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결과는 달다?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당신을 위한 현실적 제안.

검토 완료

윤현민(skirish)등록 2013.07.22 20:21
착한 사람은 언제나 잘 될것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우리는 열과 성을 다한 일의 결과물은 희망적이라 생각한다. 열심히 6개월간 준비한 사업이니까, 3년 준비한 임용고시니까, 1000만원이나 투자해서 최고 뮤지션과 제작한 앨범이니까, 8학기 내내 좋은 성적으로 스펙좀 쌓았으니까 이 매장 오픈하는데 3억이나 들었으니까 앞날이 백야청청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참담하다. 망하고 낙방하고 판매가 되지 않는 실패를 경험한다. 우리는 어렸을때 부터 배웠다. 꾸준한 거북이가 1등을 했고 개미는 베짱이보다 부자였다는 것을. 권선은 징악이어야하고 나쁜 사람들은 (상식선에서의 악행자) 죄값을 받아야 한다. 이런게 상식이고 사회적인 통념인데 현실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주변에 착한 사람들은 많다. 법이 없어도 법 만들어서 지킬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왜 잘 안되는걸까. 이런 분들이 대부분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고 약자이거나 을이다. 시위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고 길거리에 드러 누워야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절대약자. 분명 착하게 살면 나중되선 잘 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것 같다. 그런데 이게 사회적, 구조적 문제일까. 나는 근면성실하게 산 죄 밖에 없다라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 우리네 부모님 세대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오셨고 삶을 송두리째 가족과 함께 잘 살기 위해 희생하셨다. 이런 분들의 소중한 집을 저당잡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거나 이자를 감당못해 집을 뺏기는 상황도 생긴다. 이분들의 근면 성실은 왜 이런 댓가로 온걸까. 

"공부 잘하는 사람 = 착한사람"의 공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공부 잘하는 사람 치고 근면성실하지 않은사람 없고 근면한 사람 치고 마음씨 나쁜 사람도 없다. 그리고 가난한 집에서 사법고시 패스하여 소위말해 개천에서 용나는 케이스들도 방송에서 왕왕 떠들어댔었다. 실제로 나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공부 잘하는 학생은 죄다 모범생이었다. 선생님 칭찬을 받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찌됐는지 공부잘하는 사람 = 그냥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 다 그렇다는게 아니고 요즘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다. 공부 잘하는데 왕따 선도하는 아이들도 있고, 괴롭히고도 당당한 그들이다. 담배도 아무데서나 피우길래 경찰이 선도해오면 공부 잘하는 애들도 다수. 학교 폭력은 공부 못하는 애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학생의 전유물이 된것처럼 공부 잘해 성공하는 것과 도덕적인것과는 별개가 되 버렸다.

좋은 결과는 인내와는 상관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긍정적, 권선적 행위는 잘 되고 못 되고의 결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 같다. 그냥 그렇게 됐으면 하는 희망일 뿐이다. 왜냐면 결과는 '선택'의 문제이고 누가 더 지혜를 발휘하느냐가 더 우선되 때문이다. 착하다고 해서 선택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고 많이 배웠다고 해서 언제나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만약 착한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신념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우린 왜 이렇게 희망적으로 배웠을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는 현실을 똑바로 직관하는 능력을 잃어버린것 같다. 아니 직관은 커녕 '잘 되겄지' 하는 현실 회피 능력이 생긴것 같다.

'결과적으로 봐서'라는 말이 뜻하듯 결과 만이 우리를 대변해 준다. 사실 너무 아쉽고 또 속상하다. 결과만 판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정말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결과만 좋도록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어려운 각종 로비에 향응도 제공하고, 공무원들은 여전히 수억씩 받아 챙기기 일쑤다. 어른들이 그렇게 하니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도덕적인 것이 어떻든 간에 공부만 잘하면 되니 불법적인 일들이 자행되고 돈으로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 가기 위한 전철을 밟는다. 국내에 살면서도 외국인 학교에 버젓이 들어가고 좋은 스펙을 돈주고 산다. 참으로 놀랍다. 내것도 아닌데 내것인 척 하다니. 의리와 지조를 최고로 여기던 우리의 선비 정신은 땅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우리네 정치인들중 탐관오리가 아닌 사람이 누구인지 헤아리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니. 과정도 안좋을 뿐더러 결과또한 좋지 아니한 정치계는 더더욱 별천지다.

현실을 똑바로 관찰하고 오랜시간 인내하여 준비한 사람들에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성공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똑바로 관찰하는 눈이 부족한 채 그냥 오랫동안의 준비로 좋은 결과를 바래온듯 하다. 중요한건 어떠한 인고의 시간을 보냈는가가 아니라 그것보다 앞선 현실 인식과 냉철한 자기 판단이다. 엉뚱한 노력하지 않도록 말이다. 혹은 엉뚱한 노력이라 하더라도 다음번 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면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인내의 결과는 결국.
 나에게 있어 인내의 결과는 언제나 교훈이었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에겐 많은 득이 되었고 경험이 되었다. 결과가 나쁘면 나쁜대로 고통과 인내가 있었지만 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성과 겸허함, 그리고 도전정신이다. 인내의 결과로서 마지막에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거니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색다른 일에 접근하는 것이 즐겁고 유익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 조차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는것이 현실이다. 왜냐면 한 번의 실수가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사업 특성상 매입 한 번 잘못하면 그 달은 적자다. 오래 준비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게 잘 안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땐 느끼는 바가 많고 경험적 자산이 되지만 그것이 당장의 손실이기 때문에 뼈아프다. 인내의 결과를 놓고 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과정의 성공이 결과로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이 다음번 혹은 그 다음번 결과를 성공으로 이끌어줄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의 대가로 성공을 갈망하는 보상심리가 아닌 겸허함과 꿋꿋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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