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검토 완료

신아연(ayounshin)등록 2012.11.13 09:49
성형수술을 받으러 한국엘 갔던 친구가 엊그제 돌아왔답니다. 얼굴 주름을 펴려고 간다는 소리조차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으니 만나도 모른 척해야 합니다. 상대가 어색하지 않도록 무심히 굴면서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순간 포착을 해야 하니 간질간질한 호기심과 함께 대면에 대한 긴장감마저 돕니다.

그나저나 그 친구가 성형수술을 받으러 간다고 할 때 들었던 심란한 마음이 왔다고 하니 또 도집니다. 아무리 성형이 대세라지만 가까이 지내던 사람의 그것은 '너마저' 하는 배신감과 '난 뭐야' 하는 허탈감, '넌 그래도' 하는 선망감과 '하지만 난' 하는 박탈감 등등 묘한 감정을 요동치게합니다.

마치 교복 입은 친구들에 대한 중학교에 진학 못한 여공의 심정같다고 할까요? 구질한 완행 열차를 가뿐히 뒤로 하고 급 높은 열차로 깔끔히 갈아타는 동행에 대한 처연한 심사라고 할까요.

눈가 잔주름, 입가 팔자주름, 처지는 볼, 두루뭉술한 턱등 마주하고 있으면 거울 없이도 '이 얼굴이 내 얼굴이지, 이렇게 함께 늙어가는 거지'하던 위로에서 이제는 비껴가야 하는 심정이 스산하고 비탄합니다.

자연산 얼굴은 해외 동포사회에나 있다는 말을 한국에서는 한다지만, 웬걸 잦은 방귀 뀌듯이 잠깐잠깐 표 안나게 들락거리며 살짝살짝 티 안나게 고쳐오는 줄 니 알고 나 몰랐단 소리로밖엔 안 들립니다. 수술은 지네들이 받았는데 민망스러운 건 되레 이쪽이니 그럴 때마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것도 짜증납니다.

남의 성형수술에 삐딱한 관심으로 어기대는 연유는, 짐작하셨겠지만 실은 저도 하고 싶어서입니다. 하고는 싶은데 못하는 이유가 일단 버틸 때까지 버텨 보려고, 적당한 시기를 못 잡아서, 남이 알면 '쪽 팔릴까봐', 무엇보다 돈이 없어서 등등이지만 더 큰 이유는 '하면 안 된다, 그런 건 하는 게 아니다'라는 내면의 목소리, 초자아 같은 것이 계속 훼방을 놓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반칙이자 무렴이며 정직하지 못한 행위라며 가치평가와 윤리까지 들이대며 속을 시끄럽게 합니다.

막상 하라면 하지도 못할 성형의 유혹에 시달리다 못해 이쯤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까 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의연하고도 표표히 늙어가기로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지금처럼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아이들 다 컸겠다, 집안 단출하겠다, 더구나 일찌감치 폐경도 되었겠다, 아프지만 않으면 후반전 인생을 설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작 주름살 느는 것 가지고 마치 다 산 것처럼 한숨 쉰다는 건 중년의 위기를 스스로 불러오는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름살로 인해 갑자기 기운이 떨어진 것도 아닐 바에는 나만의 서사를 쓸 수 있는 가슴 벅찬 시기에 뒤태를 보이며 돌아선 젊음의 한 자락을 그러잡고자 자기파괴적 감정에 시달려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패러다임을 바꾸고 정체성과 생의 목표, 꿈을 재조정해야 할 때, 한마디로 삶의 판을 새로 짜야 할 이 중요한 때에 말입니다.

미국의 사회ㆍ교육사업가 새뮈얼 울만(1840~1924)은 시 <청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그가 이 시를 썼을 때가 이미 78세였고, 그러고도 한참 후에 세상에 알려졌다고 하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그냥 나오지는 않았나 봅니다. 이제 저는 얼굴 가득 주름을 잡고도 용기있게 '청춘'을 살고자 합니다. 적어도 세월만으로 늙어가지는 않아야겠기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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