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친정시댁 번갈아 차례에 가자는 아내는 폭력적으로 느껴지시나요?

탈젠더 사회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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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정(k0429sj)등록 2012.07.26 10:28
사회 속의 인간은 거의 누구나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기대치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인권이 무엇이고 폭력이 무엇인지 교육(가정교육 포함)을 통해 배우지 못한 경우에 그저 자신의 기준에 의거해 '폭력적이다'라고 느낀다.

'폭력적이다'라는 것은 느낌도 포함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측정가능한 수치가 아니고 그 때문에 그 상대적인 면은 더 부각된다.

가부장적인 남자가 있다고 치자. 아니 기존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가부장적인 질서 속에서 문제의식 없이 잘 적응하고 있는 남자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 남자의 기준에 설정되어 있는 여성, 아내, 어머니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상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없어도 그의 언행에서 드러난다.

평등 인권에 눈뜨는 아내

그 남성의 아내는 여성인권을 공부하며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알고 깨우쳤다. 그것을 깨우치고 나서는 남편이 어쩌다 무심코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제까지 살면서 결코 어쩌지 못하는 힘이라고 생각했고 여자는 그냥 참아야 하는 존재라고만 여겼을 뿐 여성도 남자와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라는 이론을 머릿속에 심어준 사람도 없었고 그걸 안다면 그런 상황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조차도 늘 억울하지만 남편에 순종하고 양보하는 모습, 때리면 맞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젠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구조는 부서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가족 안에서 나라는 독립된 존재로서의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자녀들에게 차별적인 말을 하지 않고 '남자니까, 여자니까'라는 성별로 규정짓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남편과의 관계도 힘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돈벌이를 비슷하게 하고 가사노동도 반반 할 것을 제안했으며 육아에 대해 등한시하는 남편에게 부모로서 육아에 더 신경 써 줄 것을 권유했다.

명절 뒤집기

명절이 되면 항상 시댁에 먼저 가서 차례 준비하던 것을 이제부터라도 평등하게 바꾸자고 건의했다. 한 번은 시댁에, 한 번은 친정에 번갈아 먼저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 남자는 불편함을 넘어 불쾌함을 표현한다. 대다수의 여성이 하는 일을 내 아내가 못 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영향받는 개인(남편)에겐 폭력적이라는 이유였다.

폭력의 상대성이 이렇게 성립되나? 혹시 남편이 돈을 못 벌어 와서 아내가 돈을 버는 경우도 폭력적이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이 전업주부로 열심히 한다면 폭력적이지 않다고 느낄까? 결국 새로운 시도는 다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결론적으로 그 부부는 이로인해 이혼 위기까지 갔다가 명절에는 남편과 아내가 따로따로 자신의 본가로 가서 차례를 지내기로 했고 자녀들만 양가집에 번갈아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질문을 바꿔라!

오늘 이 글에서 논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 것이다. 대다수가 믿고 행하고 있다고 해서 그에 반하는 일은 모두 폭력적인가? 대부분의 혁신, 혁명운동은 그런 기존 테제에 반(反)하는 것으로 시작해 왔다. 그것이 운동이다!

그 남성은 남녀로 구분되지 않는 사회에선 진보를 자칭하면서 가정 안에서는, 남녀관계에서는, 권력의 상하관계를 기존 관습에 힘입어 유지하려는 속셈이 있지 아니한가?

우리들의 아버지는, 남편은, 또 나는 어떠한가? '내 아내는 지금 이 상하관계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자부하시는 분이 있다면 더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내가 진정 만족하고 있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입으로는 '만족해' 하면서도 속은 곪고 있는지. 기존의 관습이 그 정도에 '만족해'라고 말하는 여성을 미덕이라 생각해서 그리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만약 이를 밝히기 위해 설문조사를 한다면 이렇게 "당신 주변에 대부분의 여성이 명절에 친정과 시댁을 번갈아 차례 준비하러 간다고 할 때, 당신은 늘 시댁으로만 먼저 가는 것에 만족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냥 기존의 모든 불균형한 상태를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선호 의사를 묻는다면 "지금처럼 모든 여성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시댁에 먼저 가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깨고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답을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권과 평등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인권 운동의 전선에서 여성계급으로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대한 '하지 않는 평등'의 실천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처럼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 '하지 않음'을 실천하는 운동은 상대(counterpart)역의 올곧은 인권의식에 기초해야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힐러리 클린턴이 '여성의 권리는 인권입니다'라는 단순 명확한 명제를 북경여성대회에서 말한 지도 18년이 되었다.

그렇지만 국제적인 흐름에 흉내내기를 잘 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겉보기엔 번지르한 성평등 법제 속에서 여전히 여성들은 전통적인 성역할을 참아낼 것을 강요받고 있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을 폭력적인 사람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남성이 다 그렇다고 일반화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명절차례의 평등 이야기를 하면 "뭘, 그런 것까지 꼬치꼬치 평등을 챙기겠다고 나서나?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지"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여성운동 선배들도 "살살 해라! 감정 다치면 너만 손해야!"라며 만류한다.

진정한 휴머니스트라면...

정말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왜 휴머니스트 남성들이 내 말에 동조하지 않는지이다. 진정한 휴머니스트라면 딸 하나 있는 부모가 명절날 딸과 함께 돌아가신 조상들의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명절을 준비하며 '하하호호' 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 줘야 할 게 아닌가 말이다. 아니 어쩌면 남성 휴머니스트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싶을 것이다. 침묵하면 편하고 유리하기에.

딸 가진 아버지들 몇몇은 동조한다. 그러나 그 딸을 통해 가진 소수자 계급성은 몇몇 희귀 사례를 제외하곤 자신이 가진 남성 계급성을 능가하지 못하더라. 그래서 사회 전체적인 힘의 논리 측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기울어 있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성평등 운동에 더 적극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탈 젠더 사회를 위해

또 하나 재미있는 경향은 남성들이 이와 같은 전면적 공격을 받을 때 주로 써먹는 레퍼토리가 있다. "남성들도 여전히 요구되는 전통적 성역할을 다 하느라, 즉 가족을 벌어 먹여 살리느라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군대 다녀온 것에 대한 인정욕구도 이에 한 몫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성들도 젠더화된 사회의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성평등 운동에는 남과 여가 모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성평등 운동을 어느 한 쪽의 운동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분명 남성들이 젠더화된 사회에서 보는 피해도 만만치 않다. 기존의 스펙 위주 사회에서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든든한 직업을 갖지 못한 남성의 경우 결혼시장에서 하위를 차지하는 상황이나 아이가 태어나면 신생아 시기에 교감하고 옆에 있어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가 무시하고 팔불출 취급하는 것 등등..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얼마든지 나올 것이다.

40여 년을 여성이라는 명함으로 살아온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피해 남성들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고민들을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탈 젠더 사회를 위해 남과 여가 함께 머리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제안을 해도 남성들은 꼬리를 뺀다. 별로 성평등 운동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전체적 힘의 관계에 있어서 남성이라는 명함이 버틸 만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감히 추측하는 바이다. 게다가 이런 것을 따지고 드는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인식도 한 켠에 양념으로 추가된다.

그냥 나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남과 여라는 이름을 던져버리자! 그냥 나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아이들 하나하나를 보고 함께 놀며 그 아이의 고유성 자체를 칭찬해 주고, 자신도 스스로의 고유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하자. 여성으로서 이만한 몸매를 가졌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육체를 가졌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남성으로서 이만한 경제력을 가졌음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고 솔직하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자.

내가 바라는 탈젠더적 평등평화세상이 그리 멀고 실현불가능한 것일까? 자본주의가 늘 상업광고에서 극대화시키고 있는 성별이원화에 둔감해지면 가능하다.

국가주의가 늘 결혼제도 또는 출산장려제도로 여성과 남성들의 국가 노예성을 강요하고 있을 때 오히려 나로서, 당당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살려고 노력하면 가능하다. 내가 살자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이미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을 보고 침묵하지 않으면 가능하다.

여러분, 가능하다고 말해주세요! 당신이 말해 주실 때 그리고 손 내밀어 주실 때 정말 가능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www.onlineif.com '솔개엄마의 저공비행'에도 동시에 실렸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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