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공천뇌물 사건, '통합진보당 버전'으로 보기

[주장] 비례대표 선출 둘러싼 두 사건, 이중잣대는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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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수(hs1578)등록 2012.08.12 10:58

통합진보당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5월 2일 오전 국회에서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위한 온ㆍ오프라인 투표에 총체적 부실과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인정한 뒤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 남소연


몇 달째 언론을 달구고 있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 논란으로 통합진보당은 지금 분당의 기로에 서 있다. 당 해산운동까지 일어나고 있어 한 치 앞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공천뇌물 사건이 터졌다.

통합진보당의 부정 경선 논란과 새누리당의 공천뇌물 사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전제'하자면, 새누리당의 공천뇌물 사건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과는 비교가 안 되는 사안이다. 제대로 법이 작동되는 나라라면 새누리당은 당연히 '정당 해산' 감이라는 비판도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배달 사고나 제보자의 정치적 거짓말일 수도 있으며, 설사 사실이더라도 개인적인 비리이므로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의원이 책임질 일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 둘을 대하는 정치권과 언론의 태도는 너무나 달라 보인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의혹에 들이대었던 그 잣대를 새누리당 공천뇌물 사건 의혹에 적용해보자.

1. "누가 부정 했는지는 모르지만"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은 "총체적 부정"

애초 통합진보당은 윤금순-오옥만 후보, 이영희-노항래 후보 사이의 부정 선거 논란이 있어 선거 후 당 차원의 진상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1차 진상조사 결과는 이 두 논란은 빼고 부정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채 '총체적 부정 부실 선거'로 결론지었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투표수의 대부분(87% 정도)을 차지했던 온라인 투표에서 투표 프로그램 수정이 이뤄진 것을 두고 "투표함을 여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부정선거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조준호 당시 진상조사위원장은 "부정을 확인하지 못했다"면서도 '부정이 없었다'고 밝히지는 않았다.

진상조사위의 결론 발표는 비례대표 의원 및 경선 후보자들의 총사퇴 주장으로 이어졌다. 천호선 당시 대변인도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부정에 연루돼 있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사퇴를 거부하는 의원들을 부정의 장본인으로 몰아갔다. 그래서 이정희 당시 공동대표는 "오류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의혹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런 가정과 결론을 새누리당에 그대로 적용해보면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경선은 총체적인 부정이다. 현기환 공천위원과 현영희 후보 사이에 3억 원이 오고 갔고, 전 당대표였던 홍준표 의원에게도 3000만 원이 갔으며, <한겨레> 등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또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 최소 2~3명에게도 돈이 흘러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통합진보당에 들이대었던 잣대로 하자면, 현재 거론되는 것은 비례대표 23번의 현영희 의원이 돈을 주었다는 것이지만 다른 앞 순위 비례대표 후보들도 돈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고, 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므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경선은 총체적 부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2. "억울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 책임을 지고" 새누리당 비례대표 "총사퇴"

4.11총선 당시 비례대표 후보 공천과 관련 거액의 공천헌금을 준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현영희 새누리당 의원이 3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혐의에 대해 해명한뒤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 남소연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논란에 대한 1차 진상조사위원회의 결정이 나오고 당 중앙위원회는 비례대표 경쟁명부 후보 전원의 사퇴를 권고한다. 누가, 어떤 부정을 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천호선 당시 대변인은 "누가 부정을 했다거나 특정인, 특정세력이 부정했다는 증거까지는 조사되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우리가 보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정이든 부실이든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부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도 전원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별로 받아쓰지는 않았지만 강기갑 대표도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부정 선거를 저지른 당사자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같이 지자는 것"이라고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이 잣대를 새누리당 공천뇌물 사건에 들이대보자. 현재 문제가 되는 현영희 의원을 둘러싼 의혹이 있어 부정의 주체가 누군지, 얼마나 심했는지를 따지지 말고 새누리당은 국민 앞에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비례대표 후보 전원 사퇴" 결정을 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비례대표는 모두 현영희 후보와 같은 방식으로 후보 순위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3. 단 한 명이라도 비례대표 사퇴 거부 시 "제명 또는 출당"

부정경선 논란 후 진보당은 부정의 주체와 상관없이 모든 경쟁부분 비례대표들의 사퇴가 결정되고 후보자들에게 이를 권고했다. 그러나 이석기, 김재연, 조윤숙, 황선, 김수진 등의 후보들은 자신들은 부정 선거를 하지 않았으며, 부정 선거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이 먼저라고 주장하며 사퇴를 거부했다.

결국 조윤숙, 황선 후보는 당에서 제명되었고, 김수진 후보는 뒤늦게 사퇴했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국회의원 제명은 의원 총회 과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정당법에 의해 의원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해 제명을 면했다. 결론은 서로 달랐지만 비례대표 총사퇴를 거부한 의원들에 대해서 통합진보당은 제명을 결정했다. 이를 새누리당 공천뇌물 사건에 적용해보면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새누리당 비례대표 선출에 공천뇌물이라는 부정이 있었다는 논란이 일어났으므로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모든 비례대표 후보의 사퇴를 결정했는데, 후보들이 '나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 사실 확인이 먼저다'라고 주장하며 사퇴를 거부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이들을 모두 제명 또는 출당을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통합진보당에 적용된 방식이다.

4. 선거의 최고 책임자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사퇴 후 침묵의 형벌"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가 5월 12일 경기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차 중앙위원회 개회직전 대표직 사퇴의사를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뜨고 있다. ⓒ 남소연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정희 공동대표는 임기 중 사퇴를 결정하였으며 '침묵의 형벌'을 자처하며 당대표 출마도 포기했다. 당시 이정희 공동대표가 부정 선거를 지시, 공모한 사실이 없음에도 자신이 대표였던 시절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책임을 진 것이다.

이를 새누리당 공천뇌물 사건에 적용해보자. 당시 새누리당의 '사실상' 대표는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물론 그가 현영희 공천뇌물 사건을 지시했거나 그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그는 새누리당의 대표였으며 선거 총책임자였다는 점에서 이정희 공동대표와 다른 점이 없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 당시 사무부총장이었던 김영우 대변인이 책임을 통감하며 사퇴를 발표했으며, 이 사건이 사실로 드러나면 황우여 당대표도 사퇴한다고 한다. 그러나 김영우 대변인이나 황우여 현 당대표는 이 사건을 책임질 위치에 있지 않다. 누군가가 책임을 진다면 그 당사자는 당시 최고 결정권자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임이 분명하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공동대표에게 적용된 잣대대로라면 박근혜 위원장은 당 대표로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하며 이후 대선 출마 역시 포기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 책임 질 일이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 '비박' 경선후보들도 처음에는 '박근혜 책임론'을 거론하다가 황우여 당대표로 표적을 바꾸었다.

5.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전원에 대한 '국회의원 자격심사'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이 발생하자 여기에 종북논란까지 더해서 곧바로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국회의원 자격심사를 요구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들에게 부정선거 논란이 있으니 국회에서 이를 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통합당과 함께 자격심사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새누리당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논란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공천뇌물 사건이 발생하였으므로 이는 더 확실한 국회의원 자격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들의 부정 여부와 상관없이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자격심사의 대상이라면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전원이 자격심사 대상이 된다. 당연히 11번으로 당선된 박근혜 의원 자신도 자격심사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의원이 이를 동의할 가능성은 없다.

민주통합당 역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논란을 이유로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결정한 것처럼,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과 박근혜 의원을 비롯한 비례대표 당선자 전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주장하는 것이 이중잣대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현대판 매관매직 사건... 새누리당 '콘크리트 지지율'에 영향 미칠까

5일 오후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자 선거 20대 정책토크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가 최근 불거진 공천헌금 파문과 관련된 질문에 답한 뒤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새누리당의 공천뇌물 사건은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논란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이다. 그런데 정치권이나 언론은 이 사건을 새누리당에 악재라고 하면서도 통합진보당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잣대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통합진보당은 부정 선거 당사자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적 책임을 이유로 모든 경쟁부문 비례대표 사퇴를 결정했고, 당대표 이하 모든 간부들이 사퇴했다. 또 진실 규명이 먼저라고 주장하며 비례대표 사퇴를 거부한 후보들의 제명을 결정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어떤가? 새누리당 윤리위원회는 현기환, 현영희 의원 두 당사자를 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공천헌금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참 우습다. 공천헌금이 사실이 아니면 두 사람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인데, '부적절한 처신으로 당에 물의를 일으켰으므로 제명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공천뇌물이 사실로 밝혀지면 공천의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을 두고 황우여 당시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고 한다. 새누리당의 김영우 대변인은 사퇴하면서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당을 위해 두 번씩 헌신한 우리 당의 유력 후보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하며 박근혜 책임론을 애써 덮으려고 한다.

책임론이 다른 비례대표 당선자들에게 확대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김영우 대변인의 사퇴 발표와 황우여 대표의 조건부 사퇴 가능성 발표는 아무래도 꼬리 자르기로 보인다.

당의 최고 책임자였던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이 직접 공천심사위원으로 추천한 현기환 의원이, '박근혜가 선택한 여자'라고 광고하고 다니던 '친박 조직' 포럼부산비전 대표 현영희 의원에게 돈을 받은 사건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 중 현영희 의원이 유일하게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현재까지 박근혜 의원은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있어 아직 사실이 확인된 것도 아니고,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적 비리이니) 자신이 책임 질 일 없다"는 입장으로, 일부에서 제기하는 사퇴 주장을 일축했다.

차떼기 선거자금 부정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대표 선거 돈봉투 살포 사건, 선관위 디도스사건 등의 대형 악재에도 살아남아 '콘크리트 지지율'이라 불리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의원에게 현대판 매관매직이라는 공천뇌물 사건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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