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살의 정리법

검토 완료

Sun Kyung Park(ashcho824)등록 2013.03.09 17:11
서너달에 한번씩온라인을 접속해 책을 구입하곤 하는데,  첫장을 넘기고순식간에 몇십 페이지를넘기는 책은 여지없이하루정도면 끝을 맺곤하지만, 첫장에서부터 넘기기 시작해한시간이 넘도록 서문이계속해서 이어지는 느낌의책은 쉽사리 진도가나가질 않고 옆으로밀어놓은채 시간이 날때마다조금씩 읽고 읽고를거듭하는 책이 되곤한다. 그래서 나는 일곱 여덟권의 책을 구입하게되면 재빨리 끝내야직성이 풀릴 책과 두고 두고 읽어야할책을 구분하는 습관이있다.

서너달전 구입한사카오 카요코의 '마흔살의 정리법'이란책 또한 침대맡에놓고 천천히 조금씩읽겠다고 구분해 놓은 책중의 하나이다. 책을 구입하면서도 나이가 이미 마흔살을 떠나 쉰살 가까이 된 주제에책제목도 좀 생뚱스럽기도 한것같고 이 나이가 되어서까지 정리법을배워야하는가라는 약간의자존심 긁히는 기분또한들은터였지만 책서평에서 언급된내용이 마음에 들었기에약간의 주저함을 가진채구입한 책이다.

안방책상위의 몇권의 책들 에너지 절약형 전구로 온집안의 전구를 교채했지만 낡고 오래된 이 스탠드의 은은한 불빛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살아남은 10년지기 데스크램프. 그옆에 다소곳히 꽂혀있는 몇권의 책들은 내손에 간택되기위해 밤마다 나를 유혹한다. ⓒ Sun Kyung Park


김진형의 '삼성 콘시피런스'를 포함해후다닥 읽어내고 싶은 소설이 몇권 앞서 있었기에 자연히 사카오의책은 뒷전으로 밀려나요즘에서야 저녁식사후에 읽어내는책순위에 포함되게 된것이다.
집안정리정돈와 청소에있어서는 그저 그런대로정기적으로 열심히 하는편인데도 나이가 먹으면서집안에 물건이 많아지고넘쳐나기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러한 이유로내가 이 책이 여전히 도움이 될거란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에서저자는 젊어서 정리하고정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나이가들어가면서 더욱 정리정돈을 부지런히 하는 동시에 불필요한것에 대한 버림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가 '노전정리'라고 명명한 제목이내게는 여전히 유쾌하지는 않지만 말그대로'늙기전의정리'라는 것이 더 늙어서 기운이다하고 체력이 받혀주지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못하는 시기를 기다리면이미 늦은것이고, 어느 시점에선가에서는 젊은 시절에서부터 끌고다녀온 인생의추억이 담긴 물품들을과감히 정리할 줄 알아야 하는것이 결국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돌이켜보고 자신에게 앞으로남아있는 생을 직시하는현명한 방법이기에 작가는나이 마흔에서부터 서서히노전정리를 시작하기를 권하고있다. 여지껏 살아온나름대로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남아있는 인생을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싶은지를 잘 생각하고그렇게 하기위해 무엇이필요한지를 결정하여,  불필요한 것을 내다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취하는 결단을함께 이야기한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떠오르는 기억이있었다.

지금부터 십여년전나와 나의 전남편이아직은 함께 살아야한다고 믿었고 서로가잘살기 위해서는 지금 살고있는 배우자들과 함께 하는것이 가장 현명하다라는 판단에서 벗어나지않았었던 그 시기에,  남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못하는 일을 단행했었다. 어려서부터 영향받았었고 그 환경에서성장했었으며 결국 그런 분위기에 이끌려 자의반타의반으로 선택하였었던 전남편이하고 있었던 일을 한순간에 내던져 버렸던것이다.  본인 나름대로의 사명감이나 의식이 없는것도아니었고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던직업이기에 나또한 주저하는마음이 없었던것은 아니었지만 바로 옆에서고통받고 좌절하는 모습을지켜봤던 나는 그가 하는대로 묵묵히 따를뿐이었다.

모든것을 두고 떠나는 처지이라 짐을 줄이는것이 큰 관건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피가크고 양이 많은 책들을 정리하여야 했는데, 나이 40이 가깝도록나와 전남편에게 영향을끼쳤던 책들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몇일을 걸려서집안의 모든책을 거실에늘어놓은채 도서관에 기부할책과 버려야할책 그리고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아주 적은갯수의 책과 세금보고와 관련된 서류들을정리했다. 몇날 몇일동안정리하는데 온기운을 쏟아부은후 마지막 남은힘을다해 낑낑거리며 박스들을길밖에 주욱 내어놓은후 책을 기증받는곳에서 책들을 가지러오길 기다리던 어느 토요일 오후.

볕은 따가울정도로 너무좋았었다. 아마, 기억으로는 4월의 초록이한창인 봄이었던것 같다. 앞마당에 파릇하게 단정히가꿔진 잔디밭 그리고햇빛이 잘드는 창가밑쪽으로 흰찔레과 꽃들이흐드러지게핀 우리집의 경계선이끝나는 길가쪽에 박스에구겨진채로 새주인을 기다리고있는 나와 전남편의책들을 내다보는 내 눈가에 나도모르게 눈물이맺혔다. 그중의 어느 한권 듀엣곡 악보를얻기위해 고등학교 시절 절친했던 합장단친구와 학교가위치한 광화문에서 버스를타고 명동 롯데백화점앞 정류장에 내려서는코스모스 백화점을 지나 작은 음악서점에 들러 꽤나 큰돈을 내고 구입했었었다. 멘델스존의 듀엣곡이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그곡을 불렀던것은 결혼후 미국으로이민와서 다니던 교회에서나이어린 이화여대출신 여자 후배와 함께였다. 고등학교때는 내가 소프라노를 노래했지만 그 당시 이대출신의 후배목소리가 나보다 훨씬 가늘고 앳되었기에 나는 앨토파트를 노래했었다. 병아리색의 표지에 볼드한느낌의 검은테가 고급스럽게 장식된 소중한추억이 담긴 악보였지만 앞으로는 쓸일이없다 단언한 내게 그 악보는 더이상무용지물이란 생각이 들었고그렇다면야 누군가에게 도움이되고 추억을 만들수있는 악보가 되리라는소망을 품은채 박스안으로 던져넣었었다.그리고박영신교수님의 사회학 교본은처음 대학에 들어가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함께 새로운 대학인생의 단꿈을 꾸고 있었던 내게 인생이란예술만으로 채워지는게 아니며그와 함께 정신적으로 깨어나서 사회를바라보고 직시할 수 있는 현안을 가져야한다는 신선한 충격을던져주었던 책이다.

이러저러한 사연들을담고있는 책무더기들이 마치 길가에 젓병을 문채 내버려진 아이같이 그리고이에 반해 계절은꽃이 피어나고 나뭇잎들은 초록으로 짙어져가는 눈물나도록 아름다운봄날이었기에 더욱 처량하게만 보였던것 이었는지,  나는 그때까지살아왔던 내자신의 묘목을통채로 다른곳으로 옮기는것과 같이 정신을바짝차려도 모자랄만큼 복잡하고어지러운 상황이었슴에도 상당히감정적으로 그 상황을받아들였던 것이었다.

시간이 날때마다조금씩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이책의제안들을 기준으로삼아 앞으로어떻게 내 인생을살며 어떤방식으로 정리할까계획하기보다는 오히려 여지껏내가 몇번의 순간에내인생의 방향키를 조정하였고 그리고 그 새로잡은 방향안에서 나자신을추스리기위해 나름대로의 고민과혼돈을 해결하였었던 생각들을추억해 낼 수 있었다. 그런면에서 사카오의글은 많은 부분 공감되었는데, 돌이켜보니 내의지를가지고 스스로 조정한방향내에서 내 자신이의연하고 꿋꿋함을 유지하기위해 노력해 오면서도여전히 예전에 습관적으로 했던 행동들이나 어투들 그리고생활방식에 연연해하고 있는 내 모습이 서서히반영되면서 아직은 버리지못하고 있는것들에 대한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달라진것들은 많다.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몸이 아파도꼭 피아노나 오르간을연주해야하는 일상이 내겐있었지만 언젠가 이사하면서 뭉개진 피아노를내다버린후 약식으로 사용하기위해 장만한 키보드는둘째아들녀석이 가끔 장난쳐주지않으면 가구에 불과할만큼 나는 내 스스로 피아노에 앉는일은이젠 없어졌다.

음악에 관해서야할말이 상당히 길긴하지만 일단은 접어두고자하며, 어릴적 친정엄마가 하시던것을 보았던대로 사계절이뚜렷이 없기에 딱히 일이 많은것은 아니고장농 깊숙히 넣었다가도 다시 꺼낼일이생겨나곤하는 남가주의 변덕스런날씨탓에 정확히 시기를조율하기는 힘들지만 철지난옷들은 깨끗이 세탁하고바람잘드는 뒷뜰에 빳빳히말려 보관용 주머니에넣어 침대밑에 보관하거나 장농위에 얹어놓는게 나의 주된 철맞이 행사였는데,  빼꼼히 꽉찬 산행 스케쥴에 365일 하루가 멀다하고 나돌아다니는 일이 많다보니겨울옷이라고 따로 장농깊이들어갈일이 없다는 것이다. 두터운 오버코트정도는 세탁소에맡겼다가 깊숙히 걸어놓기는 하지만 다운패딩이라던가 다운조끼 그리고플리스 겉옷등은 남편이따로 나가살게 되면서비워진 서랍장 하나를빈칸없이 채우게 되었고어느덧 열고닫고가 끊이지않게 사시사철 가장 바쁜 서랍들이 되어 버렸다.

주중엔 회사일을끝내고 집에돌아와 저녁을지어먹은후엔 늘 테레비를보거나 영화를 보는것으로 시간을 보내고주말이면 빨래에 장보기에청소에 그리고 아이들치닥거리까지 포함하여 어느 주말한번 제대로 편히 쉬어본적이 없었지만 산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나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남들이 편히 쉬거나 집안일을 하는 주말에 늘 산을 다녀오기에 빨래도 장보기도청소마저도 주중에 해야하는일이 잦아졌으며 외식도자주 하곤했었던 나의 삶은 주말내내 패스트푸드를 먹는 아들들이안쓰러워 주중에는 무슨일이있어도 집에서 내손으로밥을 해먹이겠다는 야심찬계획까지 하게하였으며 여전히계획은 그런대로 진행중이지만, 회사에서 늦게 끝나거나 회식 또는 약속이 있는 주중엔여지없이 햄버거와 프랜치프라이에 목숨거는 아들들을보면 죄책감에 가슴이쪼그라드는 느낌을 갖는다.

'위장과 집은 80퍼센트만채우자'라는 사카오가요코의 제안에는 전적으로동의한다. '버리면 가벼워지는 진리'와 '생활을단순하게하는대신 정신을풍요롭게 하는것이 중요하다'라는 말까지도.

그런데 어쩌면좋은가 말이다. 작가의말에는 백프로 동감하면서도 여전히 가구역할에 지나지않는 몇년전에장만한 키보드나,  매철마다 장농을연신 비워내면서도 여전히세일이다 반값이다하는말에 혹하여 충동구매에 눈이 돌아갈만치 흥분하기를 거듭하고, 아이들이 먹지도 않은 채소와 떨이과일을 계산대에서 지불하면서도 늘 나다니는 엄마를 둔덕에제대로 맛난 음식을여유를 가지고 해먹이지않기에 주중에 애써서라도 해먹일 수 있다라는 명분만 잘난 욕심을 여전히 버리지못하고 있으니. 게다가이 책을 포함해십여년전 책꽂이까지 기증해버렸던 내 주변에다시 언제부터인가 한두개씩책이 모아지기 시작했고지난해에는 기어이 책장이나의 안방에 모셔졌다.

어쩌면 쉰살의 정리법이따로 필요한건 아닐까.

요세미티의 Vernal 폭포를 향해 오르는 계단식길 하루 왕복 22여마일을 걸은 내 스스로를 믿지 못할만큼 자랑스럽게 느꼈었던 첫 요세미티 산행은 2009년에 나에게 찾아왔었다. ⓒ Sun Kyu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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