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고통 주지 않으면서 행복해지기

2013 성미산탈핵평화도보여행 (2)

검토 완료

김명기(nickace)등록 2013.04.25 21:03
둘째 날, 울진 해변을 따라 '해파랑길'을 걸었다. 어떤 액션도 계획되어 있지 않은 날. 액션 없이 걷기만 하다 보니 걷기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걷는 동안 그저 다음 쉬는 시간만 생각했다."는 영규(8학년)부터 "(자동차를 타지 않고)굳이 걷는 이유가 석유를 아끼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공감을 위해서인가?"라고 말한 영식이 형(11학년)의 보다 근본적인 생각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해파랑길이 끝나고 잠시 뒤 언덕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언덕을 오르니 바닥에 개구리들이 많이 말라 죽어있다. 보아하니 도로로 내려왔다 인도로 올라가는 턱이 높아서 뛰어올라가지 못한 것 같다. 진현이(8학년)는 "개구리들이 살고 지나다니던 땅에 들어온 길이 마을주민들의 삶에 들어온 원자력발전소 같다."라고 말했고, 멋대로(교사, 천정연)는 "이 아이들(개구리)이 왜 여기에 이렇게 죽어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징그러워서 만지지는 못했다"라고 토로했다. 우린 그 길 덕분에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길 때문에 개구리는 죽었다. 또한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돕지 못한다. 우리가 밀양 혹은 강정 같은 곳의 어려움을 잘 알면서도 전기기기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하거나 어느 순간 귀찮은 일이 돼 버릴까 선뜻 돕지 못하는 모습과 닮지 않았나.

아침, 숙소에 비명소리가 울렸었다. 도보여행 대장 나무(교사, 조영현)의 목소리였다. 용찬이(8학년)가 나무의 손가락이 문틈에 끼인 줄 모르고 계속 문을 닫으려고 한 것이다. 나무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며 빼달라고 말하는데도 문을 계속 잡아당겼다. 용찬이는 약간의 소통의 어려움과 함께 열린 문을 닫거나 물건을 정리하는 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무의 손가락이 낀 것은 생각지 못하고 문이 안 닫히니 계속 닫으려 했던 것.

그날 저녁, 나무는 용찬이와의 일을 공유하며 "한쪽이 욕구를 채우고자 취한 어떤 행동이 어느 누군가에겐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전기를 쓰며 편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밀양 주민들에겐 송전탑 건설의 고통으로, 울진에는 원자력발전소의 건설로 나타나는 것처럼. 그런 연결을 생각하지 못하면 밀양주민들의 고통, 원전으로 인한 그것들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오늘 우리는 '탈핵'이라는 큰 글씨를 우리들의 지장(指章)으로 채우기 위한 첫 번째 도장을 찍었다. 여행기간 내내 매일매일 한손가락씩 그 장(場)을 채워 나갈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욕구를 가진 54명이 손가락을 하나씩 보태 하나의 글자를 완성하는 일. 우리의 여행이 마무리되는 순간, '탈핵'이란 글자를 함께 완성하며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내가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힘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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