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대안공간에 왔습니다. 대안공간이라는 단어는 꽤 거창하게 느껴졌습니다. 우선 어떤 '공간'에 대한, '대안'인가를 따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업시대에 모든 공간은 상품화되었습니다. 심지어 산나물을 채취하는 것도 산림법에 따르면 불법이라나 뭐라나.
하여간, 저처럼 이렇게 자본이 없는 사람이든 소부르주아든 탈출구를 찾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제국주의, 식민지 조선에서도 쥐구멍처럼 존재했습니다. 거기서 밤마다 찍찍해댔겠죠. "경성에 댄스홀을 허하라!"라는 구호가 식민지 조선에 유통되기도 했답니다. 밤이면 인간과 쥐는 함께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가장 생산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
특히 이 놀이의 기원은 꽤 오래되었습니다. 시끌벅적 떠드는 쥐들을 소탕하려는 노력은 식민지시대 경성에도, 해방 후 서울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도 이 놀이를 즐겼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비밀댄스홀에서 춤을 남녀를 군사재판에 회부하여 최고 1년 6월의 징역을 선고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특히나 역사적 판단보다는 작은 것에 흥미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그 댄스홀에는 몇 마리, 몇 마리나 있었을까. 그렇게 춤을 출 수 있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있기는 한 걸까? 그런 사소한 것에 관심이 갔습니다.
만약 지금이 유신 시절이라면 이런 작은 손장난도 금지되었을 테지만, 우리 세대는 어쩌면 그 작은 구덩이에서 탈출하지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갑자기 시바신이 나를 파괴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대안공간 책방의 유리창 ⓒ 김선태
그래서 황급히 제리처럼 대안공간으로 피신했던 겁니다. 집에 혼자 있으면 드는 이상한 위기감이, 우리 오타쿠들에게 가끔 일어나곤 합니다. (저에게 동의한다면 당신은 오타쿠입니다.) 가끔 눈이 불구덩이처럼 뜨거울 때가 있잖아요. 사실 오늘은 눈을 뜨기 어려웠습니다. 생쥐들로 우글거렸던 어제를 생각하면서 좀 늦잠을 잤던 것 같습니다. 그 사치스런 감정때문에 늦은 오후 이렇게 주머니를 털어서 테이크 아웃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대안공간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커피 값이 그다지 저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아쉬움을 덜어낼 만큼 예쁜 곳이라는 건 정말 다행입니다.
▲ 전시회 사진 전시회 소개를 하는 모습 ⓒ 김선태
평수는 넓지 않지만, 이 안에는 필요한 것은 거의 다 있는 것 같습니다. 도랑에 핀 예쁜 식물이 있고,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제목과 같은 '자기 만의 방'이라는 방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창작의 욕구가 우물처럼 샘솟는 작은 '자기만의 방' 옆으로 상설 전시실이 있습니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무료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상설전시실 후문에는 나무계단이 있는데, 3층 높이의 나무 계단을 밟고 오르면 책방이 하나 나옵니다.
▲ 셀카 책방에서 찍은 사진 ⓒ 김선태
그곳에서 저는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원년의 풋불>을 잠시 읽었습니다. 여기서도 자신이 쥐 같다는 주인공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저는 셀카를 찍었습니다. 외로움이 밀려들기도 했고 이상한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다지 쥐같이 생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닌가요? 아마도 전 자신을 쥐새끼라고 여기지 못해서 작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운이 좋으면 저랑 여기서 만날 수도 있겠죠? 그럼 잠시 말하다가 여기 창문에 있는 친구처럼 함께 지내지 않을래요? 시게마츠 기요시 <친구가 되기 5분 전>과 <말더듬이 선생님>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친구가 되려면 잘 보이지 않아도 읽어주세요. 그리고 잠시 침묵해주세요. 떠들지 않아도 우리는 알잖아요. 얼마나 이 세계가 쥐들로 시끄러운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 자체가 죄스러운지도.
출처 : 습작생교양정보 웹진 http://dodneunjari.tistory.com/26
<소개>
필명 : 시에고노프.
학창시절에는 헌신적인 아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농구를 유독 좋아했는데 체육복이 엉망이 되도록 뛰어다녔던 것 같다. 기대만큼 키가 자라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농구를 좋아한다. 학업능력이 월등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술이나 글짓기에서 자주 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진로에 대해서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는데, 프로스트의 시집과 '죽은 시인의 사회'에 상당한 영감을 얻은 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이메일 주소 : m21c7@naver.com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