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곡마을에서 두번 우는 이유

2013년 겨울농민인문학 1강 민윤기 죽곡면장

검토 완료

김재형(botarinim)등록 2013.01.05 21:23

민윤기 면장님(가운데 앉은이)과 함께 민윤기 면장님은 전라남도의 농촌마을 지원 정책이 농민의 의지와 서로 잘 이어지지 못하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정책과 마을의 노력이 함께 이어지길 바라셨다. ⓒ 김재형


2013년 겨울 농민인문학 첫 강좌로 민윤기 죽곡면장님께서 강의하셨다.
앞으로 이 강좌는 2월 14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여섯 번 이어진다.
나는 2년에 한번씩은 바짝 긴장하면서 살 게 된다.
이유는 2년에 한권씩 책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글을 쓰고 자료를 모아서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연세드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드는 일이어서 이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내가 가진 역량의 한계를 넘는 일이어서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후원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 '죽곡면장님'이시다.
2011년에 시집을 만들 때 김순기 죽곡면장님께서는 마을 시집 만드는 일을 사실상 자신이 편집하는 것처럼 마음을 써 주셨다.
책을 만들면서 쓴 머리말에 드러난 편집자는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지만 숨은 편집자는 죽곡면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김순기 면장님께 받았던 지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면의 행정 책임자인 면장은 평균적으로 볼 때 임기가 1년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별한 경우에 2년 정도 하시는 것 같다.
올해 죽곡마을 이야기책을 만들어야 하는 나로서는 민윤기 면장님의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민윤기 면장님은 81년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셔서 이제 33년째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계신다. 이번 부임 전에도 8년간 곡성에서 일하셨고, 전남도청 등지에서 일하시다가 지난 해 김순기 면장님 후임으로 죽곡면 면장으로 오셨다.
죽곡에 오시기 전에 구례 토지면장을 지내셨는데, 민윤기 면장님께서 계시는 기간 동안 토지면에서 좋은 사례를 많이 찾아 내셨고 지역 주민들과 화합하며 면정을 잘 이끄신 분으로 주위의 평이 좋은 분이셨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의 농민인문학 강좌는 몇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1. 운영위원회에서 주제를 토론하고 정한다.
2. 주제를 공개하고 강사 추천을 지역 주민에게 직접 받는다.
3. 추천된 강사에 대해 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최종 결정한다.
4. 강사는 주제에 맞게 선정하되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을 꼭 한 사람 넣는다.
5. 지역 주민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좋은 정치인을 꼭 한분 강사로 넣는다.
6. 농민인문학 강좌 예산은 지역 사회 개인과 기업의 참가 회비와 후원을 받아 운영한다.
이런 내부 원칙을 가지고 정하는데 이번 주제인 '농민과 마을'에 대해 지역에서 두분이 추천을 받았다.
면장님과 이장단 단장님 이었는데, 이장단장님의 사양으로 면장님께서 하시게 되었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받아주셔서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죽곡마을 이야기문학상을 공모하고 있다. 올해 죽곡농민열린도서관에서는 죽곡마을 이야기 문학책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연세드신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일이어서 쉬운 게 아니다. 민윤기 죽곡면장님의 도움과 지지가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 김재형


마을 이야기책을 만드는 계획 때문에 최근에는 곡성에서 나온 여러 문집의 글을 꾸준히 읽고 있다. 주로 옛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은 글을 읽고 있는데, 공무원에 대해 무섭게 생각한 내용이 가끔 나왔다. 민윤기 면장님의 강의 중에 자신도 처음 공무원 생활 할 때는 아침에 마을 청소하라고 대문을 두드려서 깨웠던 기억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인데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보면 공무원과 마을 주민들이 서로 거리감이 있었지만 서로를 잘 알고 있기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국가 정책을 마을 현장까지 실행하고 지도해야 한다는데 대해 책임감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게 30년을 지난 지금의 결과는 마을은 이제 규제하고 지도할 대상이 아니다.
마을은 지원하고 격려하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전라남도는 마을을 세가지 관점-유기농업, 행복마을, 귀농귀촌.-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다.
전남의 현재 유기농업 면적은 전체 경작 면적의 66%이다. 죽곡면만 해도 대부분의 논이 유기농업과 관련된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사실이 정말 믿음이 갈 정도로 유기농업을 실천해 낼 수 있으면 죽곡 뿐만 아니라 전남은 미래 한국 사회의 희망을 이끌어 갈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행복마을은 전남도가 의욕을 가지고 진행하는 마을 개발 사업인데, 주로 한옥을 짓고, 상하수도 설치를 하고 소즉증대 사업을 기획한다.
구례 토지면 오미리 행복마을 기획 사업을 옆에서 지켜 본 느낌은 행복마을이라기 보다는 '갈등마을'을 만드는 일이었다.
사업의 공동 운영에 대한 의식과 경험이 없는 농민들에게 마을 사업의 공동 운영 과정은 늘 갈등의 연속이었다. 외형적 하드 웨어와 함께 운영을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곡성에도 옥과에서 행복마을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죽곡도 대상지 중의 한 곳이다. 사업이 오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그게 정말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귀농귀촌은 전남도의 자랑이고, 죽곡의 자랑이다.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죽곡면 인구가 2040명이 되었다.
최근 1년 사이에 80명 정도가 더 들어와서 2천명 인구를 넘은 것은 죽곡의 경사였다.
이런 추세로 나가면 죽곡은 곡성읍, 옥과면, 석곡면 같은 장이 서는 큰 면을 제외하고는 인구 2천명을 넘는 유일한 면이 된다.
지역 주민들이 마을을 사랑하고 귀농귀촌 인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결과이다.
구례 토지면의 전입 현황을 보면 주로 나이드신 분들의 귀촌이었는데 죽곡은 40대가 중심이 된 젊은 귀농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죽곡이 훨씬 더 건강한 마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민윤기 면장님은 이런 꿈도 이야기하셨다.
죽곡은 긍정적 흐름 속에 있어서 농산물 가공과 관광 중심으로 길을 잡으면 좋겠다.
서울에서 직거래 장터를 가보면 농산물 가공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된다.
좋은 가공 식품이 있어야 안정적인 농가 운영과 지역 사회 발전이 가능하다.
산채나물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일, 죽곡의 가장 인기있는 작물인 토란을 가공하는 일, 매실 가공 이런 일을 의지를 가지고 지원하고 싶다.

올해 가난한 가정의 김장 지원을 하고 그러고도 김장이 남아서 어디로 지원할까 하는 회의를 할 때 남은 양은 전부 '홀로 사는 남자 노인'의 집으로 배정했다.
남자들은 자기 사정이 어려운 걸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 사람 사정이 어려운 지를 이웃에서 잘 모른다.
옛날 마을 유지들은 마을의 어려운 사정을 다 알았지만 지금 유지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유지들이 마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가난했던 시절에 마을 주민들은 서로 돕고 살았고, 유지들은 넓게 보고 마을을 기획했는데 지금은 서로 돕지도 않고 힘있는 사람들은 욕심이 많아졌다. 정말 힘없는 사람들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날 강의에는 마을 이장님 여러분이 참석하셔서 면장님과 서로 격의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매달 하는 이장회의에서 이장님들은 대부분은 면의 행정 지시만 받고 토론을 거의 할 수 없는 분위기인데 농민인문학 강좌는 토론을 전제로 한 강의여서 자유로운 나눔이 있었다. 죽곡면의 첫 여성 이장이었던 윤순남이장님은 첫 이장 회의갈 때 남자들 앞에 나가는게 너무 떨려서 우황청심환을 먹고 갔던 기억을 이야기하셨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어렵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이장 일이 지금은 주위 사람을 돌아보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나누셨다.

민윤기면장님과 죽곡면 청년회원, 지역주민이 함께 한 해돋이 행사 매년 1월 1일 아침 죽곡면 원달리 신유봉 전망대에서 새해의 행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청년회원들(회장 기은도)과 지역주민들이 같이 모신다. 올해는 눈까지 내리는 굳은 날씨였는데 정말 실날같은 빈틈으로 해가 떴다. 우리 앞의 현실이 이럴 지 모르겠다. ⓒ 김재형


죽곡면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죽곡에 올 때는 두 번 운다고.
읍내에서 너무 멀고 깊은 산골에 배정받아서 울고, 갈 때는 죽곡 사람들을 잊을 수 없어서 운다고.

덧붙이는 글 농민인문학 6강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도움 부탁드립니다.
이 기사는 곡성신문에도 보낼 계획입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