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선택은 잘못일까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검토 완료

손준영(scv2744)등록 2013.09.29 09:50
내게는 누구에게나 한 번쯤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누군가에게는 한심함을,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움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고 한 번쯤은 모두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였기에 용기를 내서 적는다.

최근 내가 들었던 가장 공감가는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결정 장애'였다.

요즘 이 말이 점심 메뉴를 걱정하는 직장인과 진로고민에 빠진 대학생들 사이에 많이 퍼져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말로 '결정'이라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진로나 인생에서의 선택뿐만이 아니라 동기와 밥을 먹을 때, 심지어는 치킨 메뉴 하나를 고를 때도

이 '결정 장애'는 나에게 선택에서의 울렁증을 느끼게 한다.

나는 08년 수능이 끝나기도 전부터 이 결정 장애로 인한 문제를 겪어야 했다.

'아 어느 대학을 쓰지?' '난 뭘하고 싶을까?' '수능에 올인을 할까? 아님 수시를 써봐?'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던 나는 결국 선택을 1년 유예하자는 의미에서

각 대학의 자유전공학부에 수시 원서를 마구마구 접수하기에 이른다.

(결과론적으로는 한 군데는 건졌지만 다른 대학의 운영에 있어 본인이 이바지한 바가 큰 것 같다.)

다행히도 수시에서 합격하여 정시 원서 접수라는 또 다른 선택에 기로에 놓이지는 않았지만

09년 6월부터, 선택의 부작용이라는 후회에 직면하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다. 24살에 이제야 막 국방의 의무를 마친 이 남자사람 대학생은

아직도 자신의 진로에 대한 확신과 집중이 없다.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아니다. 이것을 해도 좋고 저것을 해도 좋아서 문제인 상황이다.

물론 비단 이것이 글쓴이 본인만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남자사람 대학생은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커피를 사랑하는 남자는 언젠가 한 번쯤은 본인이 운영하는 까페를 가져보고 싶다.

운동에 미치는 이 남자는 유명한 모 캐스터와 해설위원처럼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어보고 싶기도 하다.

명예를 중시하는 모습도 있어서 전공을 살려 공무원이 되는 것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노래를 좋아하는(절대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꿈을 살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다.

공익 복무를 하는 동안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시던 은사님을 만나 볼 기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런 고민을 하던 나를 아껴주셨던 은사님은 나에게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할 시기라고 말씀해주셨다.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했지만, 과연 내가 지금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현재까지도 '나는 아직 구체적인 장래는 잘 모르겠어'라는 말을 듣는 주변인들은

다들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거나 혹은 한심하게 생각한다. 아니면 그런 내색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그런 느낌.

나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이러한 눈초리와 주변의 반응 덕에

자신이 아직 '미정'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그렇다. 어쩌면 진심어린 충고대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선택에 대한 시기를 늦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남들이 오해하리만큼 선택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반성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선택에서 오는 부작용은 두렵기도 하지만 막고 싶기도 하다.

요즘 서점이나 도서 매대들을 휩쓸고 있는 사회-심리 도서들은 선택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 내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에 부끄럽지 않다.

누군가는 여기까지 읽고 혀를 끌끌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모르는 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편하게 사는 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보지 못한 세상들이 너무나 많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많은 것을 배워보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바로 그 책.

김난도 선생님의 그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이 더 확실하게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나보다 어린 친구들, 나와 또래인 친구들이 자신의 확실한 길을 정해서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멋있고 긍정적인 것인지 알고 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걸어가는 한 걸음 걸음처럼 설레이고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에 휩쓸려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섣부른 결정은 내리고 싶지 않다.

선택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되서야 '아 그 때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라는 후회를 하고 싶지도 않고

그제서야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상황에서 선택에 의해 마음 졸이고 있을 친구나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말하는 주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아마 이것이지 않을까.

남보다 늦게 결정한 다는 것이 결코 틀리다는 건 아니다.

그 결정에는 시한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군가 재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빨리 결정한다고 해서 나도 그래야만 하는 게 아니다.

빨리 결정하는 모습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길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지금 조금 '다를' 뿐이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

언제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다시 걷게 될 테니까.

누구든 인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라 믿으니까.

나를 포함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다음 아고라와 동시에 연재함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