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교과서 파문’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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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dutscheong)등록 2013.06.14 15:48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파문'을 보고

최근의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파문'을 두고 구성해 본, 어느 비극적인 가족사에 대한 한뼘소설이다.

가난하지만 나름 행복하고 의좋게 살아가던 어느 산골 집에 힘이 장사인 한 강도가 들었다. 집안의 어른이셨던 할아버지는 이 강도를 호되게 꾸짖다가 그의 손에 맞아 죽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는 잔뜩 주눅이 들어 함부로 저항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강도는 단지 물건이나 빼앗아 가려고 온 게 아니라, 아예 이 집에서 죽치고 살아가려고 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강도에게 저항을 해보려 했으나, 할아버지의 죽음을 생생하게 목도한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 덤벼보려고 수도 없이 작정하고 계획을 했지만, 건장한 체격의 그 강도를 도저히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두고 자신마저 맞아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으로 다시 주저앉기를 여러 번. 날이 갈수록 그 강도는 안방을 내놓아라, 맛있는 음식을 해오라며 날로 그 횡포가 극심해져 갔지만, 참고 사는 수밖에 달리 어떠한 방도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강도는 아내를 겁탈하고 말았다. 아내는 수치스럽고 분한 마음에 몇 번이나 자결을 결심했지만, 차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 딸이 눈에 밟혀 참고 또 참고 살아야만 했다. 철면피한 강도는 젊은 아내를 범하고도 시치미를 뚝 딴채 어린 아이들을 귀여워해주기 시작했다.
이따금 아이들에게 맛있는 과자를 사주기도 하고,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배우지 못한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강도의 본색은 조금도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아버지를 우롱하였다. 그는 그때 이후 젊은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인 그녀를 수시로 유린하였다. 강도짓 한 돈으로, 억지로 정분을 맺은 집안의 안주인인 아내의 불편을 덜어줄 요량으로, 온돌을 보일러로, 재래식 부엌을 깔끔하고 편리한 현대식 주방으로 바꾸어 주고, 불편하기 짝이 없던 푸세식 화장실도 수세식 양변기로 들여놓아 주었다.
강도는 이제 집안의 중요한 결정을 자신이 직접 내려, 아이들의 의붓아버지 행세를 하며 사실상의 가장 노릇을 하게 되었다. 설 자리가 없어진 무능한 아버지는 머슴의 처지로 전락하여 집안을 위해 돈이나 벌어오라며 강제로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 말하자면 생이별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인면수심의 이 강도는 급기야 어린 딸마저 도회의 부잣집 식모살이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혹독한 식모살이를 견디지 못해, '거리의 여자'가 되었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참으로 사람이 하루하루 먹고산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폄훼할 수 없을만큼 파렴치하고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연이은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남은 가족들은 주어지는 삶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집을 떠나 돈 벌러 보내진 아버지는 차츰 소식이 끊기다가 종국에는 사망통보를 보내왔다. 그럼에도 야속한 세월은 멈추지 않았다. 이즈음 아내와 아들들은 강도가 베풀어주는 호의 덕분에, 그 옛날 온 가족이 함께 살았던 시절, 꽁보리밥에 나물반찬을 먹으며 온종일 밭일에 고달팠지만 이따금 가슴 벅차도록 밀려오던 소중한 행복감을 머리에서 까마득히 떠나보내고 있었다. 뒤늦게 강도는 그의 수많은 범죄행위가 세상에 알려져 종신형으로 수감되기에 이르렀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두 아들은 장성하여 어른이 되었고, 그간 강도가 보살펴 준 덕으로 도회로 유학을 가 공부도 하고 번듯한 직장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온 가슴에 상처투성이뿐인 늙은 홀어머니 혼자 지키는 그 산골 집으로 모이게 되었다. 제사상을 물린 후 그들은 지난 과거 가족사를 회고하며 때 아닌 논쟁에 빠지게 되었다.
큰아들 나완용이 이런 주장을 폈다. 우리 의붓아버지는 비록 할아버지와 친아버지를 죽게 한 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갇혔으나, 산골 무지랭이로 살다 죽었을 우리들을 공부시켜 출세하게 하여 이만한 삶이라도 살게 해 준 그의 은공은 최소한 인정해야 되지 않느냐고. 우리 자식들에게도 이 점만은 인정하여 그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알리고, 그들이 우리 가족사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그 여지를 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힘주어 말했다. 가슴에 멍이 든 홀어머니는 그 애기를 듣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차남 나김구는 그게 어찌 말이 되느냐고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씩씩거렸다. 어린 자식들은 눈만 멀뚱거리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말 중 어느 말이 옳은 말인지 도무지 오리무중이었다.

여러분은 이 소설 속의 큰아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그의 주장이 그간의 가족의 삶을 객관적으로 타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논리인지를 물어보고 싶다. 혹자는 그것도 말은 된 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다수는 말이 안 되는 논리다, 어찌 가족사의 비운을 몇 푼짜리 자기들만의 삶의 편리로 바꿀 수 있느냐고 분개할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일제강점기 36년은 우리 민족의 정기가 치명적으로 말살되는 시간이었다. 비록 분단은 되었으나 제헌의회 때 반민특위가 제대로 가동되었더라면 그토록 동족을 핍박하여 자신의 영달과 가족의 안락을 추구해온 친일파 주구들에 대한 심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이승만의 정치야욕 때문에 물 건너가고 말았다.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드골(de Gaulle)은 독일점령 시의 6개월짜리 괴뢰정부 비시(Vichy)정권 때 협력하였다는 이유로, 페텡 장군을 비롯한 8,000명 이상을 단두대에 세우고, 80,000명 이상의 나찌정권 협력자들을 법정에 세워 심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오늘의 독일은 이웃 프랑스가 무서워 자신의 과거 잘못을 통절하게 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가장 악랄한 지배를 감내했던 대한민국은 단 한 명의 친일파도 제대로 심판해 보지 못했다.
오늘날 일본이 걸핏하면 각료들이 신사참배를 하고, 교과서를 왜곡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정신대 할머니를 모독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등 끊임없이 발호하는 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가 제대로 친일파를 법정에 세우지 못한 탓이다. 60년이 넘도록 우리 동족끼리 으르렁 대고, 친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이익을 영구적으로 보장해 주기 위한 우리사회의 철통같은 메카니즘이 그 이유다. 더욱이 한줌 기득권 세력들의 논리에 맨날 휘둘리며 살아가는 우리 민중들의 무지몽매함도 어찌 책임이 없다고만 하랴.
필자는 지난 대선 때 선거의 주 슬로건이 '사람이 먼저다'는 후보를 응시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현재 우리사회가 내장한 모순을 일거에 풀어낼 실마리가 아닐까, 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낙선하였다. 그와 그를 지지했던 절반 가까운 국민들의 염원의 실현은 아쉽지만 다시 5년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위의 짧은 소설 속의 아들의 주장도 사람의 목숨과 인권의 소중함 보다 자신의 현재의 삶, 즉 '먹고사니즘'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본말전도의 뒤집힌 가치관 탓일 것이다.
탐욕으로 허물어진 세태를 바로잡고, 다시 우리 사회에 복원력과 가능한 지속력을 부여할 코드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한 생명의 소중함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민주주의밖에 없다고 본다. 이 때의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 곳곳에 살아있는 따스한 피처럼 스며들고 돌아야 할 세상의 원리라고 본다. 그간 늘 인간보다 물질을, 과정보다 목표를, 성찰적 이성보다 도구적 합리성을 더 중요시 해 온 비민주적, 반민주적 습성과 관행은 종내 우리사회를 파멸로 이끌고 갈 것임을 확신한다. 하물며 아이들 교과서 기술이야 두 말하면 뭣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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