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영화의 한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캄보디아 크메르루즈정권의 잔혹상과 전쟁의 참혹함을 세상에 알린 최초의 영화 '킬링필드(원제 The Killng Fields)'의 한 장면입니다. 엔니오 모리꼬네 작곡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우선 떠오르는 '미션(Missin)'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롤랑 조페'감독이 만든 초기작품 중 하나죠. 위 사진 속 인물인 주연 배우 Dr. Haing Somnang Ngor는 이 영화 한편으로 1985년 아카데미 조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영화 '킬링필드'는 그의 첫데뷰작으로, 영화속에서는 당당히 주연으로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조연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유럽 영화계는 자존심 때문인지 아시아인에게 주연상을 안겨주는데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그가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오스카상을 받았으며, 원래직업이 배우가 아닌 '산부인과의사'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름 앞에 Dr.를 붙였죠. 그 역시 영화의 실제모델이었던 Dith Pran이란 사람 못지않게 1970년대 중반 킬링필드시절, 그의 삶에 있어서 참으로 불행한 시기를 경험했습니다. 크메르 루즈 정권하 지식인들을 골라 대량학살하던 생지옥같던 시기에 그 역시도 집단수용소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그의 아내는 출산도중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신과 아내, 그리고 갓 태어날 아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직업이 '산부인과 의사'라는 사실조차 숨겨야 했고, 결국 제왕절개를 받았어야 할 아내가 수술도 못 받고 그만 죽었으니까요, 그는 1979년 크메르루즈 정권 몰락 후 태국 국경 캄보디아난민수용소에서 본업인 의사로 돌아가 잠시 일하다, 조카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80년대 중반 반공(反共)이 '국시'였던 시절 킬링필드같은 부류의 영화는 정부정책차원에서 초중고학생들의 단체의무(?)관람으로 이어졌죠. 저 역시 학교단체관람으로 이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서울 충무로에 있는 대한극장에서 첫날 봤는데,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주인공과 영화 주인공 Dith Pran씨가 함께 무대에 올라 직접 관객들에게 캄보디아 내전의 참상을 소개하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요. 당시 고등핚생 1학년이었던 저는 캄보디아 내전에 대해 이해도 부족했고, 그다지 별다른 관심도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솔직히 그땐 무대에 오른 주인공들보다는 사회를 맡은 당시 영화배우 '윤일봉'씨가 더 눈에 들어왔죠. 직접 연예인을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요.ㅎㅎ(참고로 '윤일봉'이란 배우는 1박2일 TV프로에 나오는 배우 엄태웅의 장인어른입니다)하지만, 영화를 본 후로도 오랫동안 주인공이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과정에서 해골과 뼈가 가득한 늪에 빠져 허우덕 대며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장면이 잔상으로 남았습니다. 누군가 '캄보디아'라는 단어를 내뱉으면 앙코르와트 대신 관성적으로 이 영화가 떠올랐으니까요.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도 저처럼 같은 장면을 기억하고 계시더군요.Dr. Haing Somnang Ngor는 이 영화 한편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 후 후속작에 대한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와 출연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크게 흥행에 성공 하지는 못한 듯 싶습니다. 미국에 정착해서 잘 살고 있으며, 크메르루즈 정권시절 자신의 경험담과 죽은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냈다는 얘기 정도만 접했을 뿐. 그러다 몇 년 전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던 중, 이미 오래전인 지난 1996년 2월 그가 미국LA 자택근처에서 강도총기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 강도살인사건으로 최종판결이 나왔지만, 사건 당시 그의 수중엔 무려 2,900불의 현금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난된 현금이나 귀중품이 없는 정황으로 미뤄, 혹시 크메르루주 지지세력들이 암살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한동안 꽤 신빙성있게 떠돌았다고 하네요. 실제로도 크메르루주 전 수용소장이었던 '두치'로 불리는 Kang Kek Iew도 크메르루즈정권 1인자 폴폿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지난 2009년 법정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만, 그후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강도살인죄로 재판받은 아시안계 깡패출신의 세 명의 살인용의자들은 공교롭게도 크메르루즈 넘버원 브라더 폴폿(Pol Pot)이 사망했다고 알려진 같은 날인 1998년 4월 16일 유죄확정 판결을 받고 종신형을 받아 현재 수감중입니다. 역사속 작은 아이러니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연기력 하나만은 정말 끝내주는 훌륭했던 배우였는데, 불행하게 죽었다니 마음이 씁쓸합니다. 갑자기 실제 주인공 Dith Pran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근황이 궁금해 이름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그 역시 지난 2008년 65세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더군요. 영화속 크레디트에서는 그를 도와준 미국인 Sydney Schanberg 기자와 함께 뉴욕타임즈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이 떠서 지금도 잘살고 있겠지 싶었는데... 아무튼 늦게나마 두 분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또한 이 땅 캄보디아에, 아니 지구상에 다시는 제 2, 제3의 킬링필드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오늘 따라 문득,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영화주제곡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이 생각나네요.. 가사를 음미하며 한번 감상해보면 어떨까요?Imagine there's no countries (나라란 게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It isn't hard to do(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Nothing to kill or die for(누군가를 죽여야 할 일도, 무엇인가를 위해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 And no religion too (그리고 종교란 것도 없는) Imagine all the people(모든 사람들이) Living life in peace(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글 박정연 #캄보디아 #프놈펜 #박정연 #킬링필드 #HAING SOMNANG NGOR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