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이재정, 남북 정상회담 주역들이 평화를 말하다.

"남북관계, 대만과 중국에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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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kangesc)등록 2013.08.11 20:02
8월 11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에서 정의당이 주최한, '남북 정상회담 주역들이 말하는 평화 비전 토론회'가 열렸다.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의 사회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이 2시간 동안 대담을 나눴다. 아래는 대담내용 전문이다.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노무현 정권): 우선 3가지가 궁금하다. 1. 최근 남북관계를 둘러싼 현재 상황, 개성공단의 미래 등등. 현재 남북관계를 둘러싼 안팎 상황을 검토해 달라. 2. 이명박 정부 이후 6년간 동결상태다. 김대중, 노무현 당시 10년간의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의 새로운 비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인지? 문제가 있었다면 부족한 건 무엇인지 돌아보겠다. 3. 앞으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관계를 미래를 향해 열어나가기 위해 대통령, 국회, 국민은 어떤 생각을, 뭘 해야 할까? 최근 남북관계 보며 예전 통일부장관으로서 어떤 생각이신지?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김대중 정권): 남북관계에 대해 말할 게 참 많다.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실망해선 안 된다. 우린 해낼 수 있다. 우리가 평화와 통일을 원하는 한 장애가 많아도 헤쳐나갈 수 있다. 낙관적 희망을 가지면서 대화해 보자.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노무현 정권): 임동원 전 장관께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직접 참여해 대통령과 함께 진행, 저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을 진행했다. 두 대통령 모두 돌아가셨고, 우리는 당시 이야기를 증언하는 남은 자 역할이다. 생각해 보면 정전협정 60년을 되돌아보면 마치 날씨 같다. 비 오고 우박 쏟아지는 날도 있고, 햇볕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결실은 소멸되거나 무시될 수 없는 역사의 실체. 두 명의 대통령과 김정일은 돌아가셨지만, 북한에서는 정상회담이 김정일의 유업이다. 이런 남북관계 발전은 어떤 모략으로도 사라질 수 없다. (박수) 제가 당원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빡센 발언을.

유시민: 퇴임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어떤 요청이나 연락을 받은 적이 있나? 지난 6년간?

임동원: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이재정: 두 분을 비롯해서 통일부장관으로부터도 연락이 없다.

유시민: 저는 장관모임에 오라고 여러차례 연락이 왔다. 가진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분들, 인터넷 생중계 방송 보시면 연락달라. 당을 떠나 국가의 발전을 위해 얘기해야 한다. 올해가 정전 60주년. 정전협정문에 당사자인 한국만 빠져 있다. 사람에 따라 휴전이라 하기도, 정전이라 하기도, 종전이라도 한다. 현재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은 한반도, 정전인가?

임동원: 우린 아직도 1953년 정전협정 체제 하에서 살고 있다. 한반도 체제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정전협정 =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교전 쌍방간에 적대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승패 게임을 제로섬 게임을 지난 60년간 해왔다. 정전체제에선 불가피한 일.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전쟁은 이기고 지는 게 명확한 게 일반적이다. 승패 확실하다. 전쟁 결과는 평화상태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한국 전쟁은 비긴 전쟁이었다. 모두가 이긴 전쟁이라 주장하는 무승부 전쟁. 그리고 나온 게 정전협정이다. 정전협정에는, "체결한 지 3개월 이후에 정치협상을 통해 외국 군대를 모두 철수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한다"라고 되어있는데 완전히 사문화 되고 시간이 지나왔다.
20년 전, 국제 냉전이 끝나고 냉전체체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남북이 해냈고, 핵무기 문제 이후 9.19 공동성명(편집자 주: 2005.9.19.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당사자국들이 채탁한 성명.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을 했다. 6자회담에선, 북한이 왜 핵 개발을 하느냐? 관계 개발을 통해 해결하자는 대화가 오고 갔다. 한반도 문제를 당사자국들이 만나 평화회담을 진행하자. 미, 중, 남북한. 4자 평화회담을 개최한다는 합의를 했다. 그러나 4자회담을 하자는 계기는 마련됐으나 이명박 정부에 의해 거부됐다. 이명박 정부는 핵을 먼저 없애야 한다는 잘못된 접근방법을 택했다. 이제 다시 정전체체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재정: 제가 오늘 아침 교회에서, 유시경 신부의 설교를 듣고 깜짝 놀랐다. 역사가 왜 이렇게 갔는가? 독일과 이스라엘이 견원지간이다. 히틀러 치하에서 유태인 학살됐다. 그런데 이스라엘, 독일은 외교 정상화해서 수교국가다. 우리도 일본 36년 식민통치로 수탈, 유린, 뼈아픈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달픈 이야기를 보면 엄청난 피해를 당했지만, 수교를 맺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했지만 전쟁 이후 베트남과 수교했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수교하지 않은 나라가 북한밖에 없다. 왜 이렇게 안 되나?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전쟁은 승패가 분명한 건데 승패가 없어서 평화체제로 못 갔다는 의견에 동감하지만, 전세계 어느 전쟁사를 봐도 평화체제로 연결되지 않은 경우가 없다. 소련과 미국을 보라. 우리만 안 되고 있다. 어제 정전협정문을 다시 보니, 서문에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 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라고 써 있다. 그렇다면 외교관계가 성립이 안 되는 거죠. 이 조건의 의도는 군사적인 목적이다. 군사적 문제다. 군사적 신뢰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정전 체제에 얽힐 수밖에 없다. 오늘 보신각에서 역사적 예배를 드리고 왔다. 한반도 평화통일 위해 우리가 앞장서서 행동한다는 전세계 교회의 기도회가 있었다. 지난 60년 돌이켜 보면 우리는 정전협정에 묶여 살아왔다. 적극적 노력은 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이다. 10.4. 남북정상선언 3조를 보면, "남과 북은 적대적 군사 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 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고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라고 써 있다. 10.4. 남북정상회담이야말로 정전협정을 뛰어 넘어 함께 남북이 걸어가는 길을 연 회담이다.

유시민: 두 분 이야기에 여러 회담 내용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북한 핵문제의 원인이 북미 사이의 적대적 군사관계 때문이라 얘기해 주셨다. 최근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꼼꼼히 읽어 보니, 김정일 모두발언 중에 김계남 6자회담 대표가 회의장에서 돌아와서 회담 결과를 보고하는데, 북한은 북핵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1. 북이 6자회담에 나가는 이유는 북에 대한 미국의 적대 행위의 중지 2. 한반도 비핵화. 3. 핵 에너지의 평화로운 이용 보장. 노무현도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입장에 동의했다는 걸 여러차례 강조. 나는 북핵과 정전협정 문제는 얽혀있다는 생각이다. 모든 원인이 한국 전쟁에 있다. 여러 합의, 공동성명, 실무적 합의도 있었지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뭔가?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이렇게 하면 남북관계를 풀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핵심이 뭔가?

임동원: 우리 국민들이 빨리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주장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빠르게 할 수 없다.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평화가 보장되나? 꼭 그렇지 않다. 베트남의 예. 평화협정 체결하고 얼마 있다가 월남이 망했다. 평화협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뭔가?
1.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조치.
2. 분단체제 종료.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해서 분단상태가 유지된다면 평화협정의 의미가 없다. 분단상태에서 서로 정통성 독점 경쟁이 불가피하고, 승패의 유혹에서 헤어나기 어렵고 갈등, 대결, 군비경쟁, 그러다가 전쟁 다시 일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되 분단을 고착시키는 협정이 아니라 통일로 연결되는 평화체제로 연결돼야 한다.
3. 또 하나, 평화협정은 마주 앉아 내일부터 평화하자, 정전협정 폐기하자며 도장찍자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오랜시간 회의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 평화협정이다. 유럽을 보자. 1972년 헬싱키에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 나라 35개가 모여 유럽 평화질서 만들기 위해 3년 동안 논의해서 만들어 낸 게 헬싱키 협약.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서 평화를 만들자. 시행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군사적, 정치적 협력, 경제, 과학, 정보기술 분야의 협력을 위한 15년의 과정을, '데탕트 프로젝트'라 부른다. 그 결과 91년 파리에서 평화조약 체결. 우리도 상당기간 오래 걸린다. 빨리 4자 평화회담을 시작해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평화 프로세스! 미국과 북한간의 적대관계 해소하고, 남북 군축을 해서 그 결과로서 평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우리가 정확히 알고 대처방법을 찾아야 한다. 평화협정 체결하라는 것보다 평화회담 빨리 시작하란 주장을 해야. 왜 안 됐냐? 한국이 거부해서. 미국이나 중국이 평화회담 적극적으로 나설 까닭이 없다.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그 전에 뭐가 더 중요하냐면, 남북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이재정: 지금 평화회담을 먼저 해야 한다는 건 지난 20년 역사가 보여준다. 90년대 냉전이 무너지며 새로운 변화가 한반도에 왔다. 미국의 경우 북핵을 어떻게 해결하냐는 문제에 집착. 우리나라 보수세력도 마찬가지. 그럼 핵만 해결되면 모든 게 해결되냐? 그 문제에 집착해서 해결된 게 없다. 94년 북미 전쟁 위기에서,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 기본합의를 만들어 냈다. 합의문의 제목은 "한반도 핵 문제의 전반적 해결". 여기 북핵이란 내용은 없다. 한반도 핵 문제다!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 하고는, 미국은 북핵 문제에만 집중했다. 이 때, 합의사항 가운데 핵심은, 북한의 흑연 감속 핵 원자로를 경수로 원자로 시설로 대체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 원자로를 경수로 원자로로 바꿔줄테니까 북한은 핵 원자로를 없애라. 공사는 97년에야 시작된다. 공사는 진행돼서 2002년에 원자로 들어가는 곳에 콘크리트 공사를 끝냈다. 그러자 CIA가 북한에 또 다른 핵개발의 징후가 있다며, 제임스 켈리라는 대북특사를 북한에 보냈다. 켈리가 방북 이후, 북한에서 우라늄 고농축 프로세스 하고 있다고 밝힌 후 모든 게 끝났다. 이렇게 어렵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까? 미국이 책임자다. 한반도 핵 이슈가 아니라 북핵 문제에 집중하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도록 대못질을 했다. 깨진 얘기다.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은 유럽 35개국이 인내를 가지고 노력해온 것처럼, 이 문제도 우리가 어떻게 이행하려 하는가가 중요하다. 고농축 우라늄 문제가 있으면 (편집자주: 물타기를 하지 말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될 거고, 다른 문제는 다른 문제로 다루면 된다.

임동원: 94년 제네바 합의는 대단히 잘 된 합의였다. 기본은, 북한은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한다. 미국은 관계정상화를 추진한다. 북한이 원자로를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발전용이라 하는데, 그렇게 고집하니 그 대신에 미국이 경수로를 지어주겠다. 그리고 1년에 얼마씩 원유를 제공해 주겠다는 합의. 미국 내에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8년 동안 지켜왔다.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걸 대단히 좋지 않게 생각하는 미국의 군산복합체, 네오콘, 공화당 강경파들이 북한에 대한 경수로 지원 등을 계속 방해해 오다가, 정권교체로 부시대통령 정권에서 ABC(anyting but Cliton: 뭘 해도 되지만 클린턴이 했던 건 안 된다)정책이 시작됐다. 이게 부시 독트린, 악의 축 개념이다. 북한에게는 군사적 선제 공격으로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를 깼다. 북한도, 본격적으로 핵개발에 나서겠다면 3번에 걸쳐 핵실험했다. 이제는 어느 수준? 핵개발의 단계는 원자로 만들어 핵 물질을 생산하는 단계, 그리고 그걸 재처리해서 핵물질로 만드는 단계, 3단계는 그걸로 원자폭탄 만들어 실험해 보는 거다. 파키스탄과 인도도 8번 정도 실험했다. 원자폭탄을 경량화, 간편화해야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거니까. 북한은 아직 핵무기가 없고, 원자폭탄 만드는 단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명박 정부에서 마치 우리가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해 왔다는 점이다. 핵문제는 북한과 미국간의 문제다. 북한 핵개발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건 맞지만, 우리가 주도해서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지금 중단해야 한다. 북한이 핵개발 하는 이유를 전문가 진단으로는, 1.핵개발이 미국과의 협상 카드. 그러나 클린턴 때 외에는 먹힌 적이 없다. 2.외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전쟁억지력. 그러나 북한에게 오히려 위협만 될 뿐이다. 북한도 알고 있다. 단, 조건이 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과, 남한의 위협이 없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유시민: 대북전문가가 아니라면, 두 분의 얘기를 듣다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 시설에 먼저 군사 공격해야 한다 할 때, 노무현과 부시 간에 분위기 험악한 전화통화가 오갔다. 제가 청와대에 갔을 때 노 대통령이 화내는 걸 봤다. "내가 한국 대통령인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문젠데, 그 틈바구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미국이나 북한이나 누구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당장 남한의 평화가 위협되는데 대통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분노.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보통사람 생각으론, 미국이 왜 이러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찍은 것도 풀어주고 한반도 전체에 핵 없애자 하면 다 포기하겠다는데 왜 미국이 안 들어주지, 이런 의문이 있다. 주변국가의 외교문제라 표현하는데, 핵심은 북미관계. 우리가 듣기에는 종북발언이라 할 수 있지만, 북한 주장이 합리적일 때도 있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내놓고 함께 털고 핵 없애고 북한은 자기 나라 문제 해결하며 모든 걸 일망타진하자는데 왜 미국은 이 주장을 안 들어주지? 왜 그럴까? 미국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달라.

이재정: 저는 미국입장 이해된다. 클린턴 이후 부시가 떨어지고 민주당 후보였던 고어가 당선됐다면 한반도 문제가 달라졌을 것. 98년 임 전 장관이 평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제대론 된 구조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는 김대중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해라, 김 대통령이 운전석에 앉으면 난 조수석에 타겠다."라고 했다. 94년 북미간 제네바 합의 내용을 보면, 합의 후, 3개월 내에 미국, 북한 양측은 무역 및 투자 제한을 완화시켜 나가고,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만들기로 한다. 그 이후 북한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화 조치를 일관성 있게 취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에 대한 공식적으로 약속한다. 잘 된 합의. 그러나 정권교체로 물거품. 94년 합의되자마자 미국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해서 여건이 안 좋아졌다. 그러나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런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하는데, 선거를 망했다. 많은 분들이 반문한다. 오바마가 오지 않았느냐? 그러나 부시보다 더 지독한 이명박이 왔다. (박수) 어떻게 이렇게 올 수 있나. 부시의 정책이  ABC(뭘 해도 되지만 클린턴은 안 된다)였다면, 이명박은 ABR(뭘 해도 되지만 노무현은 안 된다) 정책을 폈다. 이명박은 노무현 정상회담 내용까지 왜곡, 날조해서, 노무현을 반역자로 몰아갔다. 세상에 이런 정치가 어딨나? 결국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잘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합의도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다. 임 장관은 90년대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 성공할 때까지 노력하셨고, 노무현 정상회담 때도 좋은 역할을 해주셨다. 제2차 정상회담은 정말 훌륭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68년 전 오늘이 미국 맥아더 장군이 38선을 그어 남북분단을 제안한 날이다. 저는 오면서 생각해보니, 8.11. 미국이 제안했던 38선 분단의 역사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국민적 공감대를 못 불러온 이유도 있지만, 선거 결과가 그 원인이다. 지금도 개성공단이 닫혀 수많은 사람들의 비탄을 보면 안타깝다.

유시민: 클린턴 정권에서는 북미관계 좋았지만, 부시 정권부터 꼬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5년이 됐다. 북미관계 진전이 없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미국 국민들이 아무리 선거 잘 해 봤자 남북관계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

임동원: 지난 20년 국제 냉전이 끝난 이후,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끝내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 그러나 남한이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이 그 노력을 함께 안 한다면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그게 20년의 경험. 미국은 최근 왔다갔다 했다. 클린턴은 우리가 존경해야 할 위대한 대통령. 나는 직접 겪어 봤기 때문에 클린턴 정부가 했던 노력을 확실히 알고 있다. 부시 같은 대통령은 뒤집어짐. 오바마 대통령은 공약을 봤을 때 기대가 많았는데, 당선 이후 외교정책이 다 날아가고 실무 사무관급의 외교를 하고 있다. 동북아 정책, 대북정책에서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물론, 부시가 벌린 중동사태 설거지 하느라 정신 없다 해도, 이건 너무하다. 이런 모든 경험을 통해 볼 때, 어느 때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나설 것인가?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을 때 가능했다. 우리가 외세 맹종할 때 우리가 평화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 때도 남북관계 좋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채지 않는 한 미국이 나서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관계 공약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보고 기대를 걸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진보 정권보다 남북관계 화끈하게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도 했다. 이번에 워싱턴 갔을 때,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확답을 받아왔어야 한다. 박근혜에게 기대한 제가 바보였다. 미국 왜 이럴까? 그게 우리의 의문이다. 지난 20년간 평화 프로세스가 잘 안 된 이유 3가지. 1. 미국의 동북아 전략. 2.북한의 경직성. 3. 한국 대북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 결여.
1. 미국의 동북아 전략. 냉전 이후, 미국은 중국이 부상하는 데 대해 잠재적 위험을 느끼고 중국을 봉쇄해야 겠다는 장기적 결정. 행정부에 따라 차이는 있었다. 클린턴 때는 중국을 길들일 수 있다는 정책이었지만, 부시는 중국은 믿을 수 없다며 중국 견제를 위해 한반도 갈등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한반도 냉전 유지가 미국의 동북아 정책 유지에 도움이 된다. 오바마 정부 들어와서도 군산복합체에 시달려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다. 2.은 다들 아실 듯.
3. 한국 대북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 결여. 참 문제다. 여러 정권의 대북정책을 보면,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3 정권과, YS, 이명박의 2 정권은 정반대의 정책을 폈다. 우선,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는 대북 시각이 달랐다. 북한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점점 변해갈 수 있다는 점진적 변화론과 북한이 곧 망한다는 북한 붕괴론의 차이였다. 두번째로, 어느 시각에 서냐에 따라 통일정책도 달랐다. 두 흐름은 점진적 단계적 통일과 흡수통일이란 전혀 다른 정책을 폈다. 세번째는, 북한과 화해협력을 하는 방법론의 차이였다. 핵문제가 계속 이슈였는데, 남북관계 발전시키며 핵문제 병행해서 해결하자는 병행 전략과, 압박과 제재를 가해 북한의 핵을 먼저 폐기시켜야 한다는 연계 전략으로 큰 차이를 부였다. 이처럼 2가지 조류가 늘 대치한다.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그럴듯하게 얘기한 것 같은데, 아직 아리송하다. 8.15 기념사 듣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유시민: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지금 뭐하는지 모르겠다. 2007년 대통령 선거가 진행될 때, 이명박 후보가 비즈니스맨이기 때문에 10.4.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에 대한 내용들이 중점적으로 합의됐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토목도 했던 분이고 북한하고 장사를 화끈하게 잘 할 거란 기대가 있었다. 특히, 이념적 의심을 안 받기 때문에 북한과 잘할지 모른다는 칼럼도 봤다. 이명박은 이념형 보수가 아니라, 시장형 보수라며, 꼴통이 아니라 유연하고 돈 되는 건 한다는 전망이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대북관에 대해 임 전 장관은 아직 정권 초기니까 지켜봐야 한다 했는데,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다. 그냥 북은 고립시키고 봉쇄해서 무너뜨리거나 길들여서 나긋나긋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다.

이재정: 저는 100% 동감한다. 우리 속담에 밖에서 새는 바가지 안에서 안 새냐라는 속담이 있다. 제가 조금 돌아가서, 왜 오바마 정부에서도 계속 안 바뀌냐? 당선자 시절, 미국 하원의 중진 의원이 한국 방문했다. 제가 물었다. 오바마 취임하면 부시 때와 달리 남북관계는 달라지나? 한마디로 대답. "꿈 깨라! 절대 그럴 일 없다." 나는 의심했다. 아니 그럴 수가 있나?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운동하며 "지난 50년간 뭐 했냐? 한반도 종전한다"라고 약속하지 않았냐? 그러자 그 의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선거 때 하는 얘기다. 미국 대중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가 중요하다. 북한은 매우 후순위. 그래서 아마도 오바마 대통령이 상당한 기간동안 한반도 문제를 손 못댈 거다. 한반도 문제는 미국 대중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입장이다. 한국 정부 입장이 제일 중요하다." 설마설마 했는데, 미국을 바꾸자는 희망으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변화가 없는 거 보면 역시 미국은 일관성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믿을 곳이 없구나. 우리가 뭔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요즘 개성공단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개성공단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7.7. 선언(편집자주: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자주•평화•민주•복지의 원칙에 입각하여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천명하는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예상 외로 이 선언을 북한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이후 남북 UN 동시가입, 91년 남북공동합의서 발표로 이어졌다.)에서,  북한을 선의의 동반자로 받아들이자는 선언을 하면서 국민의 인식이 바꼈다. 미국과 북한의 외교관계 시작을 돕기 위해 나서자는 좋은 내용도 많이 다뤘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때 좋은 합의가 더 많았지만, 왜 우리의 이런 노력들은 국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을가?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하지 않았나? 언론과의 안 좋은 관계도 있었지만, 우리가 정치적으로 무능력했던 게 아닌가. 개성공단의 효과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문제는 진짜 아쉽다. 서울을 30분 내에 격파할 수 있는 포격부대를 뒤로 물리고, 공단을 만든다는 건 지금 봐도 대단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했다고 온국민한테 욕 먹었는데, 북한은 땅 2백만평을 내놨다! 자기들 피로 빼앗은 개성을 우리에게 내놨다는 것은 군사기지가 상업지대, 평화지대가 된다는 건데, 왜 우리 국민들은 개성공단의 가치를 모르는 것 아닐까? 우리가 국민 설득을 못한 것 아닌가?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한 게 우리의 부족함이다. 오늘날 개성공단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도 아쉽다. 실무회담에 책임을 미루는데 청와대가 무슨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거 아닌가?
결론은, 결국 국민의 대북관을 바꾸는 과정이 중요하다. 노태우 대통령이든, 뭐가 됐든 평화를 위해서라면 끄집어 낼 것 다 끄집어 내서라도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유시민: 이재정 장관 얘기 듣다 보면, 북한이 완전 경직된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북한은 육지에서 군 전력의 중심을 뒤로 30km밖으로 뺐다. 우리 군대 배치선이 여의도 이남으로 물러나는 것과 같다. 북한이 군사적 공백상태를 감수하고 내준 것임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을 지지하는 국민만큼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의 항구적인 폐쇄 주장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많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통일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은 많지만, 북한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 아닐까? 북한은 우리에 대해 심하게 말한다. 기분이 안 좋은 국민이 많다. 국민들은 개성공단을 지지하면서도 북한에 대해 반감을 줄일 수 없다. 북이 좀더 유연해지길 바랄 수 없을까? 북한의 경직성, 남북관계에서 어느 정도 걸림돌이었고 앞으로 어느 정도 개선 가능성이 있을지?

이재정: 저는 대북전문가가 아니다. 20년간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민간차원에서 일했다. 민주평통 수석부회장 하고 장관이 됐다. 임장관은 오랜 동안 전문가. 그동안 3가지 변화가 있다. 1. 금강산은 10년 동안 관광을 해오면서 매년 변화되는 모습을 봤다. 처음에 북한은 너무 경직된 모습을 보여줬다. 배에서 금강산 배경으로 사진 찍었다간 난리났다. 이젠 어디서 찍어도 오케이. 이런 변화도 경직성의 변화다. 2. 최룡해 인민 총 정치국장이 지난 5월에 중국에 가서 시진핑 주석을 만난 후, 앞으로 한반도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가겠다 말한 건, 군부의 입장 표명이라 생각한다. 북한의 입장이 지금은 상당히 바뀐 게 아니겠는가? 3. 북한이, 개성공단 문제 해결하기 위해, 중간에 갈등이 많았음에도, 끝까지 대화에 나서고 회담에 좋은 조건을 내거는 걸 보면 북한이 변화한 것 아닌가? 7.27.은 북한 입장에서 전승일인데, 그 기념행사에 많은 외신을 초대했다. 북으로선 이미 핵 문제는 지나갔다고 판단하는듯.
현재, 북한은 유연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기대한다. 앞으로도 북한은 남북대화를 통해 북미대화로 나아가려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임동원: 북한의 경직성은 지난 20년 동안을 통틀어 얘기해야 한다. 3대 세습, 주체사상, 수령에 대한 맹종, 집단주의 체제, 감시와 공포 정치 등 북한 정치의 특성이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는다. 핵심은, 체제 변화가 어렵다는 거다. 변하긴 변하겠지만, 최근에 특히, 북한이 점차 문을 열고 있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2013년 초, 북한에 6년간 있으며 북한에 인도적 지원사업을 총괄하던 스위스 단체 간부를 만났더니, 북한의 변화를 5m이라며 흥미롭게 소개했다. 1. 마켓. 시장경제가 커졌다. 2. 머니. 사람들이 돈맛을 알게 돼 미치게 됐다. 특히, 외화를 좋아한다. 3. 모터. 자동차가 엄청 늘어났다. 6년 전엔, 평양거리가 텅텅 비었는데 이제는 매연 문제가 생겼다. 4. 모바일. 핸드폰이 엄청 배급돼서 150만대. 계속 늘어난다. 정보유통과 관련된다. 북한 사회 변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5. 마인드세트. 생각하는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기도 잘 살고 싶고, 외국에 나가보고 싶다.  이런 것들이 증대해 나가도록 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자꾸 북한하고 교류 협력해서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 변하게 하자. 독일이 어떻게 통일 했냐? 서독의 동방정책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민족 공동체의 핵심 포인트. 좋은 관계 계속 유지해 오는 가운데, 동독 사람들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민심, 마음을 얻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무혈 시민 혁명을 일으켰다. 전체주의 정권 무너뜨리고 민주정부 세워 합의에 의한 통일을 했다. 흡수통일이 아니라 합의통일이다. 마음을 얻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느냐?

유시민:오늘 대화에서 핵문제, 북미관계를 많이 다뤘다. 북한의 경직성, 사회의 내부변화, 남한의 대북정책의 영향에 대한 얘기도 했다. 북한처럼 사회주의, 전체주의 국가는 밖에 말하는 것과 실제 나라 상황은 다른 경우가 많다. 험악하게 얘기해도 뒤로는 부드럽다. 이번에도 최후의 담판 애기해 놓고, 속으로는 부드럽게 회담 합의. 북한은 경제도 발전시키고 핵도 개발하겠다는 공식 입장이다. 다른 한편, 변화가 일어난다는 관측도 있다. 저도 판단을 못하겠다. 김정은 위원장이 외신 인터뷰 하고, 근접 취재를 허용하는 모습도 있고, 김정은 아내의 공개적인 행보도 새롭다. 그런데 비올 때 김정은 혼자만 우산 쓰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비 맞고 있는 사진을 보면 변한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 30만명의 군인을 군대에서 내 보내 경제 건설에 투입한다는 보도도 있다. 서로 엇갈려 보이는 모습들. 북한의 3대 세습이 완료됐다 보고, 김정은 체제에서 좀더 우리가 큰 변화로 볼 수 있는 조짐이 없을까?

임동원: 표면적인 현상들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김정은 체제 들어와 내가 관심 갖고 보는 건, 군부를 어떻게 장악하느냐는 것. 확실히 군부 장악에 성공한 게 아닌가? 북한군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정치총국장이다. 실권자. 북한의 넘버2라 평가되는 위친데, 군인이 아닌 민간인 최룡해를 데려다 놨다.

이재정: 노무현 대통령 갔을 때 황해북도 당서기로 최룡해가 마중 나옸다.

임동원: 최룡해는 김일성과 항일운동 같이한 최현의 손자. 핏줄이 좋다. (웃음) 쿠데타로 반발이 있을 수 있을텐데, 참모총장도 확확 갈아버리는 김정은이다. 인사개혁이 효과가 컸다. 이제 어느정도 안정이 된 것 같다. 현재 북한을 움직이는 건 누군가? 김정은은 31살.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해 보인다. 스위스에 유학가 5년간 중고등학교 과정 다님. 외국어도 하고, 외국물도 먹고, 세상을 잘 알지 않겠나? 돌아와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군에 대한 경험을 하고, 아버지 밑에서 후계자 수업 받았다. 김정은은 매우 어리지만, 김일성도 30대 초반에 북한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김정은이 맘대로 못한다. 이너서클. 장성택이라던가. 개방 지향적인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정책을 짜면, 김정은은 주연배우로서 연기한다. 뒤에서 하는 사람의 성향으로 봐서 어떻게든지 경제 건설, 중국식 시장경제에 따를 것 같다. 물론, 그에 맞서는 강경파도 있다. 전향적인 결과를 보고 싶다.

이재정: 저는 이제 정권 밖에 있어 정보가 없어, 유추만 가능하다. 북한 군을 볼 때, 우리 군대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안 된다. 최룡해란 민간인이 어느날 별 4개 달고 군을 총 장악한다? 유시민이 군 참모총장이 된다는 상상이 되나? 실제로 저는 북한이 갖고 있는 군과 민, 민과 군에 큰 차이를 두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
북한의 경제개발은 김정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91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무너질 때, 북한 경제가 폭삭 망했다가, 94년 김일성 죽고, 그 이후 자연재난으로 경제 무너졌다가, 2000년 들어 조금씩 회복기다. 2009년부터는 10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세웠다.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정상회담 이후 한국을 방문한 것은 북한의 경제개발에 참고하기 위한 목적이다. 어마어마한 개발 계획을 세워 1000억 달러 이상의 외자를 도입해 개발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민간 차원에 있는 사람들이 일선에 나선다는 게 긍정적이다. 유연성에 있어 북한의 변화를 기대한다.

유시민: 정의당은 의석이 너무 적어 영향력이 적고, 민주당은 의석이 많아도 어렵다. 그러나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면 의석이 적어도 할 수 있는 게 많을 텐데, 소통이 안 된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남북관계에 대해 대화와 토론이 없는 지금 이 상황, 박근혜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말만 앞선다. 혹시, 혁신적인 남북관계 개선방법은 없을까? 우린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임동원: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과거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안 된다. 햇볕정책 버전2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햇볕정책에 대해 명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든지 탈냉전 시대에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많았다. 첫째가 노태우 정권의 남북기본합의서다. 남북기본합의서가 실천 안 되던 상황에서 실천으로 옮기자 했던 게 김대중 햇볕 정책이고, 그 결과가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 위 3가지 합의와 선언들이 남북이 이뤄낸 위대한 3대 합의서다. 각기 다른 게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는 합의서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하다. 모든 것의 핵심이다. 현재, 남북이 UN에 각각 가입해서, 대외적으로는 주권국가다.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남북사이의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라고 써 있다. 남북 사이에선 서로 주권국가가 아니라 특수관계다. 이 합의서의 내용은 6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 남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이 내용은 우리가 주장한 내용인데, 상대방을 비방중상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뒤따른다. 2. 전쟁까지 치러 서로 원수가 됐는데 화해하자. 지금까지 인정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는 데서 화해하자. 3. 종교, 문화 등등 여러 방면에 걸쳐 교류하고 협력하자. 4. 불가침. 전쟁하지 말자. 5. 불가침을 담보하기 위해 군축하자. 6. 정전체제를 남북사이의 평화체제로 전환해 나가자.
이것이 지금에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체제를 인정 안 하고 붕괴하겠다고 했으니 남북관계가 개선되겠나? 어림도 없다. 노태우는 위와 같은 합의서를 채택했지만, 김영삼 정부 들어와 이행이 되지 않고 사문화 됐다. 김대중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미 남북관계를 위한 최선책은 나왔다, 남북기본합의서를 그대로 준수하면 된다"며 햇볕정책을 주장했다. 남북한의 최대 문제는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 신뢰한다고 맹세해서 신뢰가 생기진 않는다. 경제적인 일을 함께 해 보자. 신뢰를 다져나가는 데 교류 협력 실천을 통해 하는 것이지 실천 없이 어떻게 신뢰가 만들어지나?
김대중대통령은 신뢰를 다지기 위해 5가지 사업을 먼저 해 보자 제안했다. 1. 길을 내자. 사람, 물자 오가려면 길이 있어야 한다. 철도, 항로 등등. 2.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범사업으로 개성공단을 해 보자. 남북간 교류에서 제일 중요한 건 경제협력이다. 3. 금강산 관광사업을 뱃길이 아니라 육지로도 해 보자. 평양도 관광할 수 있게 하자. 4. 이산가족 만나게 하자. 5. 여러 왕래를 시작해 보자. 남북한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만들어보자. 이 5가지 사업을 40가지 사업으로 확대해 보자는 게 10.4. 선언 내용이다.
남북관계는 그 무엇보다 위 3개 합의를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이재정: 사실 10.4. 정상선언에서 가장 가슴이 뛰던 순간이, 백두산 관광얘기가 나왔을 때다. 북한 영공을 우리 비행기가 매일 떠서 지나간다? 상상도 어렵다. 북경 올림픽에 남북한 응원단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기차 타고 출발한다? 김정일이 직접 지시까지 내린 사항이다. 한 번 가기가 힘들지 한 번 가기 시작하면 쉬워진다. 10.4. 정상선언 말미에,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는 내용이 있다.
3월에 있었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후폭풍이 컸다. 외국인들은 늘 전화해서 서울 전쟁 나는 거 아니냐는 위기가 있었다. B2라는 핵폭탄을 투하하는 비행기가 한반도 영공을 지나갔다.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대안이 뭘까? 훈련은 안 할 순 없겠지만 대안을 찾아보자. 남북간 합의사항에 대해서도, 정부만 바라볼 게 아니라, 국민운동을 벌여 전국민이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해 보자. 좋은 분위기다. 국정원을 규탄하는 대회가 열렸는데, 이 분위기를 더 확대시켜 보자.

임동원: 대만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교훈을 얻자. 지난 3월에 대만에 다녀왔다. 중국, 대만의 관계가 최근 5년 동안 통일된 것만큼이나 엄청나게 발전했다. 사실상 통일! 서로 오고가며 돕고 나누면서 아무 불편 없이 사는 것. 5년 전 마잉주 총통이 집권하면서, 서로 다른 차이점은 제쳐놓고 공동 이익을 추구하자며 선민후관(민간인들이 앞장서고 정부는 뒤에 따른다), 선경후정(경제를 우선하는 실용주의 정책)을 주장했다. 지난 5년간 성과가 대단하다. 5년 전, 중국과 대만은 서로 편하게 오가기 위해 처음으로 정기 항공노선을 개설했다. 일주일에 비행기 30편을 띄웠는데 올해 20배가 늘어나 616편이 됐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오간다. 작년에 중국과 대만을 오간 통계가 756만명이다. 바다를 통한 무역량도 엄청 늘었다. 현재, 중국에 있는 대만 중소기업은 8만개고, 중국에 대만인 200만명이 살고 있다. 중국인과 대만인이 서로 결혼한 숫자가 2만 쌍이다. 우리가 이런 거 해보려고 햇볕정책했는데, 우리 노하우를 다 뺏긴 것 같아 화나고 부럽다. 과거,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 정부가 13년 동안 전쟁하며 수백만 명이 죽었다. 그 이후에도 군사적 대결관계가 지속됐다. 대만과 중국은 그걸 다 극복하고 경제공동체를 형성해서 통일은 안 됐지만 사실상의 통일을 이뤄냈다. 우리의 롤모델이다. 개성공단 반드시 살려야 한다.

유시민:노태우랑 전두환이 친구인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점도 있다. 노태우 정권에서 많은 비리가 있었지만,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정말 잘 된 거였구나!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는, 당이 다르더라도 국가를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했던 건데, 그게 부족해서 실패했다. 햇볕정책이 노태우 정권의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일 뿐이란 말은 충격이었다. 앞으로 정의당에서 플래카드 걸 때,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이 약속했던 햇볕정책을 새누리당은 이행하라 주장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을듯 하다. 하도 답답하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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