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작년에 무산된 바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또 다시 요구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3월 19일자 <국민일보>가 보도한 것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한·일 간 정보공유 체제가 한반도에 대한 한·미 연합 방위에 필수적이라고 보고 재추진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 힘이 있을 때 추진하지 않으면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고 박 대통령의 5월 방미에서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선 협정의 필요성이 매우 크긴 하지만 국내 여건상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우선 안보위기를 수습한 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세밀하게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고 <국민일보>는 전했다. 이에 앞서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국민과 국회의 이해와 협조를 전제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자칫 박근혜 정부가 이 문제로 미국의 요구와 국내 여론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한일 군사협정을 체결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한일 군사협정 체결→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사실상의 한-미-일 3각 동맹 실현'은 미국의 오랜 숙원이자 핵심적인 동아시아 전략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류는 2기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도 거듭 확인되고 있다.
▲ 지난 2009년 3월 10일 한미연합전시증원 연습인 '키-리졸브' 훈련에 참가한 한-미 해병대가 경기도 포천 영평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지난 1월 31일 인준청문회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일본 및 한국과 MD를 강화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한일 군사정보호협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2월 12일 국정연설을 통해 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MD 능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은 2017년까지 미국 본토 서부해안에 14기의 요격미사일을 추가로 배치해 44기로 늘릴 예정이다. 또한 2006년 일본 동북부 아오모리현 항공자위대에 X-밴드 레이더를 배치한 데 이어 교토 동북쪽에도 추가로 레이더를 배치하기로 했다.
아울러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정책의 최대 원칙으로 한-미-일 삼각 관계 강화를 주창하고 있어, 북핵 문제를 틈타 3자 동맹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음모론처럼 들릴 수 있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과 로켓 문제를 한일 군사협력 강화의 호재로 간주해왔다.
미국은 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분석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2009년 4월 13일에 한국과 일본의 관료들과 학자들을 초청해 비공개 회의를 열었는데, 이 회의를 평가한 미국 외교전문은 "최근 북한의 대포동 2호 탄도미사일 발사 전후의 전개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 정부가 보여준 긴밀한 협력은 양국 사이의 장벽이 깨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두 정부에 대한 미국의 면밀한 감독과 능동적 개입을 요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7월 16~17일 도쿄에서 열린 차관보급 한-미-일 3자 국방회담(U.S.-Japan-ROK Defense Trilateral Talks)에서 미국의 의도는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회담에서 마이클 쉬퍼(Michael Schiffer)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의 로켓 발사 및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 정세가 "변곡점(inflection point, 變曲點)"에 와 있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은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데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에드워드 라이스(Edward Rice) 주일미군 사령관은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에 대한 대처는 3자 협력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그 출발점으로 한-미-일 3국이 군사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은 에드워드 라이스의 발언으로 풀린다.
"정보 공유가 미-일, 미-한 양자 사이에서 배타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MD에 차질을 빚고 있다. 공유된 지식과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중요한 장점들과 함께 3자 정보 공유가 이뤄지면 더욱 효과적인 MD가 가능하다."
다른 나라하곤 하면서 왜 일본은 안 되냐고?
한국이 이미 많은 나라와 군사협정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에 한일 군사협정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안일하고도 위험한 생각이다. 우선 일본이 독도와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퇴행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군사 협력을 체결해주면 이들 사안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크다. 일본은 과거사를 덮고 군사 협력을 포함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자는 입장인데, 한일 군사협정 체결은 이러한 일본의 의도에 맞장구를 쳐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일 군사협정 체결은 일본의 군사대국화 및 평화헌법 개악 시도에 대한 한국의 비판적 견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소지가 크다. 군사협정 체결은 한일간에도 집단적 자위권이 부분적으로 적용되어 준동맹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평화헌법의 유명무실화는 더욱 재촉되고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도 탄력을 받게 된다. 더구나 일본은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발판 삼아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일 군사협정은 단순히 양국간의 협력을 확대한다는 차원을 넘어 북한, 더 본질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삼각 동맹 추진이라는 구조적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웃과 친해지기 위해 다른 이웃을 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격언을 되새겨야 하는 시점은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보다는 북일관계 개선을 촉구하고 중재하는 방향으로 일본과의 협력을 도모했었다. 이러한 접근법이야말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역사적 책임을 갖고 있는 일본의 역할이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북한 흡수통일이라는 망상에 빠져 일본과도 몰래 손을 잡으려고 했다가 들통 나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게 권하는 세 가지 대책
▲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지난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북한위협론'은 미국의 MD를 비롯한 군사력과 동맹 강화는 물론이고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가장 강력한 구실로 활용되어왔다. 한국의 외교 능력이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도함으로써 '북한위협론'이 악용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지혜와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는 MB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또 다시 미국의 요구에 끌려들어가 한일 군사협정 체결을 시도했다가는 국내에서 극심한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더구나 군사협정 체결은 아버지 때 잘못 꿴 한일관계의 단추를 더 이상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박근혜 정부에게 세 가지를 권고하고 싶다.
첫째, 어설픈 주고받기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미국으로부터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재처리 기술을 확보하고 미국에게는 한일 군사협정 체결이라는 선물을 주는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를 염두에 두었다간 미국의 페이스에 말려들 공산이 대단히 크다. 더구나 재처리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지도 의문이다. 사용후 연료의 재처리는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이미 입증된 터이고, 탈원전을 향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거리가 멀다. 공연히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만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당면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사용후 연료의 처분은 재처리 방식보다는 조속한 국민적 공론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한일 군사협정 체결이 중국의 반발을 야기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유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중국은 한일 군사협정이 미국 주도의 MD 및 한-미-일 삼각 동맹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북한뿐만 아니라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적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 중국의 북한 끌어안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끝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선도적 의제 설정이 중요하다. 5월 한미정상회담 및 그 준비회의의 핵심적인 의제는 대북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북정책의 초점을 '북한 위협 대처'에 맞추면 한국의 MD 참여 및 이를 위한 한일 군사협정 체결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기 힘들어진다.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미 회담의 핵심 의제를 대북 대화 및 협상 재개에 두어야 한다. 한국도 남북대화에 적극 나설테니 미국도 북미대화 및 6자회담에 적극 임해달라고 요청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방미에 앞서 대북 특사 파견 등의 방식으로 남북관계를 조금이나마 개선시켜놓는다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다행히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이고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 모두 일방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면서도 한국의 입장도 존중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모쪼록 박근혜-오바마의 첫 정상회담이 역사의 퇴행이 아니라 반전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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