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만 응급, 주말이나 명절엔 절대 아프면 안 되는 나라

장기기증 통해 여섯에게 새 삶 선물한 고(故)김기석 군을 통해 본 응급실의 안전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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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호식(muisca95)등록 2013.09.12 17:50
쌀쌀한 바람이 코끝을 매섭게 내려치던 2011년 12월 5일, 건강한 16세 소년의 심장과 간, 폐, 췌장 그리고 2개의 신장이 말기 질환 환자 6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그 어느 겨울보다 뜨겁고 소중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하고 떠난 기석이. 182cm의 훤칠한 키에 유난히 미소가 밝았던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아빠와 포옹을 할 만큼 살갑고 애교 많던 기석이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기석이는 10km단축마라톤에 참가할 정도로 건강한 아이였다. ⓒ 엄호식


응급상황에도 환자는 병원사정에 따라야 한다?
기석이가 상계백병원 응급실을 찾은 것은 2011년 12월 2일이었다. 학원에 가던 기석이는 심한 두통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빠는 인근에서 가장 큰 상계백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기석이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17시 50분경, 이내 따라온 아빠에게 별다른 이상 없이 자신의 증세를 이야기하던 기석이는 갑자기 구토 후 정신을 잃었다.

의료진은 급하게 기도삽관 등 응급처치 후 18시 23분 CT촬영과 윌리스환 두부CT촬영을 진행했다. 병명은 뇌동맥류 파열에 따른 뇌출혈, 의료진은 수술팀에서 내려와 색전수술을 진행할지 개두수술을 진행할지 논의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아들의 일이기에 다급한 마음을 추스르고자 중앙대학교병원의 신경외과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 역시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할 것이고 그에 잘 따르라고 했다. 하지만 20시 10분경 경대퇴 동맥 혈관 촬영술 실시 후 코일색전술을 실시할 것이라던 의료진은 수술이 지금 당장이 아니라 3일 후에나 진행할 수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3일 후 수술이 가능한 이유는 병원의 시스템과 협진의 문제라고만 했다. 가족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인데 단순히 병원의 시스템과 협진의 문제로 3차 의료기관인 상계백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족은 다시 중앙대학교병원의 지인에게 전화해 상계백병원에서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잠시 후 중앙대학교병원에서는 다음날 오후 1시에 수술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전했고 전원이 가능한 상태인지 모르는 가족은 담당의와 지인을 통화케 해 전원을 결정했다. 가족들은 의료진을 믿었기에 그리고 의료진끼리 통화 후 전원이 가능하다고 전해 들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중앙대학교병원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앰블런스는 한눈에 봐도 너무 낡고 오래돼 보였다. 앞에는 운전사와 아버지가 뒤에는 기석
이와 레지던트 한 명이 탑승했다. 중앙대학교병원까지 걸린 거리는 35km, 시간은 채 30분이 안됐다.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속도를 낸 앰블런스는 심하게 요동쳤고 아버지는 운전사에게 덜컹거리지 않게 조금 천천히 가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윽고 중앙대학교병원에 도착했지만 기석이는 한눈에도 상계백병원에서의 상태보다 훨씬 안 좋아 보였고 의료진은 정확한 상태파악을 위해 다시 CT촬영을 진행, 23시 30분경 바로 의료진을 호출에 응급수술에 들어가 천두술(특수한 추를 사용하여 두 개에 작은 구멍을 뚫는 조작으로 신경외과수술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 두 개 및 두 개내 병변의 진단과 치료에 행하여지는 일이 많다. 출처 간호학대사전)을 시행했다.

3일 오전 10시, 1시 수술이면 이것저것 서류에 사인할 것이 많은데 아무런 조치가 없자 중환자실의 벨을 눌렀다. 그리고 밤새 상태가 너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특히 동공이 8mm가 열리면 뇌사로 판정되는데 기석이는 벌써 7mm가 열린 것. 아버지는 수술만 잘되면 동공이 돌아오는 줄 알았지만 의료진은 수술을 해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전했고 이것은 기석이가 더 이상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그 순간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렸다. 초등학생 때도 엄마가 암에 걸린 친구가 삐뚤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집에 데려와 같이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던, 엄마의 직장 일을 돕기 위해 전단지 알바도 마다 않던 천사 같은 아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을 모아 장기기증을 통해 기석이의 삶이 이어지도록 결정을 했고 아픈 기석이는 다시 한 번 앰블런스를 타고 서울성모병원으로 전원해 심장과 간, 폐, 췌장과 두 개의 신장으로 새로운 이들에게 건강한 삶을 되찾게 했다.

하지만 기석이의 죽음에는 몇 가지 물음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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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기석군의 아버지 김태현씨가 기석군의 마지막 18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엄호식


첫째. 과연 서울 동북부지역과 의정부 주변지역의 유일한 3차 의료기관에서 응급수술을 진행할 수 없었던 시스템과 협진의 문제는 무엇이었으며 3일 후 수술이 진행 될 것이라면 그간에 어떠한 조치가 진행이 되고 그로 인해 3일 후 수술이 진행되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의료진은 왜 설명하지 않았을까?

둘째.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에 상계백병원에서 수술이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의료진은 응급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왜 알아보지 않았을까?

셋째. 절대안정이 필요했던 기석이가 과연 전원이 가능한 상태였으며 왜 가족에게 기석이가 절대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등의 물음이다.

의료진 누구라도 절대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며 현재 기석이의 상태가 이러해서 이러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그 상태라면 3일 후 수술을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면 과연 가족들은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이러한 응급상황의 사례는 기석군 만의 일은 아니다.

갈 곳 잃은 응급환자, 의료진은 타박만...
대구에 사는 강구화 씨는 2011년 1월 1일 심한 두통과 구토를 일으켜 급하게 인근 보훈병원으로 옮겨졌고 CT촬영 결과 뇌출혈을 진단 받았지만 휴일이라는 이유로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전원을 위해 응급의학과장이 대구응급의료정보센터 1339에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할 병원을 찾지 못했고 결국 응급의학과장의 지인을 통해 경북대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경북대 병원에서는 전산에 문제가 있으니 다른 병원으로 갈 것을 요구 했고, 결국 사방팔방 수소문을 한 끝에 급하게 굿모닝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 후 자료가 없다며 CT촬영을 한 의료진은 단순한 뇌출혈이 아니라 뇌동정맥기형성이라며 굿모닝병원에서는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다시 영남대 병원으로 옮겨져 가까스로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고 있다.

강구화씨의 딸 이지혜 씨는 "응급환자를 그냥 침대에 눕혀놓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자신들은 수술할 수 없다는 단 한마디 말로 이리저리 택배 보내듯 짐짝 취급하며 전원 시킨 것과 전원 시 이동할 병원의 앰블런스를 기다려 탑승 후 전원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눈물로 당시를 회상했다.

“저희 어머니는 ‘메디시티’라는 대구에서 택배물건처럼 병원 4곳을 돌고 돌아 겨우 수술을 받으실 수 있었어요” ⓒ 엄호식


특히 경북대 전원 중 전산상의 문제가 있어 수술을 못한다고 연락을 받았지만 너무 늦게 연락을 받아 이미 병원에 도착한 환자와 가족에게 "수술할 수 없다고 했는데 왜 왔느냐"며 타박하던 의사의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응급실 이용자 37.5% 최초 진료자 누군지 몰라
정부는 응급의료법 제정(1994)을 비롯하여 지역별 응급의료기관지정 및 응급의료체계 정비 등 응급의료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으며 특히 2012년 8월 5일부터는 야간과 휴일에 응급환자를 당직전문의가 직접 진료하도록 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을 개정·시행하고 있다.

응급실 이용자 37.5% 최초 진료의료진 누군지 몰라. ⓒ 엄호식


첫 전문의 진료까지의 소요시간, 가장 빠른 것은 32분 걸린 타과 전문의. ⓒ 엄호식


하지만 소비자보호원이 2012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 도착 후 최초로 진료한 의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모르겠다'라는 응답이 375(37.5%)로 가장 많았으며 최초 의사의 진료까지 대기시간은 10분 이내가 28.2%로 가장 높았으나 90분 이상도 7.1%에 달했다.

응급실 이용 만족도에 대해서는 보통이 56.9%(569명)로 가장 높았으나 불만족하다는 응답자가 23.3%(233명), 만족하다는 응답자가 19.8%(198명)로 나타났으며 마지막으로 응급실 이용 시 전문의가 진료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타과 전문의가 32분 응급의학 전문의가 40분으로 타과 전문의가 진료할 때가 가장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의료의 혁신은 가능한가?
지난 9월 6일 보건복지부 현수엽 응급의료과장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응급의료전담체계의 새로운 도전 심포지엄'에서 최상위 의료기관에서 전원업무를 조정했던 1339의 역할을 대신해 '24시간 전원조정 코디네이터' 시범사업 운영계획을 밝혔다.

정부는 1339와 통합되면서 인력과 장비가 이관된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 병원 간 전원을 직접 조정할 수 있도록 소방방재청과 협의하고,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할 수 있도록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조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개정 전이라도 응급실에서 전원 요청 시 전원 가능한 병원을 직접 조회할 수 있도록 119에 '응급의료상황판 관리자 자격'을 제공해 당직전문의의 연락처를 열람할 수 있는 '핫라인'도 개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홍정익 사무관은 "'24시간 전원조정 코디네이터'는 병원 간 진행되던 응급환자의 전원을 통합해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전원이 가능한 병원을 끝까지 찾아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지역 내 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향후 지역 내 전원이 불가할 경우 타 지역으로의 전원까지 서비스가 가능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응급실 폭행과도 관련해 응급실 내에서의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 응급실 대기시간 개선 등 현장에서 실현가능한 내용에 맞추어 응급실 폭력가이드라인을 마련, 공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원이 필요한 경우, 최상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생각과 응급실 폭력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응급실에서의 서비스 개선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좋지만 여전히 위급한 고비를 넘겨야 하는 환자도 병원의 사정에 따라 치료받아야하는 현실에서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는 환자들에게 의료현장에서 실현가능한 내용이라는 기준이 얼마만큼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응급(應急)은 '급한 대로 우선 처리함, 급한 정황에 대처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응급치료라는 것은 '갑작스러운 병이나 상처의 위급한 고비를 넘기기 위해 임시로 하는 치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환자가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이다. 환자가 현재 어떠한 상태이며 어떠한 치료를 받게 되고 가족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하는지 그것이 의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환자와 환자가족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길 바라는 것. 그로 인해 보다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져 예전과 같은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환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상임대표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 환자와 보호자는 모든 것이 답답하고 궁금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어 그 어느 때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며 그러한 상황일수록 환자와 보호자가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보다 명확하고 알기 쉽게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응급실에서의 환자&보호자 설명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24시간 전원조정 코디네이터 시범사업'과 '4대 중증질환에 대한 지원' 등 다양한 의료복지정책을 내놓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우선순위가 아닐 수 없지만 '응급'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대한민국 국민이 응급한 치료를 받아야할 때 마음 놓고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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