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편의점 가맹점주 모임에서 만났던 2, 30대의 청년 편의점 점주들과 만난 이야기들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오후 5시. 아, 얼마만 더 지나면 집에를 갈 수 있겠구나. 빨리 가고 싶다. 그 보기 싫던 열무김치에라도, 이십 년을 하루같이 나를 대하던 구수한 밥을 마음껏 욕심을 내어 먹어보리라. 이런 공상을 하면서 삽질을 계속하고 있었네. 손바닥은 부르터서 피가 나오고 허리는 아파서 펴질 못하겠네. 얼마 있지 않으면 7시가 되겠지. 자넨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를 걸세. 암, 나도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하였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겨 나는 그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빨리 넘기려는 생각밖에 없었네.─『전태일 평전』, 전태일 열사가 친구 원섭에게 보낸 편지 中나는 '사장'이 될 수 있을까?본사 교육이 막바지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내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육과정에서 이번 기수에는 27살인 내가 가장 어리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복학해서 학교를 마친 지 얼마 안 되는 내가 편의점을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어릴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나와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형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본사 직원들도 교육도중에 요즘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젊은 층의 창업이 매우 많다고 하며, 30대 초반에 편의점을 창업해서 몇 년 만에 큰 매출을 올리고 다른 매장을 여러 개 낸 사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 창업자는 드문 편이고 50대 이상의 여성 창업 지망자는 많다. 쉬는 시간에 함께 담배를 피우며 친해진 30대 초반의 교육을 같이 듣는 형들에게 물어보니 각자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가장 많은 경우는 아버지가 퇴직하면서 퇴직금으로 자녀에게 편의점 창업을 맡기고 가족들이 매장을 함께 봐주는 경우다. 온 가족이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며 가족 전체가 고용되고 노후 대책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젊은 아들들이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조그만 가게를 하다가 가족과 함께 편의점 창업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나도 비슷한 경우다.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해서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했으나 마땅히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대학교 학비를 부모님이 대주셔서 빚은 없었지만 대기업에 들어가기에는 부족한 스펙이 걸렸다. 또 막상 공무원 시험을 이제부터 준비하려고 해도 몇 년을 투자해야 하고, 주변의 선배나 동기들이 4~5년을 날린 채 여전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중독자'로 남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부모님이 대출을 받아 편의점을 일찍부터 경영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고, 젊은 시절에 작은 편의점이라도 경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뛰어들었다. 무엇이 맞는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남아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 더 확실한 미래가 있었을까?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사장님'이 되는 이 길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다.교육과정은 늘 두려움의 연속이다. 강사들이 아무리 성공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라고 강조해도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요즘에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내가 사장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대기업 프랜차이즈 횡포가 심하다는데 여기도 그런 건 아닐까?' '편의점을 하다가 망하면 그다음에는 뭘 하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고, 이런저런 고민 속에 새벽 담배를 피우다 보면 날이 밝아 오는 게 다반사다. 두려움을 가득 품은 채 다니는 창업 교육에서 어느 날 문득 대학 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임금을 떼였던 그 친구가 떠오른 건 본사 직원이 아르바이트생 관리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장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과 가끔 벌어지는 도난 사건이나 불친절 문제를 사장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의 마지막까지 누구도 그들에게 법으로 정해진 임금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수당은 뭘 챙겨줘야 하는지, 또 그들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이도 어린 내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런 걱정을 털어놓자 어차피 사장이 '갑'이라고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답해주지만 마음이 불편했다.교육 막바지에 내가 매장을 내기로 한 지역을 담당하는 본사 직원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온다. 편의점 매장을 내기로 한 바로 길 건너에 대형 마트가 들어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형 마트가 언제 들어오는 거냐고 물어보자 다음 달이라고 한다. 이번 달 말에 편의점을 열기로 했는데, 눈앞이 깜깜해진다. 본사 직원은 미안하다고 말은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는 일은 아니라며 극구 자기는 몰랐다고 강조한다. 말로는 '다행히도' 곧 열게 될 그 마트에서 담배는 팔지 않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아르바이트생이 사준 눈물 젖은 삼겹살오늘은 아르바이트생의 월급이 나가는 날이다. 하루 8시간 주 5일 최저임금에 맞춘 시급 4,900원에 작년부터 지급하기 시작한 주휴수당을 포함해서 계산하니 100만 원 돈이 지급되었다. 주휴수당은, 작년까지는 월급에 포함해서 줘야하는 것을 몰랐다가 언론에 한참 회자가 되는 것을 보고 내가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그 주에 매장에 들르기로 한 본사 직원에게 따지기로 결심했다. 편의점을 개업하고 운영하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생 임금을 얼마 주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창업 직전에 가맹점주들을 모아놓고 하는 교육에서도 한번도 '주휴수당'이라는 것을 줘야 된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적어도 내 동생 같은 친구들에게 최저임금은 꼭 맞춰주리라 결심하고, 매출이 아무리 안 나오고 심지어 내가 벌어가는 돈이 아르바이트생 월급보다 적은 달에도 꼬박꼬박 최저임금을 지키려 노력했다. 아르바이트생들도 최저임금을 지키는 양심적인 젊은 사장님이라고 나를 좋아했다. 그런데 정작 그 뉴스를 보고 나니 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수당을 떼먹고 있는 나쁜 사장이었던 것이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심지어 가끔 들르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도 시급이 얼마인지만 물었지 주휴수당이라는 것을 주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러나 배워도 모르는 게 죄인지는 몰라도, 가르쳐주지도 않는 것을 모르는 것이 죄인지는 잘 모르겠다.여하튼 올해부터는 주휴수당을 챙겨주기로 했다. 매달 나가는 아르바이트생들 임금에 20여만 원이 추가로 나가지만 이왕 지키기로 결심한 것은 지키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번 달 매출에서 아르바이트생 임금과 각종 공과금을 빼고 나니 내가 가져가는 돈이 채 70만 원이 되지 않았다. 지난달은 그나마 나았는데 한 달 만에 수익이 반 토막이 나버렸다. 이 정도면 폐점을 고민해야 함에도 몇 천만 원이나 되는 위약금을 물 생각을 하면 폐점은 빚쟁이로 가는 지름길에 불과하다. 지난번에 만난 다른 젊은 편의점 사장은 결국 2000만 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내고 결국 폐점했다. 적자가 쌓이느니 돈 내고 폐점하는 게 낫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협심증에 걸린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그러나 나의 가슴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창고에 쌓여 있는 '빼빼로'들이다. 거의 두 달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행사'는 본사와의 의무계약조건이다. 더 젊었던 20대 시절 '무슨무슨 데이'는 연애 시절에는 달콤한 데이트의 날, 연애를 하지 않는 시절에는 솔로들끼리 술 마시는 날이었는데 이제는 재고 걱정을 하는 날이다. 거의 강제로 본사의 계열사 제품을 무리한 숫자로 강제 발주하고 재고가 반품도 되지 않는 이 행사는 행사가 아니라 '재앙'일지도 모른다. 인기 있는 제품도 아니고 큰 마트에서 파는 것만큼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맛도 포장도 별로인 이 제품들을 아무리 매장 앞에 조명을 켜놓고 화려한 색깔의 광고지를 붙여놓아도 팔리지 않는다. 내 또래, 조금 더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알뜰한지 모르고 하는 행사인지. 심지어 아르바이트생마저 쌓여 있는 빼빼로 재고를 보며 한숨을 쉰다. 이런 이벤트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기는 이제 이런 행사 제품들을 절대 사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월급을 받은 아르바이트생이 다음 교대 근무자가 오자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한다. 오늘은 월급 받았으니 사장님에게 삼겹살을 사주겠다고 한다. 그래 이번 달에는 네가 더 많이 벌었으니 네가 사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삼겹살을 구웠다.다음 아르바이트생 시간도 끝난 새벽. 두 시간째 담배 사러 오는 손님도 없는 새벽 4시. 평소대로라면 카운터에 기대서 졸아야 하는 시간인데 유난히 잠이 오지 않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술을 너무 적게 마셔서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나 보다. 쇼윈도 밖으로 보이는 거리가 칠흙처럼 검다. 위약금을 내지 못해 폐점조차 못 하는 내 미래만큼이나 검게 느껴진다. 문득 딸랑거리는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간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든다. 고개를 돌려 내 생존의 공간인 편의점을 바라본다. 편의점 쇼윈도 불빛만이 하얗게, 너무나도 하얗게 이 어두운 거리에 불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24시간 내내 불을 끌 수조차 없는 쓸쓸한 등대들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필자 조성주 님은 삶창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과거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이 기사는 삶이 보이는 창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삶이 보이는 창 #삶창 #청춘일기 #조성주 #편의점 점주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