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도 모르는 법

도로교통법에 숨은 악마의 디테일

검토 완료

김아나(ana1006)등록 2013.02.13 09:36
한 대학교수(A씨)의 이야기이다.
A씨의 남편은 자주 과속을 한다,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차를 몰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범칙금 스티커를 많이 떼인다. 사실 그는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고, 그의 아들은 법조계에 몸담고 있다. 그는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 두려웠고, 범칙금 스티커를 받을 때마다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돈을 냈다. 그리고 범칙금을 납부한 순간 그에게는 벌점이 날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함께 골프를 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과속 벌금? 그걸 왜 바로바로 내? 모았다 한꺼번에 내~ 돈 조금만 더 내면 벌점 안 받아~"
그녀는 순간 귀를 의심했고 화가 났다. '한꺼번에 내면 벌점을 안 받는다고? 우리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돈을 내면서 벌점까지 다 받아 왔는데?'
그리고 그녀는 당장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의 아들은 "그런 법이 어디 있냐며 내가 판사를 할 사람인데 그런 법 없다"고 단호히 말했고, 그녀는 그래도 한번 확인해 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그녀의 아들이 말했다.
"엄마...그런 법이 있었네요."

위법자를 양산하는 도로교통법

현재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속도위반 시 무인단속카메라에 찍혀 범칙금을 납부할 경우 벌점도 함께 부과된다. 속도위반에 따른 벌점은 20km/h 초과 시 벌점 15점, 40km/h초과 시 벌점 30점, 그리고 60km/h 초과 시 벌점 60점이며, 벌점이 40점 이상이면 면허정지에 해당한다. 또한 3회 이상 적발 시 운전면허가 취소된다.

그러나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고 미루는 경우 10일 정도가 지나면 범칙금이 과태료로 바뀌게 된다. 과태료는 승용차를 기준으로 범칙금에서 만원이 추가된 금액을 지불해야하고, 승합차의 경우는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과태료로 지불할 경우 벌점은 부과되지 않는다.

범칙금은 속도위반한 사람을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위반행위를 한 당사자가 인정을 하고 범칙금을 내면 경찰에서 처리하고 벌점을 매기게 된다. 그러나 기일이 지나게 되면 차량소유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운전했을 수도 있으므로, 위반행위를 한 사람을 특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차량소유주에게 벌점이 없는 과태료로 부과되는 것이다.

이 규정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벌점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고 미룬다. 1만원만 더 내면 벌점을 안 받을 수 있는데 굳이 범칙금으로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성실하게(?) 범칙금을 낸 A씨 같은 사람들은 고의로 납부를 미룬 위법자들보다 벌점을 덤으로 받는 억울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과태료를 내면 벌점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보통의 시민들이 상습적으로 과속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번 위반 할 때 최대 14만원 혹은 그 이상이 되는 과태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위반할 경우 그 금액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상류층 사람들에게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제 그들에겐 벌점도, 돈도 부담이 없다.

"과속? 뭐 어때 돈 내면 되는데~"
누군가에겐 부담스럽지 않은 벌금

"대한민국 법이 이렇게 허점이 많아. 당연히 우리는 벌점 받는 것보다 돈 조금 더 내는 게 낫지. 그 돈 뭐 얼마나 된다고...우리도 이제는 꼬박꼬박 안내고 몰아서 내고 있잖아."

숨겨진 비밀에 대해 다 알게 된 A씨는 잘못된 법을 타박하면서도 이제 벌점 걱정이 없어 홀가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A씨와 그녀의 남편에게 벌점의 위협이 사라지니 더 이상 과속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기존에 냈던 것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몰아내면 그만이었다.

결국 이 법의 가장 큰 문제는 벌금이 부담스럽지 않은 '특정한 다수인'들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상습적인 위반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벌점이 없는 과태료는 누범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돈만 내면 몇 번이고 속도위반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말도 안 되는 법의 최대수혜자는 바로 '돈 좀 있는 사람들'이고,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그들에게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돈 내고 마음껏 위법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판사도 모르는 도로교통법의 숨겨진 디테일, 그리고 그 허점을 상습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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