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는 방법으로 부터의 부재

[리뷰] <영화판>

검토 완료

오원섭(ozwonsuv)등록 2013.03.08 18:25
 한국영화, 문제 참 많다. 80년대 지독한 정치검열에의해서 이념에 부딛쳐 상영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영상예술은 국가의 정치적 이념을 전파하는 수단으로써 이용되고 그에 반하는 영화는 상영은 커녕, 만든 감독은 남산 지하실 어딘가로 끌려 가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오래전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87년 이후, 영화 검열자체가 해제되기 전까지 채 25년 전 이야기다. 한국영화의 황금기라 여겨지는 60년대에서 70년대로 접어들면서 독재정치는 이념의 문제로 영화를 짖밟았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자본의 이름으로 짖밟히고 있다.

대기업의 자회사 그룹들이 영화판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말그대로 '수익이 되는 상품'으로 영화는 상당부분 변질되었다. 1999년, 멀티플렉스 시대의 개막과 동시에 충무로의 영화제작 시스템은 대기업의 수익창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당연한 이치대로 흘러갔다. 헐리우드의 장르영화가 관객들의 선호를 받으면서 우리나라 영화제작 스타일도 대중들의 입맛에 결기되고 말았다. 대중들에 입맛에 의해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것이다. 관객들이 감당하기 힘든 영상과 스토리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자본의 피해로 다가왔다. 때문에 대중의 입맛에 맞는 영화들이 제작되고, 감독의 독창성과 예술성은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는 추세가 이어졌다. 물론 그 사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훌륭하게 표현한 작품들도 없었던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영화판에서 그런 영화들이 드물다는 것. 영화가 영상예술로써의 근본적인 이상에 접근은 커녕 관심조차 없는 형태로 보여지고 있는 현실. 거기서 부터 문제였다. 21세기 한국영화는 지난 정치검열을 넘어, 또다른 형태의 자본검열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판>은 허철감독이 연출하고,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 배우 윤진서가 인터뷰어로써 출연해 영화를 이끌어 간다. 아니, 사실 이끌어 가는 모습이 아니다. 인터뷰어로써 질문을 던지다가 어느새 편집상 공백 속에서 인터뷰어가 직접 대답하는 형식으로 결론을 돌출하는 모습마저 비춰진다. 이미 인터뷰어로써의 역할과 출연자의 역할 사이의 벽이 허물어 지면서, '한국영화의 거장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는 본래의 취지마저 모호해 졌다. 결코 '융화'의 뜻이 될 수 없는 그 벽이 무너지는 순간 영화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흔들린다. 거장 감독들과 배우들을 옆에 두고, 하고싶은 이야기를 해버리는 '원맨쇼'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것은 정지영감독의 잘못도, 배우 윤진서의 잘못도 아니다. 편집의 문제라고 믿고싶다. <영화판>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영화판에서 일했던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각 주제에 맞는 쿼터로 나눠 나열한다. 앞으로 제시 될 인터뷰 내용들을 요약한 주제의 타이틀을 드러내고, 그것과 관련된 그들의 의견들을 비춘다. 하지만 허철감독은 그 마저도 혼돈한다. 각기 다른 담론의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서 얻어낼 수 있는 비슷한 어휘와 반응들을 문맥상 어울린다 싶으면 꽃아 심어놓은 느낌이다. 배우들과 또 다른배우들의 영상이 하나의 주제로 교차되어 나타나면서, 그 속의 통일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 그모습은 꽃병에 꼿힌 정신없는 조화처럼 느껴진다. 메인 타이틀을 상실한채 배우들이 내뱉는 문제의식들은 엉성한 편집에 의해 두서없이 던지는 잡소리로 변질 되어 버리는 것이다. 꽃병에 꽃이 만발했다고, 꽃이라고, 다 예쁜건 아니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훌륭한 배우와 감독, 제작사, 영화평론가, 영화학 대학교수들을 카메라 앉혀놓고 이정도 이야기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한탄스럽다. 그들의 술자리와 인터뷰 자리에서 결코 쓸데없는 이야기가 오고갔다는게 아니다. 잠깐씩 튀어나오는 꽤나 명진한 문제의식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문제다. 진지한 문제의식이 쏘옥 하고 튀어나오는 것. 한가지로 수렴되는 문제의 진지한 담론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진 모래알 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널부러져 있다. 영화판을 이야기 하는 '난장판'으로 변질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50년대부터의 한국영화 역사를 집어 보면서, 80년대의 영화검열이 영화사에 끼친 악영향. 그로 하여금 놓쳐버린 중요한 감독들. 그리고 자본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검열을 받는 오늘날의 세태들. 정치에 의해, 자본에 의해 타압받는 영화판을 후반부에 다룬다. 한때 영화 전성기 때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으나 '노력해도 안되더라'는 정지영 감독의 실질적 고민을 등에 얹고 영화 제작의 높은 벽을 이야기 한다. 이 벽은 왜 여기에 놓여있는 것인가. 출연자들은 자본에 따른 영화판의 한계를 이야기 하지만 감독은 그 이야기들을 하나의 깔때기로 모아 애써 수렴하려고 하는 연출이 역력히 보인다. 몇개의 단어와 문장들이 서로 결탁해 하나의 입으로 모아지길 의도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가 나오려 하면 잘려지는 편집을 보면서, 감독 한명의 이야기라도 좀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영상으로 보여지는 행위들에 적당한 당위를 부여하고, 욕설과 섞인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 군화발 같은 편집으로 짖눌러 버린다. 열린 의견과 현실적 대안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 부족이 드러낸 처참한 결말이다.

대한민국 '영화판'은 문제가 많다. 사회적 특수성과 급변하는 자본주의에 의해 수도없이 휩쓸린 고난의 상처들이 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을 다시금 화자하고, 극복의 의지로 똘똘 뭉쳐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할 수 있다. 너무도 훌륭한 취지이며, 영화는 그정도의, 그 이상의 수단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로써 최소한의 만듦새도 가지지 못한 영화는 그 자체부터가 문제의식을 가지게 만든다. (영화의 엔딩으로, 정지영감독이 '부러진 화살' 영화 제작을 시작하기 전 고사를 지내는 모습이 나온다. 그 어떤 공론과 문제의식에 대한 해답없이 이 장명은 판타지처럼 등장한다.) 이 영화는 <영화판>이 당장에 직면한 현실적 문제도, 해결해야 할 문제도, 그 문제를 들춰내는 방법도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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