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세대, 승자독식의 게임을 플레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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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가람(gksrkfka911)등록 2013.05.19 21:09
우석훈과 박권일의 공동 저작인 <88만원세대>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면서, 경제성장의 그늘에 머물러있던 2007년 전후 20대가 '88만원세대'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지게 된다. 5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절망의 시대의 쓰인 희망의 경제학"은 여전히 희망의 경제학이 되고 있는가?

승자독식 게임의 시작

'한국경제 영광의 30년'동안 전 계층에 걸쳐 열려있던 가능성의 문은 유신세대와 386세대를 지나, 거의 마지막으로 안전지대를 넘어온 X세대를 끝으로 닫히게 된다. 전체 일자리의 10%정도에 불과한 대기업과 정부조직에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 외에, 88만원세대가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는 언젠가는 잡아먹힐 개미지옥에 몸을 던지는 것뿐이다. 2~3개의 주요 생산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남은 변두리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중소기업에 불안정한 취직을 하든지, 아니면 대형 프랜차이즈업체가 장악한 시장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자영업을 하든지.

88만원세대, 청년들의 삶

IMF경제위기부터 정부는 '선택과 집중 전략' 아래 10만 명의 국민을 부양할 하나의 경제주체를 성장가능성의 여부에 따라 선정하고 지원한다. 선택을 받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기업들은 정부가 제시한 '원형'에 가까워지고자 동일유전자를 대량 복사하며, 획일성의 경쟁을 치르게 된다. 이러한 마당에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대기업에 입사하고자 할 때, 우리나라 10대와 20대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미래가 다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승자독식의 게임 안에서 이들은 평생소득과 안정성이 높은 순서대로 획일적인 경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10대들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10대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를 사회가 요구하는 첫 번째 바늘구멍인 수능(수학능력검정시험)을 위해 바친다. 상위 4%만이 받을 수 있는 '1등급'을 위해 시간이 갈수록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현실은 팽창하는 사교육시장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능을 온 몸으로 겪어내고 난 뒤, 20대가 되어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충분한 사회적 교육을 받거나 경험을 쌓지 않은 채 급작스럽게 성인이 된 이들에게 주어진 길은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거나, 혹은 몇 년의 유예기간을 더 '스펙'을 쌓는데 보내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10대를 보낼 때와 마찬가지로 남들과 같은 일을 하지만 그래서 더 고독하고 고통스럽다.

10대와 20대는 하나의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지만, 교류와 협력이 없으므로 집단의 힘을 갖지 못한다. 대부분의 88만원세대에게는 그들의 이야기가 없고,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대표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88만원세대는 다만 부모세대와 기존 사회의 질서에 종속된 채 끊임없이 어른으로서의 독립을 유예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 88만원세대를 탓할 수만은 없다.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않으면 패자부활전이 아닌 죽음이 기다리는 사회에서 금액으로 환산될 수 없는, 돈 이외의 가치들에 대한 관심은 사치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언제 개미귀신에게 던져질지 모르는 과열된 세대 내 경쟁 속에서, 먼저 혁명을 외칠 수 없기에 10대와 20대는 점점 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승자독식 게임의 엔딩

승자독점의 게임을 통해 중소기업이 쇠퇴하여 대기업만이 살아남고, 소수의 10대와 20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여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은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개개의 주체가 하나의 원형으로 획일화될수록, 다품종 소량생산의 포스트포디즘으로 넘어간 산업구조에서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돌연변이, 뮤턴트의 등장은 어렵게 된다. 결과적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약화시켜 힘세고 강한 종만이 살아남은, 공룡 세계의 멸망을 부르는 것이다. 이런 멸망의 세계에 우리의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경제학

희망의 경제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희망의 경제학이 된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몇몇의 별종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구석에나마 건설한 바리케이드는 계속해서 또다른 '별종'을 만들어낸다. 별종들의 모임이 집단적 힘으로 변모할 때, 88만원세대는 스스로와 한국의 미래를 쟁취하는 거대한 짱돌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용한 혁명'은 88만원세대의 힘만으로 이루어낼 수 없다. 원인과 결과가 다원화된 세계에서 해결책 역시도 다양한 곳에서 잉태되어 상호작용을 이루어야 한다. <88만원세대>의 저자들이 강조하듯 앞선 세대의 역할, 기득권층이 나누어야할 몫이 존재한다. 세대 간 경쟁에서 사회초년생에 대한 배려와 한국의 미래를 살찌우는 안배가 필요함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넓은 시야가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책동네에도 실렸습니다. 생나무기사로, 편집부가 정식기사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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