을 시작하다가, '스물세해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의 바람이다' 정도까지 낭송하면 내 목소리에서조차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의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엄마가 더 어른이 되어서야 서정주라는 시인의 친일행각과 독재자 찬미 행각을 알게 되었을 때, 소위 요새 말로 '멘붕'이라는 걸 경험했단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 서정주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중략)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너도 알겠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80년에 광주학살을 자행하고 권력을 찬탈한 사람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시인 서정주는 바로 그 전두환을 찬양하는, 차마 같은 시인이 쓴 시라고 보기 어려운 글을 썼단다. 문학은 시인과 완전히 별개인 독립적 창작품인가. 시인이 낳은 아이인가. 어떻게 보던지 간에, 시를 쓰는 시인은 그 안에 생각과 사상을 담을 수 밖에 없지. 주제가 없다면 그건 시가 아니고 문학작품이 될 수 없단다.

우리는 국어교과서에서 서정주와 이광수 같은 친일 작가들의 작품도 배우고, 동시에 저항하고 참여하던 윤동주, 이육사, 김수영, 신동엽의 시도 배운단다. 남북분단의 아픔으로 월북시인이나 주로 북에서 활동하던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없는 것이 한계이진 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백석의 시는 정말 감동적인데 교과서에서는 읽을 기회가 없었지.

도종환 시인을 80년대 '접시꽃 당신'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 그 이후, 현재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서정시들을 많이 썼다는 것을 엄마는 몰랐단다. 사실, '접시꽃 당신'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읽어야 하던 감상적인 시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그런데 교과서에 실린 <흔들리며 피는 꽃>, <종례시간>, <담쟁이> 등은 아름답더구나.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거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 주며 가거라
쉴 곳 만들어 주는 나무들
한번씩 안아주고 가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 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해 주다 가거라 – 도종환 <종례시간> 중에서

종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강아지풀도 쉴만한 나무도 만나기 어려운 아들아. 그래도 이런 시골길이 상상이 되지 않니 ? 너도 시골 갔을 때 강아지풀 뽑아서 엄마를 간지른 적이 있지 ? 나는 네가 국어시간에 친구들과 이 시를 배웠으면 좋겠다. 지금 중학교 국어책에 실려있구나. 그런데 아들아. 어쩌면 이 시를 네가 학교에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단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란 곳에서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이유로, 현재 시인이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이 시를 빼라고 출판사에 권고했다는구나.

서정주가 뼈속까지 친일이고 친독재여도, 그의 너무나 정치적인 독재 찬미 시가  실리지 않는 한, 서정주의 시를 여전히 국어교과서에서 배우듯이, 도종환이 현재 야당이 국회의원이 됬을지라도, 아무런 정치색이라고는 없는 서정시를 교과서에서 배제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엄마의 학창시절에는 주로 오래 전에 돌아가셔서 무덤 속에 계신 시인들의 시를 주로 배웠는데, 지금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인들의 시도 배우니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황지우 시인의 시도 교과서에 있다고 들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인데, 이렇게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시를 어떻게 그냥 두고 있을까 ?

나는 교육과정평가원의 권고가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란다. 출판사들이 혹시 교과서 선정이 취소될까봐, 정말로 도종환의 서정시를 빼는 그런 슬픈 코미디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이 많아서 서정시조차 금하는 것인지, 정말 그 불안감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 만약 교과서에서 도종환 시인의 시가 배제된다면, 나는 따로 그의 시집을 사서 너에게 읽혀주는 수고를 해야겠지. 그뿐이랴. 세상을 푸르른 담쟁이처럼 가득 그의 시들로 덮어버릴지도 모르지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담쟁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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