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 삶보다 중요한 강남의 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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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나(ana1006)등록 2013.05.08 11:43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지난 10일 오후 3시께 강남 한복판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한 아줌마가 뜨거운 어묵국물을 들고 누군가에게 다가오지 말라며 소리쳤다. 그의 주변으론 '가로정비'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젊고 건장한 남성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거라도 해서 먹고 살라고 하는데! 니들이 양심이 있으면 또 이러면 안되지, 오지 마! 오지말라고 했어!"

아주머니가 어묵국물을 뿌리려고 하자 덩치 큰 젊은 청년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가로정비'조끼를 입은 용역직원들이 몰려들어 아주머니를 순식간에 둘러쌓다. 한 청년이 국자를 든 아주머니의 손을 붙잡아 국자를 빼앗자 순식간에 다른 청년들이 함께 판자를 엎으려고 달려들었다. 엄청난 수의 용역직원들이 노점상 판자를 잡아 끌자 속수무책으로 끌려갔고, 국자를 빼앗긴 아주머니는 남아있던 고춧가루를 들고 그들에게 뿌렸다.

아주머니는 노점상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그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왜저러냐는 싸늘한 반응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며 그곳을 빠져나가기에 바빴다. 순간 지나가던 중년 여성의 날카로운 한 마디가 귀를 때렸다.

"미친년 아니야 저거."

아주머니를 도와주시러 온 노점상인 한 분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먹고 사는 문제는 임금님도 구제 못해! 경찰들도 도둑질을 동업하는 세상이야 지금! 이 사람들 도둑질 강도질 하라고 ? 나쁜사람들…"

강남에서는 지난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앞둔 시점부터 노점상 단속을 강화해왔다. 국제적인 행사를 빌미로 또는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수많은 노점상들이 철거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대부분 용역직원들을 동원해 이루어졌으며 욕설과 폭행이 난무하는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날도 용역직원들과 이를 막는 상인들의 몸싸움이 한 시간 넘게 계속되었고, 용역직원들의 입에서는 욕설이 난무했다. 용역직원 중에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한 앳된 얼굴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내 옆에는 구청직원인듯 보이는 중년의 남성 두 명이 당시의 상황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용역직원들에게 조용히 지시를 내리며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 그곳에 함께 있었던 친구는 "지금은 사람도 많고 하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접어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용역직원과 상인들의 싸움이 일단락되자, 시민들을 향한 한 노점 상인의 간곡한 호소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퍼졌다.

"돈 많은 강남구청에서 지금 어렵게 사는 사람들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강남구는 정말 있는 자만이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일프로가 살 수 있는 그런 도시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불성설입니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노점상인에게 짧은 인터뷰를 요청했다.

-현재 노점상이 총 몇 개쯤 되나요?
"한 22개 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6개 정도 철거됐습니다."

-노점상을 철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기 지금 화단을 가져다 놨잖아요. 저게 원래 없던 건데 (강남구에서)노점상을 못하게 깔았어요. 저 사이사이에서 저희들이 장사를 하는 거에요.
사실 장사를 한지 오래됐어요. 한 20여년 해왔어요. 그러다 3~4년 전에 단속을 해서 저희들이 허가난 박스를 가지고 골목에서 장사를 했어요. 그런데 그게 장사가 안돼서 박스는 구청에서 철거를 해가고 다시 여기로 내려와서 1~2년 째 장사를 다시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여튼 지금 미관상 보기 안좋다고 철수를 하는거예요. 원래 철거를 하는 과장이 원래 계장일 때 철거를 한 번 했었어요. 단속 실적을 올리려고 지시를 내리는 걸로 알고 있어요."

-행정대집행이 내려진 건가요?
"그 전에도 몇 번 단속했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행정대집행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거예요. 강남구가 재원이 많아요. 제가 알기에는 용역을 많이 샀어요. 차가 이렇게 여러 대 오고, 이 정도 인력을 보강했을때는 몇십억쯤 들여서 용역을 산 것 같은데…
사실 지금 강남구 구의원이 단속을 심하게 하지 말라는 상황이에요. 노점단속하는데 쓸데없이 돈쓰지 말고, 다른 데 복지쪽에 써라 하는 상황인데도 말 안듣고 계속 하는 중이에요…
오늘도 몇 사람 다치고,손도 찢어지고, 한 사람은 머리도 다치고, 팔도 비틀리고 했어요. 뭐 용역얘들은 알다시피 일당 때문에…"

-오늘은 용역이 한 몇 명 정도 왔나요?
"20명씩 한 3팀 정도니까 한 60명 정도 온 것 같아요."

결국 이 날, 세 시간에 걸친 실랑이 끝에 두 개의 노점상이 강제 철거 되었고, 약 다섯시경 용역직원들이 철수한 듯 보였다.

강남구의 항변

이 날 벌어진 강제철거에 관한 자세한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강남구청의 건설관리과 팀장과 전화연결을 시도했다.

-지금 강남대로의 노점상을 철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예전부터 강남대로에 통행문제가 있어서 정비를 해야 했었고, 노점상들이 생계형이 아니라 한 사람이 매대를 4개씩 쳐놓고 운영하는 타로노점이 많기 때문에 문제가 큽니다. 포장을 크게 치고 영업을 하니까 주변에서 민원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최근에는 노점상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2013년 특별단속을 시행했습니다. 또 미관상으로도 안 좋고,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며 통행량도 하루 백만인구로 많기 때문에 통행에 불편을 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강제철거에 동원된 용역업체는 어디 소속인가요
현재 서울시의 구청들은 용역업체와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용역은 계약입찰을 통해 경비업체로 등록된 업체를 쓰고, 사람들을 쓸 때는 회사에서 사전교육도 합니다. 노점상 단체가 공무집행방해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노점상을 철거에는 용역업체뿐만이 아니라 공무원도 함께 나서고 있습니다. 정당한 공무집행이 되려면 단속이 나왔을 때 물러서야 되는데, 노점상인이 단체로 나와서 행동을 하니까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철거에는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원래 사전에 협의를 다 거쳐 행정대집행이 내려지고 계고장을 보낸 후에 철거에 나섭니다. 그러나 행정대집행이 없어도 '도로법 65조'에 따라 항시 반복되는 도로점거에는 '즉시강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도로법 규정에 따라서 실시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철거를 진행하실 계획인지…
현재 강남역 주변 철거가 가장 어렵습니다. 강남역 11번 출구에는 통행이 많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으며, 먹거리는 식품위생문제도 크기 때문에 이런 사정상 단속을 더 철저히 해야합니다. 인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상시적인 단속팀이 있기는 하지만)매일 단속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보행권이 최우선이므로 보행권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강남구의 두 얼굴

2013년 2월 18일 강남구청 홈페이지에 '강남구, 선진시민의식 정착운동 마무리에 총력!'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보도자료에 따르면, 강남구(구청장 신연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으로 인해 국제도시로 거듭난 강남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불법무질서 추방과제를 선정하여 올해 안에 불법과 무질서를 뿌리뽑겠다고 밝혔다.

강남구가 제시한 5대 불법무질서 추방과제는 ▲불법 광고물 추방 ▲불법 노점상과 쓰레기 무단투기 근절 ▲불법주정차 근절 ▲불법건축물 일소 ▲불법퇴폐업소 철퇴 로 선정되었다.

특히 노점에 관하여 "신발생 노점, 고질적 민원을 발생시키는 노점, 영업 후에도 도로상에 방치하여 도시미관을 해치는 노점을 특별 정비 대상으로 하여 불법 노점상에 대한 정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강남구가 말하는 도시의 미관을 해치며 시민의 보행권을 침해하는 노점들은 지난 2012년부터 대형화분으로 교체되었고, 강남거리 한복판에는 현재 약 220여 개의 대형화분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강남구청 민원실 직원과의 통화에서 대형화분에 대해 물어보니 관계직원은 "노점이 재발을 못하게 화분과 의자를 설치해놓은 것"이며 "특별한 민원이 제기된 적이 없고 미관상 더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해왔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의 입장은 달랐다. 밤에만 여는 노점과는 달리 아침에도 버젓이 서있는 대형화분들로 인해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의 출근길이 훨씬 더 복잡해졌다는 불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미관상으로도 별로 아름답지 않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강남의 학원을 다니고 있는 전OO(경기도 안산)씨는 "인도한복판에…예쁘지도 않고 불필요해 보인다"고 말했고, 매일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한OO(서울 잠실)씨는 "미관상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하고 뭔가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이OO(경기도 산본)씨는 "예뻐보이지도 않는데 공기정화용이 아니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으며, 김OO(경기도 시흥)씨는 "주말이면 사람도 북적북적해서 불편하고, 얼마 전에는 화분에 부딪힐 뻔 했다"며 "차라리 나무에서 향기라도 풍긴다면 좋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강남을 패션의 도시, 트렌드의 중심, 아름답고 멋진 젊은이들의 도시로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그런 매력적인 강남의 이면에는 미관상의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많은 노점상인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있었다. 그리고 정작 미관상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던 대형화분은 그리 아름답지 않으며 오히여 보행상 불편만 더 초래하고 있는 듯했다.
사람 대신 대형화분이 꿰차고 있는 거리를 보면서 사람의 삶보다 도시의 미관이 먼저인 '그런 반전 있는 강남'이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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