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출신 박병석 국회부의장은 왜 기자가 되었을까

<오마이뉴스> 청소년 기자학교 국회 취재기

검토 완료

이재윤(jay5741)등록 2013.07.31 00:02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박병석 국회부의장이 <오마이뉴스> 청소년 기자학교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다 ⓒ 이재윤


7월 30일 오전 9시 <오마이뉴스> 청소년 기자학교 수강생들이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모였다. 오늘은 바로 박병석 국회부의장과의 면담이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처음 방문하는 국회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으며 TV에서만 보면 국회의원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 이었다.

우리 일행은 관계자로부터 국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후 국회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인 박병석 부의장을 국회 내에 위치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박 부의장에게 우리나라의 기자들과 언론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기자 출신의 정치인이기 때문이었다.

박 부의장은 기자 시절 남들이 모두 꺼려하던 베이징 특파원을 자처했다고 한다. 그 뒤 중국의 민주화 운동현장에 잠입해 그 과정을 보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부의장은 당시 이러한 보도를 한 우리나라의 기자는 자신이 최초라고 말했다.

또한 법대 출신인 그가 기자가 된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박 부의장은 자신이 기자가 된 사연을 당시의 면접과정을 통해서 설명하였다. 그가 언론사면접에 응시했을 때 당시 면접관은 "법대 출신이 왜 기자가 되려고 하죠? 고시 공부가 힘들어서 그런가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해 박 부의장은 "법관은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있지만 기자는 사회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라고 답했다"라고 말했다. 장차 기자나 PD가되어 꿈을 펼쳐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대답으로 다가왔다. 기자의 역할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박 부의장은 언론이 사회의 흐름을 바꾼 예도 소개해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던 박종철 군이 경찰에게 고문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는데 한 기자가 단서를 얻어 보도를 했습니다. 이내 진실이 밝혀졌고 국민들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 부의장은 언론사가 여러 가지 고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들은 항상 자신들의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압박에 시달립니다. 국가권력이나 광고주들로부터 끊임없이 압박이 들어옵니다."라고 말하면서 언론이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말하고 그것을 과감하게 이겨내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자는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야 합니다. 또한 사건의 일부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언론관을 마무리 했다.

오늘 국회 방문과 박병석 부의장을 면담한 일은 나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다. 나는 오늘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꿈에 대한 방향성을 잡았고 자신감을 갖을 수 있었다. 흔히들 언론을 제 4의 권력이라 한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그리고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에 나도 서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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