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수첩을 꺼내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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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렬(seunglee61)등록 2012.12.11 17:27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나..."

5년 전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발언의 진위에 대한 질문을 받은 현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답변이다. 우리는 바로 그 '무슨 말'에 현혹되어 지금의 정권을 만들어준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한 표가 얼마나 짜증나고 고통스러운 후유증으로 자신들에게 되돌아오는지를 냉철히 되짚어 봐야만 하는 시점이 또 다가온다. 민주주의의 초음속 퇴보, 친재벌·부유층 옹호 정책으로 인한 기업 간 격차, 중산층의 붕괴, 빈부 격차의 증대, 이념과 세대 간 대립을 통한 사회적 갈등 조장, 정책 없는 대북정책으로 인한 남북한 긴장 악화, 전근대적 토건 마인드로 인한 환경 파괴 등 건강하고 성숙한 민주사회를 만들려면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똑똑히 목도했다.

어떤 이의 지나온 흔적을 보면 앞으로 갈 길이 짐작된다고 한다. 지나온 그 길에 그 사람의 가치관과 철학, 인격과 도덕성 등 삶의 지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의 지나온 길을 꼼꼼히 살펴봐야만 한다. 누군가 대통령이 됐을 때 그 사람의 국정 운용 방향을 짐작해 봄으로써 투표 시 선택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사회적 공기인 방송 등 언론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작금의 방송은 권력에 굴종하며 공정한 보도와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퇴행이냐 미래로의 전진이냐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대통령 선거 시즌에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 등은 대선 관련 방송 시간을 예년 대비 현격하게 축소 혹은 소량 방송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한겨레> 12월6일치)

이는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과 비중을 은연중에 격하시켜 국민들을 무관심으로 유인함으로써 고정 지지층이 있다고 믿는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계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국민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위한 바르고 정확한 보도와 정보 제공 등으로 공적 기능을 수행해야 할 방송 등이 오히려 자칫 국민을 미혹할 우려가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더 이상 방송에 의존하며 판단 자료를 도출하는 것을 이제라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각자의 '수첩'을 꺼내야 한다. 어느 누구처럼 모르는 지식을 훔쳐보기 위한 수첩이 아니라 반복되는 불행을 막기 위해 우리의 가슴과 머리에 담아둔 '기억의 수첩'을 꺼내자는 것이다. 그 기억의 수첩에서 지금 후보로 나온 분들의 과거 행적을 꺼내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쿠데타와 불법적 정권 획득 이후 장기간 철권 독재 과정에서 권력 유지를 위한 수많은 조작과 불법·탈법 행위들, 그에 따른 많은 희생자들이 신음하고 죽어갈 때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던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 자립을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희생할 때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그러한 과거의 길에서 지금 대통령이 되고자 다투고 있는 후보들은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했는가? 그간 걸어온 자신의 길에 대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요즘에는 뭐라고 얘기하는가? 그들이 현재 하는 말과 생각에 진정성이 있는가? 있다면 과연 말과 실천이 뒤따르고 있는가? 역사를 70년대 수준으로 퇴행시킨 현 정권 5년 동안 과연 그들은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했으며 그 말과 행동이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특정인이나 정당만을 위한 것이었는가? 이러한 과거의 사실들을 반추하며 현재를 판단해야 한다.

수첩이 없다면 옆 사람의 수첩에라도 물어봐야 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의 수첩을 꺼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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