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 그놈의 '역사의 심판'은 올해 12월에 하는 거다.'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란 게 있다. '팩트'만 말해보자. 그때, 그 시절,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몇몇 인사들을 권력이 잡아 가둔다. 재판은 신속했고 단호했다. 8명에 대해 사형 선고. 권력의 시녀가 내린 판단이다. 뿐이랴. 선고를 내린 지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다.(30분에 한 명씩이었단다. 새벽에 시작된 집행은 아침녘 끝났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이고, 고귀한 권리인 가족면회는 그들 8명에게 허락되지 않았다.(훗날 8명 중 한 명의 아내가 교도관에게 부탁해 멀리서나마 남편의 얼굴을 봤다는 증언을 한다. 먼발치에서 어린 딸아이의 얼굴을 보여줬을 뿐,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남편은 저 멀리 아내 품에 안긴 딸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많이 컸네. 많이 컸어.' 이때까지 남편도 아내도 사형이 선고되고, 그리 빨리 집행될 거라 전혀 몰랐다. 아내는 그때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이 평생의 한이 되었다.)극악무도한 파렴치범에게 내려진 사형도 이렇게 집행하지 않는다.(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비참한 고문은 필수코스였다. 가족들은 수십 년 동안 죄인처럼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랬던 이 사건을 지난 2007~08년 대법원이 재심해 무죄로 판결했다. 국가는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라고 함께 판결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란 표현을 쓰기도 어려운 사건이다. 어찌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인가. 당사자들과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후세는 먼저 간 그들에게 모두 빚을 진 상태다.이랬던 사건에 대해 여당의 후보는 딴소리, 또는 무지한 소리를 해댄다. 과연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췄는가. 아버지 시대에 대한 부정을 대놓고 하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백 번쯤 양보해서) 이해한다. 그럼에도 당시 국가권력에 의해 고통 받은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죽이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감히 예견한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과 인혁당 사건은 여당의 후보가 본격적으로 링 위에서 싸움을 시작하든, 또는 권력을 잡든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게 분명하다. 그림자가 짙어진다. #인혁당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