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대한 국내 언론사들의 '충성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삼성이 지난달 미국 특허 소송에서 애플에 패하자 국내 언론들은 "나만큼 삼성을 위하는 언론사는 없다"는 듯 다양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기사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삼성에 대한 '맹목적인 구애' 기사가 대부분이다. 어떤 기사는 매우 감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혹은 삼성의 보도 및 참고 자료를 받아 쓴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기사도 눈에 띈다. 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비판, 따뜻한 애정을 담은 촉구다. "넌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아", "이렇게 너를 사랑하니 내게 신경 좀 써 줄 거지?"라는 기사는 오히려 삼성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최근 쏟아지고 있는 국내 언론들의 삼성 기사는 그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삼성을 해치고 있다. 국내 언론들의 맹목적인 충성 기사가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왜 그렇게 무모한 행태를 저지르고 있는지 짚어본다. ◇"원조 카피캣(copy cat)은 애플"=A 경제지는 지난 4일 기사를 통해 애플이 회사명, 아이폰 이름, 아이팟 기술 등을 무차별적으로 베끼고 훔쳐 성장한 기업이라고 비판했다. '애플은 그 어느 기업보다도 화려한 카피캣의 역사를 지닌 기업'이라며 각종 사례를 자세하게 제시했다. 애플은 첫 출발부터 팝 그룹 '비틀즈'의 '사과' 로고를 베꼈고, 애플의 창의적 산물로 알려진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나 마우스도 처음엔 복사기 업체 제록스에서 출발했다고 지적했다. 또 '아이폰'이라는 브랜드도 미국 최대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의 것이었고, 멀티터치 기능도 이미 그 전에 재미교포 2세가 개발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위기에 몰렸던 애플의 재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MP3 플레이어의 경우 국내 새한그룹이 1997년 처음 상용화한 것으로, 애플이 이를 무단 복제했다고 비판했다. B 경제지도 같은 날 '애플의 35년 역사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보다는 카피캣'이라는 기사를 통해 거의 동일한 내용을 실었다.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 △'아이폰'이란 브랜드 △'아이팟' △멀티터치 기능 △매킨토시 전원연결장치 '맥세이프' 등을 자세히 열거했다. 두 언론사의 의도는 명백하다. 원조 카피캣인 애플이 삼성을 욕하고 소송할 자격이 없다는 것. 하지만 이같은 기사는 삼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빗나간 충성 경쟁의 대표 사례일 뿐이다. A 경제지는 나아가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삼성, 1조원 이상 얻었다, 주식살까 고민중'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 소송에서 패배한 삼성이 "1조원 이상을 얻었다"는 현지 반응을 여과없이 담았다. 또 "지금이야말로 애플 주식을 팔고, 삼성전자 주식을 살 때"라는 한국계 벤처캐피탈 대표의 의견도 전했다. 하지만 기사 어디를 봐도 '왜 삼성이 이번 소송 패배를 통해 1조원 이상을 얻게 될 지'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소송은 삼성이 애플과 유일하게 '맞짱' 뜰 수 있는 기업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며 "이것만으로 1조원 이상"이라는 한 벤처기업인의 말이 유일한 단서일 뿐이다. 그러니까 삼성이 이번 소송 패배에도 불구하고 1조원 이상을 거둘 것이라는 다분히 자의적인 기대감을 가까운 현실로 바꿔치기한 셈이다. C 경제지는 이에 앞서 3일 삼성이 애플보다 6개월 앞서 아이폰 디자인과 유사한 디자인을 국내 특허청에 특허 출원했다고 단독 형태로 보도했다. 나아가 애플이 아이폰 디자인 특허출원시 참고문헌 목록에 삼성전자와 아이리버 디자인을 포함시켰다고 전했다. B 경제지도 애플이 아이폰 출시 전에 삼성전자의 F700과 LG전자의 프라다폰을 벤치마킹했다는 증거로 관련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공개했다. 이번 미국 소송에서 삼성전자는 F700 관련 자료를 증거로 제출했지만 법원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애플의 이같은 자료는 예상 경쟁사의 개발 및 제품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일상적인 활동일 수도 있다. 비교 우위 확보를 위한 단순 검토와 상대방의 장점을 취하기 위한 벤치마킹은 크게 다른 활동이다. 국내 언론들은 또 미국 배심원 평결을 주도한 벨빈 호건 배심원장이 애플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삼성 구애 기사용으로 딱 구미에 맞는 '꺼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구애 작전은 생존전략(?)=국내 언론의 삼성·애플 관련 기사들이 애국심과 삼성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란 IT 거대 시장에서 발목 잡힐 경우 삼성에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 미국에서 삼성의 주요 스마트폰이 판매금지될 경우 그 폐해는 단지 미국 시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브랜드 가치의 심각한 훼손→판매 및 매출 감소→신제품 개발 및 신규 투자 위축'이란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감정적이고 국수주의적인 편들기는 오히려 삼성에 독이 된다. 물론 삼성 입장에서 국내 언론들의 충성 기사들은 당장 기운을 북돋아주고 국내 시장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 판매 및 매출 감소를 막아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같은 기사들은 단기 도취 후 쇠락이란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언론사들의 충성 경쟁 뒤에는 △삼성의 막강한 자금력과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언론사 경영 환경이 씨줄과 날줄을 형성하고 있다. 중앙 일간지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적게는 5%, 많게는 20% 가까이를 삼성그룹으로부터 거두고 있다. 삼성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쉽게 말해 삼성이 지원액을 줄이면 해당 언론사의 살림은 당장 쪼들리게 된다. 게다가 지금은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이다.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위협받는 시기다. 실제 상당수 언론사에서는 경영진들이 삼성을 비롯 현대차 LG SK 등 주요 대그룹에 대한 비판 기사를 아예 내보내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비판기사 금지 가이드라인'이다. 설사 일선 기자가 이들 그룹에 대한 비판기사를 작성했다 해도 경영진의 요구를 따라야하는 데스크의 손에 의해 원천봉쇄된다. 다만 일시적으로 '긴급한 필요가 발생했을 경우'에 한정해 아주 제한적으로 금지 가이드라인이 풀리는 경우가 있긴 하다. ◇정말 삼성에 도움을 주려면=삼성의 갤럭시 시리즈가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를 바짝 뒤좇아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는 너무나 초보적이어서 스마트폰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갤럭시 A(갤럭시 A는 "우리도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삼성 스스로의 의구심에서 출발한 시제품이라 할 수 있다)에서 출발해 갤럭시 S, 갤럭시 S2, 갤럭시 노트, 갤럭시 S3로 진화해왔다. 애플의 아이폰 1·2·3·4의 출시는 갤럭시 시리즈의 진화를 독려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삼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 기업 중 가장 뛰어나고 가장 성공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다. 가전·TV·반도체 부문에서 모두 그랬다. 소니 등 일본 업체들이 개척해 놓은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원조'들을 제치고 '세계 1등'으로 우뚝 섰다. 원조들은 '아~ 옛날이여'를 되뇌며 삼성을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애플이 많은 안드로이드 업체 중에 유독 삼성을 제일 먼저 골라 공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애플은 삼성이 그 어떤 회사보다 똑똑하고 잽싸다는 것을 안다. 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 설계 및 제조업체다. 갤럭시 노트로 그 실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하지만 하드웨어 기술·제품·시장은 전체 IT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80%는 소프트웨어 관련 시장이다. 애플은 아이팟, 아이맥,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뤄진 하드웨어군 외에 자체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를 일찌감치 개발했다. 또 앱스토어, 아이튠즈, 아이클라우드 등을 통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완전히 연결한 '애플 생태계'를 구축했다. 반면 '삼성 생태계'는 없다. 이는 삼성전자가 자동차업계의 보쉬처럼 세계 제1의 IT '부품업체'가 될 순 있지만 세계 최고의 IT 업체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삼성은 스마트폰의 엔진이라 할 수 있는 모바일 운영체제 개발에서 한참 뒤진 상태다. 자동차업계와 비유하자면 삼성은 아직 진정한 완성차업체가 아니라 뛰어난 자동차 조립업체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나마 매우 적지만 일부 언론사에서 이같은 삼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애정 어린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게 다행스럽다. 경향신문은 최근 '기자 칼럼'을 통해 아래와 같이 아주 적절하게 지적했다. "온 세상을 뒤흔든 새로운 제품을 삼성전자에선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애플과의 소송전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삼성이 패스트팔로어인지, 카피캣인지도 각국 법원마다 엇갈린다. 다만 애플은 삼성에 큰 물음을 던졌다...스마트폰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세상을 흔들 제품은 나올 것이다. 삼성전자가 이젠 그런 제품들을 만들 준비가 돼 있느냐고, 애플이 묻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소송전을 계기로 답해야 한다. 삼성이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면 1조원을 물어준다 해도 남는 장사다.' #삼성 #애플 #삼성 애플 소송 #갤럭시노트 #아이폰5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