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빅데이터 시대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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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슬기(kingka8789)등록 2013.10.17 14:44
대한민국 사람들만큼 술을 잘 마시고, 자주 마시고, 때로는 강요하기도 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일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마시기도 하고 딱히 다른 문화공간이 없어서 술집을 찾기도 한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술 소비량이 세계 11위에 달한다. 그럼 우리나라에선 사람을 만나서 먹고 마시는 것은 대부분 술이라고 해도 맞는 주장 같다. 하지만 최근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카페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스타벅스 같은 곳부터 작고 아담해 사진 찍기 좋은 카페, 조용하고 넓은 북카페까지 온 국민이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는 듯하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술과 커피 중에서 어떤 것을 더 찾을까? '마신다'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술과 커피 중에서 어떤 것을 더 먼저 떠올릴까? 예전 같으면 이런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각자 본인 경험과 직관에 비추어 나름대로 주장을 했겠지만, SNS와 포털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이미 2010년부터 한국사회에서 커피는 술보다 더 익숙하고 자주 찾게 되는 음료로 여겨지게 되었다.  

본인 주변 사람들이 술을 자주 마신다면 술이 아직까진 더 대중적이라고 주장할 것이고 주변 사람들이 커피를 자주 찾는다면 이젠 커피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은 정보사회 이전 시대의 모습, 하지만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삶의 방식이다. 아마존은 그레그 린던이라는 인공지능학자를 통해 고객들의 구매패턴, 특정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 타인과의 연결성 등을 분석해 상품 추천을 과학화하였고 그 결과 약 35%의 매출 신장을 이끌었다. 구글은 2009년 신종플루가 세계를 휩쓸기 며칠 전 독감 관련 검색어를 수학 모델로 추출해 독감을 예측하고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프로젝트 논문을 발표한다. 구글의 독감 발생과 전염 실시간 예측의 정확도는 97%이며, 현재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독감 관련 자료수집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그냥 구글의 시스템을 활용한다. 비행기에 타면 내 자리와 내 옆자리에서 나오는 광고가 다르고, 선거 때가 되면 나와 친구의 선거 홍보 메일이 다르다. 우리는 빅데이터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빅데이터 시대란 대규모의 데이터, 빠른 속도로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우리 생활에 필요한 가치를 발견하는 정보 혁명의 결과물이다. 하루에 페이스북에는 3억 건의 게시물과 트위터에는 하루 4억 건, 유튜브에는 초당 1시간 분량의 정보가 생성된다. 전 세계 25억 명이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은 매 순간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해낸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은 '가능한 데이터를 모두 공개하라'는 오픈데이터 정책을 선언했고, 이에 대응해 유럽연합, 최근에는 G8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오픈데이터 헌장'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정보의 개방과 공유의 철학에 기반을 둔 정부 3.0시대를 선언하면서, 오픈데이터를 선언하였다. 기존에 정부가 공개하던 정보는 31만 개였지만 오픈데이터는 정부가 생성 즉시 공개하기 때문에 매년 1억 건 이상의 원 데이터가 공개된다. 굉장히 혁명적인 시대에 도래했다. 

정부 3.0의 핵심은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의 사전예측제공이다. 기존 정부중심의 서비스 제공 혹은 정부에 요구하면 사후 대응하던 정부를 넘어 빅데이터를 분석해 국민보다 국민을 더 잘 알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이번에 서울시 심야버스 노선 설계에서는 새벽 시간의 KT 전화기록, 신용카드 이용기록, 택시 승하차 정보를 분석해 과학적으로 확정했다. 물론 고급 분석이 사용된 것도 아니고 기존 DB에서도 할 수 있는 정책이지만, 기존처럼 직관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의존하던 의사결정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큰 의미를 지닌 첫 사례로 보인다. 한국은 스마트폰 1위, 2년 연속 전자정부 1위, 온라인 참여지수 1위를 기록하며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앞서 간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아닌 질적인 측면 즉 빅데이터를 분석과 활용에 대한 인식조차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은 기업 마케팅팀이나 전자정부 혹은 몇몇 이공계 전문가에게만 필요한 분야가 아니다. 전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사항이 되었다.  일단 현 정부의 정부 3.0에 대한 비판과 협조를 통한 오픈데이터 정책의 성공이 전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때문이다. 정보 접근이 쉬운 세대들은 박근혜 정부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에 외면하고 보는 습관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선언에 뒤지지 않는 정부 3.0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은 정보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부의 정보 공개는 행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국민이 잘 활용하는 순간 수많은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례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정보시대에 빅데이터는 산업시대의 석유와도 같다고 한다. 빅데이터에서 새로운 가치를 뽑아내는 정보주체가 살아남는 시대에서 우리는 아직도 기존의 틀 안에서만 삶을 살아가는 산업사회에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12조에는 '나의 사생활, 가족, 집, 편지나 전화 등 통신에 대하여 아무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나의 명예와 신용에 상처 입지 않고, 만약 그런 일이 있을 때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12조에서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사생활(privacy)이란 '사람의 눈을 피하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 타인에게 유통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이다. 하지만 빅데이터라는 용어를 유행시켰던 오바마 재선 당시 오바마 캠프의 목표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유권자보다 유권자를 더 잘 알고 접근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스마트 폰, 페이스북 '좋아요', CCTV, 신용카드 등의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그 사람의 사생활은 없어진다. 남들이 다 아는 사생활이 더는 사생활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과 정부가 쉽게 개인정보를 팔아넘기고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국민들은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 아닌가? 

마크 주커버그가 '사생활은 죽었다'고 말했다. 사생활이 없는 시대로 재설계되고 있다. 귀족들만 사생활이 있던 절대왕정 시대와 본질에서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인터넷 이후 세대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울 수 없는 '데이터 잔해'들을 남기고 철없던 시절 과거의 잘못으로 평생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국민들을 잘살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수집된 정보들은 언제든 감시의 도구 혹은 자본과 권력만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포털에 입력한 정보를 내가 마음대로 지울 수 없다면, 내가 혼자 어떤 페이지를 보는지 자본가가 알아서 지름신을 강림하는 도구로 지속해서 활용한다면, 그리고 대한민국 수구세력들이 해왔던 불법 정보활동들을 이제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한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한 경계 설정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육체적 노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던 시대에 신체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것이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면, 정보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시대에 자기 정보 결정의 자유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억압에 대한 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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