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한국 영화 이래도 좋은가

검토 완료

김진호(jnk057)등록 2012.08.17 11:29
재미있는 영화

각종의 재주를 지닌, 그러나 각자의 계산은 다른 도둑 10명이 함께 홍콩의 '태양의 눈물'이라는 보석을 훔치는 얘기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도둑들 간의 사랑과 배신, 복수가 어우러져 있다. 감상하는 관객이 계속 긴장하며 머리를 굴리게 하므로 재미가 있다. 사실상 가장 큰 재미의 매력이라면, 무슨 치밀한 계획이 없는 듯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마치 매우 의리와 신의를 지니고 한편인가 하면,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이미 배신의 길을 걷게 만든 테크닉이다. 

물론 영화의 재미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기본이다. 표정, 대사, 액션 등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이다. 또 하나, 영화마다의 특별한 액션은 잘 된 영화에서 감초의 역할을 한다. 《도둑들》에서 와이어를 이용하여 고층건물 벽을 타고 자유자재로 펼치는 액션이나 육중한 금고를 열기 위한 그 미세한 동작과 긴장감이 또한 재미를 더한다. 각 장면으로 보면, 박진감과 빠른 전개도 재미라는 면을 증가시킨다.

단조로운 내용

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은 내용의 단조로움이다. 보석을 훔치기 위한 하나의 목표 아래 도둑들의 '작전'이 전개되는 과정을 다양하게 그린 것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흐름상 갈등의 폭은 다양하지도 않고 주제도 아리송하다. 도둑들 간에도 있을 수 있는 의리나 사랑? 아니면 도둑이기 때문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배신의 세계?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마카오박의 복수를 위한 다른 도둑들의 들러리? 혹은 또 도둑질 하다가 비참하게 죽음과 사고를 당하는 권선징악? 사실 그 어느 것도 아니며, 그 모두 다일 수도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무엇을 의도했을까? 그런 주제나 감동을 찾을 것 없이, 보는 순간순간의 긴장과 액션과 코믹을 즐기라는 의도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즉 영화 전체의 주제나 전개, 줄거리 보다는 각 장면 하나 하나에서 웃음과 긴장, 반전의 재미를 느끼라는 것밖에 안 된다. 큰 줄기로서의 스토리에 있어서는 갈등과 반전이 없다. 이를테면 마카오박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가운데 우연히 펩시를 좋아하게 되며, 죽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한다. 차라리 보석을 훔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오랜 원한의 복수를 함으로써 보석을 바다에 던져버린다든가, 또 아니면 처음부터 사랑이 목적이면서 이를 감추고 도둑들을 이용하다가 그 의도가 들통 나서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을 지키는 결말이라든가, 하는 식의 큰 줄기 상의 반전과 갈등이 없다. 관객에게 재미만을 보여주었을 뿐 '무엇에' 대한 영화인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오락성 영화

이 《도둑들》 역시,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단지 보는 순간의 재미를 위한 영화일 뿐이다. 즉 실컷 웃고, 정신없이 총을 갈기며, 그 가운데 키스신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아슬아슬한 와이어나 엘리베이터 속 긴장을 즐기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다 보면 아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이런 느낌은 오늘날 방화든 외화든 공통된 점이다.

왜 요즘 영화는 황당무계한 외계인이나 엄청난 상상의 기계를 동원한다는 식의 영화밖에 없을까? 이 시점에서 한번 지난날 우리가 이른바 '명화'라고 부르는 대작들을 돌아보라.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영상을 잊히지 않고, 몇 십 년이 지나도 되풀이해서 사랑받는 영화들이 그것이다. 지금은 그런 영화가 없다. 그 원인이 아마 소재 빈곤에 시달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욱 큰 이유는 현대인의 의식과 요구가 변한 때문이다. 영화 제작자들은 현대인들이 선진국이든 아니든 대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깊은 생각을 하거나 여운이 남는 영화를 싫어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단조롭지만 기상천외한 장면, 관람하는 동안 아무 생각 없도록 정신없이 만들어버리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또 그런 영화 제작자들은 어느 정도 현대인의 감성과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둑들》 상영관에 관객이 꽉꽉 차는 이유가 그것이다. 

《도둑들》, 예술성을 등져 버린 현대 영화의 현주소 

이 영화가 관객 1천만을 넘었다 한다. 그것은 영화예술을 위해서는 비극이다. 이 《도둑들》은, 가족을 위한 용기와 집념을 그린 《괴물》이나, 또는 장차 닥쳐올 가능성이 충분한 쓰나미와 그로 인한 모든 것의 파괴를 보여준, 그리고 사후이긴 하지만 2011년 3월의 일본 대지진에서 현실화된 《해운대》와는 다르다. 《도둑들》은 그야말로 실컷 즐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실컷 즐기면서 재미있다는 것만으로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영화는 흥행을 위해 만들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예술이다. 만일 재미만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면 굳이 영화를 볼 것 없이 안방에서 TV로 《개그콘서트》를 보는 게 낫다. 영화는 재미를 넘어 인문학과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화 한 편이 예술적 감성을 자극할 수 있고, 관객이 심미적(審美的) 감동을 얻는다면 좋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웃으면서도 눈물이 있고, 해학 속에 의미가 있어야 하며, 재미있으면서 철학과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아무 메시지도 없는 《도둑들》에 관객이 몰리고 흥행에 성공한다면 이는 영화가 예술로서는 퇴보하고 있다는 슬픈 증거이다. 영화의 예술적 미감은, 좋은 영화를 만들려는 감독과 배우는 물론, 좋은 영화를 끊임없이 찾고 요구하며 비평할 수 있는 관객의 수준이 있어야 가능하다. 《도둑들》이 성공한다면 영화예술의 환경은 더욱 열악해 질 것이고, 독립된 예술장르라 할 것도 없이 만화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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