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의 두 이야기, 타지마할과 아그라 성

이야기 하나, 타지마할 - 질릴정도로 아름다운 하얀 그리움- / 이야기 둘, 아그라 성 - 사랑이 애증이 되어 서린 붉은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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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향(albert38)등록 2013.05.12 15:54
아그라의 두 이야기, 타지마할과 아그라 성

  그들의 사랑과 삶이 현재되어 살아남은 곳. 사랑과 애증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그 곳.
당신이 인도를 떠올린다면 잊지 않고 발 디뎌야 할 도시 아그라. 그 도시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된 당신이라면 이제 천천히 그 이름을 불러도 좋으리라.
하얀 타지마할, 그리고 붉은 아그라 성.

글, 사진 / 이국향



이야기 하나, 타지마할
  - '질릴 정도로 아름다운 하얀 그리움 '

'질릴 정도로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아그라가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를 뒤로하고 걸어 나오면 누구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인도 하면 가장 먼저 회자되는 것이 '갠지즈' 또는 '타지마할'이 아닐까 싶다. 대면하기 전 내게 있어 타지마할이란 건축물은 묘한 감정으로 자리 잡고 있던 곳이었다. 완벽한 대칭형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하니 그런가보다 했다. 대칭보다는 언발란스를 좋아해서였는지 그림으로 볼 때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더구나 사랑하던 왕비를 위해 마련한 무덤이라니, 도대체가 그 권력이 얼마나 대단하면 왕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살아있는 가난한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저런 건축물을 만든단 말인가?....... 하는 정도의 생각이 내가 가진 타지마할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은근히 이 건축물을 설계하고 만든 샤 자한 왕에 대한 알 수 없는 반감조차 있었던 것 같고, '그래 내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보기나 보자'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그라는 델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야무나 강 연안에 있는 도시로서 무굴 제국의 수도였고 3대 황제였던 악바르에 의해 세워졌다. 아그라의 대표적 건축물인 타지마할(Taj Mahal)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 일컬어지는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제 5대 황제였던 샤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본명 아르주망 바누 베굼)'의 죽음을 애도하여 조영한 묘소이다. 뭄타즈가 죽은 이듬해인 1633년에 착공되어 22년간이나 공사가 진행되었다는 65미터의 대리석 건축물인(위키 백과사전)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이집트, 이태리 등에서 초빙되어 온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2만여 명의 인부가 동원되었고, 중국에서 가져온 비취, 미얀마의 루비, 다마스커스의 진주 등 세계 각지에서 온 보석으로 장식되었다(자유투어 홈페이지) 한다. 어쨌거나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고,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아그라 하면 대표되는 타지마할을 들어서고 있었다.

타지마할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표소 입구에서부터 철두철미한 검사를 거쳐 들어간다. 우리가 가진 여행 소지품의 많은 것들을 제한한다. 물을 제외한 음식물을 비롯하여 어떤 종류의 화장품이든 또 필기구든. 휴대할 수 없다는 물건의 종류가 너무 많아 설명을 들으며 분류해보니, 모든 얼룩이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들이 금지되었다. 결국 제외하고 남은 것이 가만히 보니 카메라와 렌즈, 여권, 돈 정도이고 물을 허락해주었다. 자기 카메라를 벽에 찧어 망가뜨릴 바보는 없을 것이라서 그런 것 같고, 여권과 돈이야 망가지면 나만 손해인 것이며, 물은 대리석 벽과 바닥을 적셔도 닦아낼 수 있는 것이어서 그런가보다 싶다. 마치 공항 출국심사대를 거쳐 가는 듯한 과정을 거쳐 입구에 도착하니 사진에서 보던 타지마할 대신 붉은 건물 하나가 우리를 맞이한다. 저 아름다운 건물이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입구란다. 벽을 보니 알아볼 리 만무한 검은 글자들이 붉은 벽에 온통 감겨져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글자는 모두 대리석을 갈아 틈에 끼워 넣어 만든 것이라 한다. 아마도 여기서부터 기가 확 꺾인 것 같다.

출입구를 들어서니 저~ 기 멀리 사진에서 보아왔던 대칭형의 건물이 서있다. '어? 저거 진짜 있네?'싶다. 키 큰 가이드는 내 카메라를 뺐더니 그야말로 대칭형의 건물을 정확하게 찍을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사진 한 장을 찍어준다. 아무리 찍어도 대칭표현이 어려웠는데 그는 사진 찍는 자리를 알고 있었다. 역시나 길게 대칭형 나무 사이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뜨거운 태양을 애써 외면하며 건물 입구를 찾아들려하니 모두 신발을 벗거나 덧신을 신으라 한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예외는 없다. 

타지마할 안에서는 일체의 사진촬영이 금지된 터라 내부의 아름다움은 단지 꾹꾹 마음에 눌러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숨에 보기엔 벅찬 아름다움이었다. 가난한 내 언어로서는 담아낼 수 없는 아름다운 무늬와 색깔이 대리석에 그려져 있는데, 실은 그 모든 디자인과 색깔 역시 대리석으로 갈아 대리석 표면에 끼워 넣은 것이었다. 곳곳에 장식된 벽면이든 그 무엇이든 모두 대리석이었고, 우아하고 단아하나 화려하며 또한 대리석의 자연스러움도 묻어났다. 아름다웠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저걸 어떻게 그 시절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이 건물이 어떻게 지어질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불사가의하다'라고 밖에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불가사의'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는 속으로 삼키는 와~~가 전부였다. 샤 자한 왕과 뭄타즈 마할의 관이 놓여 있는 곳을 따라 한바퀴 돌았는데, 사실 진품은 지하에 있다고 한다. 보호 차원에서 똑 같이 만들어놨다고. 멈춰서 오래 볼 수도 없었다. 관람객들이 연이어 들어오는 터라 멈출 수도 없고 빙빙 그들을 따라 돌 수밖에 없다.

실로 인간의 힘이란 것이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경이로움을 눈앞에 두고 천천히 걸었다. 밖으로 나와 걸어도 마찬가지다. 바닥과 벽면 등 그 어떤 곳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바닥의 타일도, 계단 모서리도, 길가 벤치도, 울타리도, 하물며 물 빠지는 하수구, 손잡이와 계단까지....... 어디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하찮다면 하찮게 여길 수 있는 것들조차 아름다운 흰 대리석을 입혀 이 건축물은 마치 백색의 옷을 입은 신부 같았다. 어쩌면 그는 그리운 왕비를 그렇게 나타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벌처럼 윙윙거렸다. 차가운 돌을 저렇게 다루었다니, 인간의 힘이란 것이 미칠 수 있는 영역이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하는 경외심마저 든다. 언제 다시 와보게 될 지 알 수 없을 그 곳을 마음 도장 찍으며 걸어 나오니, 22년간 대리석을 갈고 또 갈았을 기술자들의 모습이 대칭형 길에 오버랩 되는 것 같다. 건물의 쓰인 모든 무늬는 대리석, 두드리면 깨어지니 그 모양이 나올 때까지 갈고 또 갈았을 것이다. 아픈 마음과 아름다운 감동이 함께 깃들여진 곳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색깔의 역사를 입고 그렇게 서 있는 타지마할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 출입구를 나선다. 이제 아그라가 들려주는 다른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다.

  이야기 둘, 아그라 성
  - '사랑이 애증이 되어 서린 붉은 성채'

아그라 성(Agra Fort), 타지마할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그라 성은 1565년 무굴 제국의 제 3대 황제였던 악바르(Akbar)대제 때 지어졌고, 그의 손자인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건축하면서 더욱 발전시켰다 한다. 아그라 붉은 성이라고도 불리운다는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과는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마주보고 서있다. 붉은 사암의 성채와 내부의 하얀 대리석 건물이 어우러져 웅장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건축물(위키 백과사전) 아그라 성.

아그라 성은 그에 의해 다듬어지고도 그를 가둔 샤 자한 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너무 많은 재정을 낭비한 샤 자한이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야무나 강 너머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무삼만 버즈(Muasamman Burj)에 갇혀 있다가 거기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지는 곳. 역사의 아이러니다.

아그라 성 위에 올라 건너다보면,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사랑하는 왕비가 누워있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타지마할을 건너다보며, 아들에 의해 갇혀 지냈던 샤자한 왕, 가까이 만나 물어볼 수 있으면 어떤 대답을 할까 싶다. 너무 기가 막힌 자리매김이다. 20년 넘게 타지마할을 만드느라 썼을 국고, 그럼으로써 추측 가능한 백성들의 생활.......그의 아들인 아우랑제브는 아버지의 무모함에 대해 가차 없는 결단을 내렸던 모양이다.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타지마할을 완성한 샤자한 왕은 새하얀 대리석의 왕비무덤 반대편에, 이번엔 새까만 대리석으로 자신을 위한 묘소를 마련하려 시도했었기 때문에 빚어진 결단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너무 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이고, 또 부모를 쳐내야만 하는 입장의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그라 성 한 공간에 갇혀, 창 너머로 굽이치는 강 저 멀리 왕비가 누워있을 곳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지새웠을 한 남자를 상상해보노라면 기분이 참 묘해진다. 설명에 따르면 샤 자한 왕은 정기적으로 타지마할에 들렀다한다. 그나마 아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도리와 애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이 살다 가면 흔적이 남는다. 사람은 남지 않고 삶의 흔적이 남는다. 오늘의 내가 어떻게 남고, 그 것이 어떤 모양으로 시간 속에 재배열되어 흘러갈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하루하루 살고 있는 이 시간에 입혀지는 무게를 함부로 흘려버릴 일은 아니다.

인도의 아그라를 떠올리면 멀어져 간 시간 속에 숨은 생생한 그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얀 타지마할과 붉은 아그라 성. 사람이 살다 간 흔적이 시간을 거슬러 현재되어 남은 곳.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애증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곳.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애증이 남은 사람들의 귀 기울이게 만드는 그 곳. 아그라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 또한 그들처럼 사랑하고 살아가야 할 다짐을 발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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