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정치부 여기자로 산다는 것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44기 강좌 스케치 - 오마이뉴스 정치부팀장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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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koreaneva)등록 2013.04.02 13:07
장윤선 오마이뉴스 정치부 팀장. 토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44기 수업이 한참진행되고 있는 <강화도 Oh! My School>에 강의 차 이곳을 찾았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밤•낮, 주중•주말 가리지 않고 취재 다니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여기자로서의 삶 만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것 같은데, 그녀는 정치부 팀장을 맡고 있다. 검정색 가죽 자켓을 입고 나타난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흔히 뉴스에서 보듯, 질문 하나라도 더 던지고자, 사진 한 컷이라도 더 찍고자, 정치인을 둘러싸고 벌이게 되는 몸싸움에 아주 단련된 듯 했다.
그녀는 매일 바쁘다. 아침 6시 반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고, 오전에는 국회 2층에서 4층을 돌아다니며 타 언론사 기자, 국회의원과 대변인을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브리핑이 있는 날에는 브리핑장에서의 공식 브리핑 후, 복도에서 백 브리핑(Back Briefing), 그것만으로도 모자라는 경우에는 의원실에서 딥 브리핑(Deep Briefing)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 커피를 17잔씩 마시는 경우도 있다. 일자별로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균형 있게 잘 짜놓은 점심식사 약속을 마치고 나서야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을 하고 기사를 기획한다. 하지만 어디 대한민국의 일이 저녁 6시 이전에 시작되던가? 중요한 정보는 저녁식사와 술자리에서 오가는 경우가 많다. 늘 사람들과 만나며 한 발 앞서 흐름과 리듬을 타야 하는 정치부 기자로서는, 고급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저녁약속을 피할 수 없다. 남편 마저 기자인 사람을 만났으니, 어차피 같은 처지라 육아와 가사를 도와줄 순 있지만 맡길 수도 없고, 형편상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녀는 항상 미안하다. 언젠가는 챙겨줘야 하는 사람을 세어보았더니, 남편과 아이, 팀원을 포함해 11명이다. 어떨 때에는 고민이 되기도 한다. 아이에게 엄마의 손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인데… 육아, 가사, 직장 일 모두 잘 할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모두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 그녀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에 비하면 그녀는 아이에게 1천분의 1도 못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이 직장 그만두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차오르기도 한다. 특히 지난 한해는 교육감 선거, 총선, 대선으로 바쁘게도 뛰어 다녔다. 전국의 대선유세현장을 방송하는 <Oh My TV>에서는 초대손님들이 "장윤선 기자, 11시에는 퇴근시키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은 모두 곤히 잠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국 그녀의 자녀들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 지금의 중고등학생들, 취업을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가 민주적 절차에 잘 훈련되어 있고,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걱정하는 인물이 아니라 스펙이나 인기도, 당 쇄신에 비치는 이미지로 선정된 정치인이 의정활동을 하는 근시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의 갈증을 못 본 체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들어 선 2013년. 비록 그녀는, 잇따른 3개 선거에서 패배로 결코 가볍진 않았지만, 결국 팀장직을 내어놓았다. 그 동안 6살, 9살 아이들에게 못해준 것들을 저녁시간 동안만이라도 만회하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하냐고? 행복하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살다 보니,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이 또한 기자로서는 필요한 시각이기 때문이다.
질의응답시간이 되자 그녀에게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왔다. "왜 죄책감을 느끼세요?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일하면 아이들은 그걸 보고 크는 거 아닐까요?" 실제로 그녀도 미혼일 때에는 고민했던 부분이다. 기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만났다. '육아를 왜 여자가 책임져야 하느냐? 아이는 아이대로 스스로 커야 하는 것 아니냐?' 또는, '그래도 아이는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는 그녀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현재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녀의 입장은 분명하다. 엄마로서 더 충실하고 싶다.
수강생들의 열기로 뜨거웠던 강의가 끝나고, 맛 좋은 친환경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는 식당에 가는 길에 그녀가 보인다. 3월이라 아직은 황량한 강화도의 밭을 배경으로, 검정색 카메라 가방 대신 6살짜리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다. 여성으로서 육아와 경력관리는 복지국가들 사이에서도 딜레마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 두 아이의 엄마로서 바라 본 생활과 보육, 교육에 친숙하게 될 그녀가 앞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그려나갈 글들은 어떻게 울려 퍼질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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