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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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bluestag)등록 2012.07.11 16:29
  어린 시절 저는 몸에 비해 너무 큰 머리를 아직 성장 중인 몸이 지탱하지 못하는 양상이라 한창 뛰어노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움직임이 둔한데다가 겁이 많아서 조금만 높거나 경사가 심한 곳도 넘어질 것을 두려워 가지 못하던 그런 아이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집 안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높은 곳에 못 올라가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별로 없었지만 5살이 되어서 유아원을 다니면서부터 인생에 있어서 첫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유아원을 가기 위해서는 나지막한 언덕을 하나 넘어야하는데 문제는 언덕을 내려가는 길이 꽤 경사가 급한 계단으로 되어있었다는 것이죠. 동갑내기 다른 친구들이야 산을 타는 다람쥐 마냥 두칸 씩 세칸 씩 뛰어 내려갔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탓에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처음 며칠이야 어머니께서 데려다 주셨기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혼자 계단을 내려가기 무서워서 길을 돌아서 유아원을 가는 바람에 매일 같이 지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계단 내려가는 것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체면상 어려웠기에  어머니는 당연히 빠른 길로 갈 것을 예상해서 유아원갈 준비를 해 주셨기 때문이죠.

난생 처음 시작하는 단체 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그 시기에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관 때문에 고민한 끝에 결국 저는 아버지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휴일 오후 쉬고 계시다 어렵게 꺼낸 제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지는 싱긋하고 웃으시고는 언덕으로 함께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외출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평상시 어머니 같으면 살찐다면서 못 먹게 하는 군것질 거리도 아버지와 단둘이 있을 때는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지만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길을 걷는 것을 동네의 친구나 형이 쳐다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문제의 계단에 도착한 후 아버지는 두 가지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제일 아래를 바라보지 말고 지금 있는 곳의 바로 아래에 있는 계단 한단만 쳐다보고 내려갈 것. 또 하나는 혹시 넘어지려고 하면 뒤에 있는 아버지가 붙잡아 줄 테니까 넘어질 걱정은 하지 말고 자신 있게 내려가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뒤에 아버지가 지켜보시고 계시다는 믿음은 어렵게 용기를 내게 했습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뒤뚱거리면서 내려가다 더럭 겁이 나서 뒤를 돌아보면 아버지께서는 인자하게 웃으시면서 아까 했던 두 가지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용기를 북돋워 주셨습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마치 소나기라도 맞은 듯 온몸이 땀으로 적신 끝에 마침내 저는 난생 처음으로 계단을 혼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단을 내려와서 드디어 땅에 도착했을 때 저는 뒤따라오시는 아버지를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어버렸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저를 꼭 끌어안으시고는 조용히 등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요즘도 저는 가끔 삶의 무게가 어깨를 심하게 짓누르는 걸 느끼거나 걸어온 길 보다 걸어 가야할 길이 훨씬 더 많은 막막함에 지쳤을 때 몇 계단 위에서 인자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면 그립고도 따뜻한 느낌과 함께 그날의 계단과 아버지의 가르침이 떠올라 좀 더 자신 있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힘이 생기곤 합니다.

덧붙이는 글 자유칼럼그룹 중복 게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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