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말한다 - 들어가는 말

닫힌사회로서의 학교에 문제의식을 가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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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neotroll)등록 2012.09.12 11:52
내가 교대를 졸업하고 학교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선배교사들이 학교를 '공장'으로 표현하시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학교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 역시도 기꺼이 '공장'이라 답할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다방면에서 실로 눈부신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학교사회는 별로 변함이 없다. 왜 유독 학교사회만 변화가 없을까? 나는 그 주된 이유가 학교가 '닫힌 사회'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공공기관 가운데 시청이나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는 직원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보인다. 기관의 주인인 시민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직무에 임하는지가 대충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일반 시민은 물론 학부모의 입장에서도 동사무소나 은행 드나드는 것에 비해 학교를 출입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업무의 성격상 교육행위를 외부에 노출시키기에 한계가 있고 또 교육 본연의 목적상 배움의 터가 어느 정도 은둔의 성격을 갖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학교는 다른 기관에 비해 닫힌 사회이고 그 폐쇄성은 필연적으로 어떤 불합리를 낳기 마련이다.
옛말에 "병은 소문을 내서 고치라"고 했는데, 학교라는 유기체의 병은 좀처럼 외부로 소문이 나지 않아서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왜 바깥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까?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행위의 주체들이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닫힌 사회에서 내부자가 입을 다물면 바깥세상에선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왜 내부자들은 입을 다무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인과관계를 조망할 수 있지만 나는 간단히 교직사회에 만연한 '침묵의 문화'에 교사들이 익숙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자 한다.
속성상 닫힌 사회일수록 '내적 단결'을 강조하는 법이다. 현장에 발령 받고서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 중의 하나가 이 집단에선 이상하게도 인화(人和)를 유달리 강조하는 점이다. 학교 발령 받고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순진하게 자구(字句) 그대로의 뜻으로 생각하며 별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서로 화합하여 열심히 일하자'는 뜻으로서의 선량한 기치에 반감을 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교직사회의 현실 속에서 이 말은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뜻으로 구성원들에게 각인되는 점에서 의구심을 갖게 한다. 나아가,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뜻은 '문제가 있어도 입을 다물어라'는 뜻임을 알게 될 때 전율하게 된다. 군대사회가 아닌 이상, 학교라는 곳에서 기밀이나 보안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학교사회에서 과연 누구를 위해 비합리적인 일상이 비밀에 붙여져야 하는 것일까? 학교가 개인 사기업이 아닌 공적 교육기관이라면, 오히려 내부자들은 학교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널리 알려 병을 치유하도록 일조하는 것이 그 본연의 임무에 부합하며 반대로 '인화단결'에 편승하여 문제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직무유기'인 것이다.
학교사회에 무슨 문제가 그리도 많다고 이렇게 불편한 화두를 던지느냐고 할 것이다. 그렇다. 다른 집단에 비해 학교사회는 그래도 깨끗한 편이리라 생각한다. 또한 교직계의 구성원들은 다른 집단에 비해 순박하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는 입장이다. 내가 이 졸필을 통해 어떤 사람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나쁜 사람'이 아닌 '나쁜 시스템'에 포커스를 둘 것이다. 그리고 그 나쁜 무엇은 '법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 '교육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도' 나쁜 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의견을 개진할 것이다.
나의 수사법 혹은 글쓰기 전략은 철저히 '지금 이곳'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들은 현실과 유리된 창백한 담론이 아닌 나의 생생한 경험을 터한 실물적인 이야기로 채워갈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와 함께 교직생활을 했던 분들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또 그 분들 중 일부는 내 날선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걸리는 점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유감을 뒤로 하고 내가 이렇게 모진 시도를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모두가 애착을 갖는 학교사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는 사족을 덧붙인다. 우리 사회에서 '교직'보다 더 보람 있고 행복한 직업이 둘도 없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진정으로 교직사회가 교사와 학생이 사랑과 존경으로 만나 신명나게 가르치고 배우는 일터이길 바란다. 그럴 때 학교는 '공장'에서 '희망의 배움터'로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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