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까지 사랑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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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정(sarmy93)등록 2013.01.04 17:46
아픔까지 사랑한 나무 (조효정)
                                               
  정신분석학에서 보면 방어기제(防禦機制, defense mechanism)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여 방어기제란, 사람이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 심리적 위협을 받았을 때, 자신을 보호하고자 자아(Ego)가 무의식적으로 방어를 펼쳐내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어떤 공격을 받으면, 그것에 대하여 어떤 방식이든 대응하려는 생각이나 의식을 갖게 되고, 이러한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식물에서도 그와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식물이 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자신의 잎에서 화학물질을 뿜어내어 해충을 물리치는 경우이다.  사람들이 등산하며 숨을 들이킬 때, 나무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도 그의 일종이다.  가뭄이 들면 잎을 떨굼으로써 수분증발을 감소시키는 것이나, 영양분이 부족할 때 열매를 적절히 떨구어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를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방어기제가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에 인간관계는 어색해지거나 서로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공격적인 말을 했을 때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부정적 방어기제가 작동하면, 사람들은 분노하거나, 변명하거나, 회피하거나, 합리화하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방어기제로써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한다거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거나, 유머로써 넘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성숙한 인격을 갖지 않는 이상 처음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아이들 문제로 심각한 정신적 도전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게는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났다. 하나는 긍정적인 면에서 수용과 이해였고, 부정적인 것으로서는 자기 합리화와 변명이었다. 긍정적 반응은 이타적인 반응이었고, 부정적 반응은 자기보호 본능이었다.  그 후 잠시 고민에 빠졌었다. 나는 왜 이타적인 반응에서 멈추지를 않았을까? 왜 변명과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버둥거렸을까?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일 수 있지만 썩 석연치 않는 결과였다.

오늘 등산을 하다가 한 나무를 발견했다. 어른 팔뚝보다 조금 더 굵어 보이는 나무하나가 작은 바위에 기대고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나무의 껍질이 바위의 날카로운 부분을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언젠가 날카롭게 깨어진 바위하나가 굴러와 나무를 압박하게 된 것 같았다. 바람이 불때마다 그다지 굵지 않은 나무는 흔들렸고, 흔들릴 때마다 날카로운 바위모서리는 나무의 줄기에 생채기를 내었던 것이다. 결국 이 나무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결정이었다.  나무는 자신의 생채기에서 진을 내고 여분의 껍질을 생산시켜 날카로운 바위모서리를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나무와 바위가 한 몸처럼 붙어서 더 이상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고, 또 상처를 받지 않는 관계가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나무가 바위를 감싸 안음으로써 이제는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아픔을 주던 바위를 사랑으로 포옹함으로써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존재가 된 것이니, 참으로 아름답고 긍정적인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런 아름다운 방어기제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을 사랑으로 끌어안는 것이 결국 서로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마 모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랑이라는 반응보다도 더 빠르게 분노가 찾아오고, 자기 보호본능이 자신을 변명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망 말고 더욱 노력할 일이다.  연약한 나무가 바위를 감싸 안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인가. 그러한 아픔의 긴 시간들이 지나고 어느 순간에 그들은 한 몸이 된 자신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 참고 기다릴 일이다. 생채기에서 나온 진물이 끈끈한 진액이 되고, 아픔으로 너풀거리던 껍데기가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을 끌어안을 때까지 그렇게 인내할 일이다.  작은 등산로에서 보았던 그 대견스런 나무처럼............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창조문학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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