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 선 그대에게 "거기 있는 것도 답이고 거기 없는 것도 답이다."

스물여섯,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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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나(ana1006)등록 2013.01.17 11:30
대학교에 들어와 16번의 시험과 일 년의 휴학기간을 거치고 나니 나도 어느덧 20대 중반, 취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곧 있을 졸업을 앞두고 마음이 싱숭생숭하던 차에 아는 지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녀는 현재 스물여섯, 6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삼성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3년간 일을 하다 자신의 꿈을 찾아 회사를 나왔다. 그 사이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았고 현재는 낮에는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14일 밤 12시, 일찍이 사회경험을 한 그녀의 삶을 통해서 '무슨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녀가 일하고 있는 화성시의 작은 꼬치구이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일을 끝낸 시각은 새벽 1시. 앞치마를 벗고 자리에 앉자마자 인터뷰를 시작했다.

- 고등학교 졸업 후 왜 바로 취업을 결심 했나.
"내가 고등학교 다닐 당시 내 모교는 명문고로 통했다. 내 고모도 이 학교에 나왔는데 나는 고모처럼 살고 싶었다. 고모는 공부를 굉장히 잘했지만 대학을 안가고 바로 취직을 하셨고, 나도 바로 취업을 하기를 바라셨다. 더욱이 집이 어려운데다 내가 장녀였기 때문에 부모님도 취업을 원하셨다. 그때 나는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돈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취업을 결심했다."

- 어떻게 바로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붙게 됐나.
"자기소개서가 통과하고 면접을 봤는데, 고등학교가 인문계에다 당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해서 일본어를 잘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먼저 구미 공업단지에서 생산직으로 6개월 일을 했는데, 나름 성적도 좋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수원의 전문직으로 옮겨 정규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 무슨 일을 했나.
"구미는 생산을 위주로 하는 것이라면 수원은 그 윗 단계, 연구직이고 신상품을 개발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 사무직은 아무래도 생산직보다 대학교 졸업한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어땠나.
"대학 나온 사람들도 공대와 관련 없는 과도 많았고 다들 처음 들어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거였기 때문에 나와 똑같았다. 근데 단지 대학을 다녔으니까 상식이나 지식, 교양이 있으니까 하는 일은 좀 다르게 시켰다. 우리는 좀 단순한 일을 시켰다. 숫자를 센다거나 데이터를 표로 정리한다거나 그런 일. 할 수 있는 일이 학력에 따라 다를테니까."

- 다른 차별은 없었나.
"내가 더 오래 일을 했는데, 대학 나온 생초짜가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했다. 내가 그 바닥에 경력이 더 있는데 더 무시하고 그런 게 있었다. 대졸자들이 나보다 경력이 적은데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게 웃겼다. 부서가 달라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해도 소위 쉴드쳐주는 데가 있었다. 나는 직급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했다. 고졸이 1, 전문대가 2, 대졸이 3, 대졸이 올라가면 대리가 4이다. 이런 식으로 직급이 나뉘어져있는데 나는 고졸 1이었다."

- 연봉은 얼마나 됐나.
"다달이 88만원에서 100만원 사이를 받아서 초봉은 2400, 퇴근시간 후 잔업을 해서 받은 보너스까지 포함해서 3000을 받았다. 우리는 월급제였는데 대학졸업자는 아마 연봉제에 월 200정도 였을거다."

- 3년 일하고 그만뒀다고 들었는데, 왜 나올 생각을 했나.
"학교 다니는 애들은 남자친구도 사귀고 자기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그러지 않나. 그런 게 너무 부러웠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원하는 전공을 하고 취업을 하려고 하는 것도 힘든 거 안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그런데 그때 일하던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니까 "난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돈이나 벌려고 왔어"하는 애들이 많았다. 또 그런 애들을 대기업에서 좋아한다. 돈 벌려고 하는 애들...회사에 오래 있을만한 애들...나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공순이가 되어야만 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그래도 나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다니면서 발레를 배우고, 각종 공연, 영화제, 무용, 락페스티벌, 인디밴드공연을 다 볼 수 있었다. 문화비만 한달에 50만원 들정도로. 그런 것에 대한 동경과 선망은 자꾸 커지는데, 나는 여기 묶여있는 거니까.. 쭉 다닐 수도 있는 거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근데 그럴수록 더 꿈이 커지고 환상이 커지고.. 내가 여기를 나가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일을 관두고 모아 놓은 돈으로 대학교 다닐 생각은 안했나. 일 관두고 뭐했나.
"모아 놓은 돈을 다 썼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고 하지 않나. 나와서는 영화 스텝을 했다."

- 그 일은 어땠나.
"미술팀에서 일했는데, 거기는 원래 힘을 엄청 쓰는 일이라 남자를 뽑는다. 못박고, 사다리 나르고, 모든 미술팀 짐들 나르고...개고생했다. 한 3개월 정도 하고 70만원 받았다. 정말 힘들었는데 정신적으로 너무 만족했다."

- 영화가 끝나고는 무엇을 했나.
"돈을 벌려고 공장에 들어갔다. 수원에 삼성 공장이 크게 있다. 이름하야 삼성캠퍼스라고 해서 마치 대학교처럼..거기 반도체 만드는 회사가 있다. 공순이로 회사를 들어갔음에도 4년 만에 공장에서 처음으로 일을 해본 거다. 삼성 tv에 들어가는 커넥터 만드는 일이었는데 삼성에다 납품을 하는 회사였다. 한 달에 200넘게 벌었다. 근데 재미있는게 거기에 있는 언니들이 다 삼성에서 일했던 사람들이었다. 삼성에서 일을 하다 힘들어서 그만뒀는데 삼성만큼 주는 데가 없어서 다시 그만큼 주는 공장에 들어온 거다."

-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그럼 그분들은 삼성 나온 거 후회됐겠다. 삼성 그만둔 거 잘한 것 같나.
"복리는 부러운데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회사를 다니면 무미건조해진다. 그걸 아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다람쥐 쳇바퀴처럼 맨날 맨날 똑같다. 근데 그렇게 하면 돈을 많이 준다. 못 다닐 수가 없다. 발전은 보이지 않고 살만 찐다. 아무튼 미칠 것 같다. 다시 들어가긴 싫지만 복리가 그립다. 거기 있다가 예술을 하는 것은 미칠 것 같다. 예술은 배가 곯아 죽어야 되는데...누군가가 날 테스트 하는 것 같다. 니가 진정 원한다면 이렇게라도 해라 하면서.. 내가 좋은 환경에서 이탈해서 별 것을 다 하고 있잖나. 나름 재밌기도 하다. 굳은 일도 해보고 인간 말종의 일도 해보고..."

- 인간 말종의 일이라니?
"별 경험도 다 해봤다. 영화 일을 하다가 옷이 너무 더러워져서 지하철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나는 필사적으로 갈아입은 건데 근데 주변 사람들이 다 젊은 노숙자인줄 알고 쳐다본 적도 있었다. 경찰이 비행청소년인줄 알고 잡은 적도 있었다."

- 이 일말고도 영화 의상팀, 발레공연, 웨딩샵..등 많은 일을 해본 것으로 안다. 어쨌든 순탄치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제 곧 사회에 나올 청년들에게 해줄 말 없나.
"어린나이 때 느낀 거지만 돈이 다가 아니다. 내가 평생 동안 그 일을 하기에는 내 젊음이 너무 아깝다. 내 도전의식이 아깝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내 가능성을 그 크고 좋은 기업에 바치기에는 너무 아깝다. 내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썩기에는 아깝다. 거기 있었으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겠지만 내가 꿈꾸는 삶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런 걸 느꼈다. 뭐라도 해라.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게 쉽고 제일 간편한 거긴 하더라. 그런데 그렇게 안해야한다. 하찮은 거라도... 쥐잡이? 그런거라도 해야 된다."

- 그럼 편안한 삶 버리고 당신과 똑같은 선택을 하려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나는 안 편하다. 예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발레 수업 받고 싶으면 할 수 있었다. 옷도 원하는대로 살 수 있었다. 근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답답했다. 내 가능성이 뭔가에 잡혀있는 것 같았다. 지금 나와서 발버둥치는 것보다 그때 할 수 있었던 게 더 많다. 참 어려운 것 같다. 거기에 있는 것도 답이고 거기를 나오는 것도 답이다. 거기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다. 정말 편하게. 나름대로 응어리진게 있겠지. 나 같은 경우는 풀려고 나온 건데 거기도 답이 없다. 더 힘들다. 아직 나는 26년 밖에 못살아서 모르겠지만 자신이 하는 얘기를 듣는 게 맞는 것 같다. 더 있을 거면 더 있고 더 없을 거면 없고 그게 답 아닐까? 돈을 많이 벌어서 뭐하고 적게 벌어서 뭐하겠나. 내가 지금 즐겁게 살고 어떤 상태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나. 내 만족을 위해서 산다면 그게 최고지 않나 싶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 시계는 벌써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위 인생선배인 그녀와의 대화에서 내가 기대했던 삶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었다. 단 한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거기에 있는 것도 답이고 거기를 나오는 것도 답이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길었던 인터뷰가 끝나고 소주 한 병을 비운 그녀를 보니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방황하는 청춘은 아프다. 그리고  청춘은 아프기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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