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은실씨에게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3기에서 만난 그녀

검토 완료

김종훈(moviekjh)등록 2013.02.04 11:18

마흔 살 은실씨, 검은 포도알 같은 눈을 가지신 분 건배 제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 깨어 있는 시민들을 위하여" ⓒ 김종훈


저 기억하시나요?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진행된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이하 오기만)> 첫 날, 은실씨 앞에서 어색하게 밥 먹고 있었는데. 살갑게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며 눈인사 주셨잖아요. 감사했습니다.

처음 은실씨가 말씀 주시기 전까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어려웠어요. 기자되고 싶어 왔는데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현직 기자들까지. 무엇보다 이글거리는 눈빛. 한마디로 힘 빠지게 했죠.

그런데 저녁 먹고 이어진 자기소개 시간, 은실씨가 "저는 사심 채우러 왔어요. 오직 오연호 대표님 보러 온 거에요"라며 웃으며 말씀하셨잖아요. 큰 힘이 됐습니다. 절대 경쟁자 한 명 줄었다고 그리 생각한 건 아니에요. 재밌었어요. 그 순간 저만 너무 어색해하고 긴장하고 있었던 거구나 깨달은 거죠. 이렇게 멋진 이유로 온 분도 계셨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2박 3일 동안 은실씨를 알아 간 것. 은실씨는 나이 사십이라 하셨어요. 대학에서 박사 과정까지 이수하고 계시다 하셨죠. 가만히 있어도 지적인 분위기기 팍팍 느껴졌습니다. 그런 분이 아이돌 가수를 많이 좋아한다는 거예요. 더 놀랐던 건, 해외에서 원정 팬이 오면 숙소까지 제공해 주신다 하니. 이 순간 뭐랄까 넉살 좋은 분 아님 순수한 사람. 헷갈렸습니다. 하지만 금세 알아차렸어요. '따뜻한 분이구나' 말씀하시는 내내 가만히 보니, 반짝이는 눈빛이 물기 머금은 검은 포도알 같았습니다.

사심 채우러 왔습니다

아세요? 생각보다 저희 많은 이야기를 나눴더라고요. 운이 좋았어요. 같은 조 배치부터. 그런데 진짜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건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오마이뉴스'를 시작으로 '문재인', '노무현' 그리고 '오연호'까지. 대선 끝나고 봉하마을에 다녀오셨다고 했잖아요. 그 때, 제가 "노짱, 잘 계시냐고?" 여쭸죠. 이어지는 짧은 침묵. 그 지점에서 확실히 우리 '공감'하고 있구나 느꼈어요. 이미 오래 전부터 만났던 사람처럼 말이에요.

오직 오대표님 뵙겠다는 사심으로 오셨다고 했잖아요. 모르시죠? 아마 32명 참가자들 모두 그 말씀 그대로 믿지 않았을 거예요. 옆에서 지켜보니 알겠어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진 오 대표님의 강행군 수업, 많이 힘들었잖아요. 그런데도 누구보다 열심히 펜을 움직였고,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흐트러짐 하나 없이. 그리고 말씀하셨죠.

"너무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가슴 뛰는 분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강화도 둘레길 걸으며 <오기만 43기> 오연호 대표와 함께 강화도 둘레길을 걷고 있다 ⓒ 김종훈


이틀째 오후, 우린 함께 강화도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했어요. 20미터 앞도 알아보기 어려웠는데. 제 마음은 걸을수록 안개가 걷히더라고요. 특히 "이제는 글을 쓰고 싶다" 말씀하실 때, 은실씨 주변에 환한 빛이 비췄어요. 뭔가를 깨달은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을 짓고 계셨죠. 지금의 생각과 분노를 어떻게 풀어낼지 방법을 찾은 거잖아요.

은실씨에게 쓰는 편지

은실씨, 저는 <오기만> 마지막 시간. 2박 3일 일정 중 가장 중요한 시간에 저보다 열 살이나 많은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어제 깊은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한 분도 빠짐없이 나와 주셨잖아요. 마지막에 건배를 제안하며 하신 말씀이 잊히질 않았어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 깨어 있는 시민들을 위하여"

순간 제 눈에 맺힌 이슬 보셨나요? 울컥했습니다. 내 나이 사십에 소녀처럼 오연호 대표님 뵙겠다고만 하셨던 분이 이렇게 깨어있는 분이었구나. 고맙더라고요.

물론 저는 98년부터 이어진 <오기만>의 여러 선생님들. 선·후배, 동기 분들 모두 가슴 뜨거운 기자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지난 2박 3일만큼은, 제게 최고의 기자는 은실씨였어요. 가슴 뛰는 이야기, 깨어있는 시민, 누구보다 은실씨였으니까요.

은실씨, 노짱도 가고 선거도 졌어요. 덕분에 계속 눈물만 흘리고 있었잖아요. '멘붕'에서도 벗어나질 못했고. 그런데 오마이 <10만인 클럽> 가입한 후, <오기만> 43기 2박 3일을 보내고 나니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희망을 봤어요. 은실씨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예비 기자들 32명을 통해서. 포기하지 말자고요. 한 명 두 명 가슴 뜨거운 시민들을 깨우면서 말이에요.

은실씨를 만나게 돼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깨어있는 시민이 있어 여전히 대한민국은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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