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헌화' 막다 멱살 잡힌 쌍용차 지부장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도중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바닥에 누워 헌화를 막자, 경찰이 김 지부장의 멱살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광폭 행보가 전태일 열사 앞에서 28일 오전 저지됐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어두운 이면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박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은 아버지인 박정희 시대의 과오를 안고 가겠다는 후보의 의지란 평가가 쏟아졌다.
그러나 박 후보를 멈춰세운 것은 현 시대의 어두운 이면이었다. 1895일 간의 농성, 김소연 분회장의 94일 단식 농성 등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대명사가 됐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 있었다. 22명의 동료들을 앞세우고 "죽음의 행렬을 멈추라"며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한 달 동안 농성 중인 쌍용차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전태일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다, 전태일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다, 전태일은 재능교육 특수교육 노동자다, 전태일정신 훼손하는 정치놀음 중단하라"고 적힌 피켓 등을 들고 당직자들과 기자들을 골목 밖으로 몰아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도 "전태일 정신 없이 재단에 오는 것은 그 자체가 무의미 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그는 "하루하루 생존에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공권력을 넘어서는 용역이라는 폭력배들에게 짓밟히는 이 무법천지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우선 시정하고 해결하려는 마음의 진실이 먼저 앞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쌍용차 22명의 노동자들의 죽음이 있는 대한문 분향소부터 방문하고 쌍용차 문제부터 해결한 후에 오는 게 순서라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다시는 오지 말라, 여기가 어디라고" VS "경제민주화 해주세요, 믿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결국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이날 전태일 여사의 어머니 고(故) 이소선 여사 빈소에 헌화·조문한 뒤, 전태일 열사와 함께 청계천피복노조 활동을 했던 '바보회' 회원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발길을 돌리는 그를 향한 상반된 목소리가 쏟아졌다. 골목길을 막아섰던 한 남성은 박 후보의 등 뒤에서 "다시는 오지 말라,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고 소리쳤다. 또 다른 남성은 "경제민주화 해주세요,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청계천 6가 평화시장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 후보가 차에서 내리자, 다리 위에 있던 시민들 중 일부가 박수를 쳤다. 노동자들의 반발에 "박 후보가 무슨 잘못이냐"면서 박 후보를 두둔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강경했다. 동상 앞을 지키고 섰던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박 후보를 향해 "전태일 정신을 모독하지 마시라"고 소리쳤다. 동상 앞에 주저앉아 박 후보의 헌화마저 막았다.
박 후보의 재단방문 및 동상 헌화를 준비하고 안내했던 김준용 국민노총 자문위원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김정우 지부장은 김 위원을 향해 "여기가 어디라고 (박 후보를) 모시고 오나, 제 정신인가"라며 "다 팔아먹고 조지고 잘 한다"고 비난했다. 한 여성은 김 위원을 향해 "전태일을 팔아 장사하지 말라, 노동부 장관이라도 하려고 하느냐"고 힐난했다.
김 자문위원은 친박 외곽조직인 '국민희망포럼'의 노동위원장도 맡고 있다.
전태일 열사 유족이 요구한 '쌍용차 분향소' 방문 이뤄질까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전태일재단을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태일재단 입구 앞에서 쌍용차노조 조합원과 민주열사추모연대 회원들이 박 후보의 방문을 반대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박근혜 후보가 다시 전태일재단을 방문할 가능성은 낮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후보가) 재단 방문 준비를 많이 했는데 결과적으로 무산돼 안타깝다"며 "그 쪽에서 오지 말라면 못 가는 것이지, 다시 갈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날 박 후보를 수행한 이상일 대변인도 '재방문 가능성'에 대해 "다시 되겠나"라며 낮게 평가했다.
다만,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 등이 요구했던 '선(先)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분향소 방문' 요구가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실제로 이날 예정에 없던 박 후보의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분향소 방문 얘기가 돌아 남대문경찰서 소속 전경버스들이 대한문 일대에 배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측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재단 방문 이후 일정은 없었다"며 "분향소를 방문하려다 취소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이번 재단방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후문도 나온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나, "박 후보가 재단 측이 고민하고 있는 '전태일기념관' 건립 문제 등 여러 사안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비정규직·최저임금 등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박 후보의 생각도 이날 일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의원은 "박 후보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분향소를 찾는 건 어렵다"고 짚었다.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하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해결을 위한 소위' 구성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 상황인데, 박 후보가 분향소를 찾을 경우 당의 입장이 애매해진다는 설명이었다.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이창근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박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은 앞뒤가 바뀌었다"며 "전태일 열사는 단순한 1명의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인만큼 정말 진정성 있게 접근하려면 내용적으로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쌍용차 문제 등 노동현안에 대한 입장부터 정리한 다음 전태일재단을 찾아가는 게 순서였단 얘기다.
새누리당 "아무리 방해하고 장막 치더라도 박근혜 통합 행보 막지 못할 것"
한편, 새누리당은 재단 방문 무산에 대해 안타깝지만 박 후보의 광폭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재단 방문은 전태일 열사의 뜻을 기리고 앞으로 국정에 그 분의 유지가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보수와 진보로 분열된 현재의 우리사회를 통합하여 100% 대한민국을 구현하려는 국민통합에 대한 소신과 각오가 깃들여져 있었다"며 "이번 방문 무산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가로놓인 큰 벽과 강을 실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새누리당은 이러한 큰 벽과 강을 앞으로도 계속 허물거나 메워서 국민통합을 위해 더 큰 노력과 소통을 하겠다"며 "다만, 전태일 열사의 동생분이 민주당 현직 국회의원(전순옥 의원)이기 때문에 민주당도 좀 더 열린 자세를 갖고 국민통합을 위한 노력에 동참해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상일 대변인도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박 후보가 재단을 방문하려 한 것은 산업화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시대의 그늘에서 고통을 겪었던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며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박 후보는 민생 현장으로 달려가 고초를 겪고 있는 서민들의 손을 잡고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총력을 다할 것"이라며 "국민을 분열시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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