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만난 예수

지하철 잡상인의 입을 통해 들은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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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만(youmany)등록 2013.11.02 16:29
          지하철에서 만난 예수

경기가 안 좋은 탓인지 요즘 들어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오늘도 6호선 전철을 타고 퇴근하다가 합정역에서 40대 아저씨 장사꾼을 만났다.
허리요대와 무릎보호대, 손목 아대를 한 셋트로 1만원에 파는 아저씨다. 아저씨는 커다란 가방을 출입문 옆에 세워 놓고 가방 안에서 물건들을 꺼내서 요대는 허리에 차고, 무릎 보호대와 손목 아대를 양복을 입은 채로 끼우더니 설명을 시작하였다.
'평소 안 하시던 등산이나 운동을 하시다가, 그 당시에는 괜찮았는데 다음 날 주무시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던 중, 허리가 심하게 아프기도 하고 혹은 많이 아프지는 안 해도 허리가 이상해졌다는 분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 평상시에도 이 요대를 착용하시면 일상생활 중에도 허리 부담을 줄여서 움직이기가 엄청 편해집니다. 한번 써보시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무릎 보호대 역시 등산이나 달리기, 걷기나 테니스 등 운동하시다가 무릎이 삐끗하신 분이나 나이 드신 분들 운동하실 때나 어디 다니실 때 착용하시면 아주 움직이기가 부담이 없이 편해집니다. 옷 안에 차는 것이고 보시다시피 엄청 얇게 나왔기 때문에 착용한 표시가 나지도 않습니다. 보십시오 저도 이렇게 안에 요대를 하나 더 찼지만 찬 것 같지 않지요? 저도 등산을 자주 다니지만 허리 요대나 무릎 보호대를 차고 다니면서부터 허리나 무릎 아픈 줄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가격이요? 자 ~ 보세요 이 같은 허리 요대 하나만 해도 똑같은 제품을 병원에서는 5만원 이상 받습니다. 의료 기구상이나, 일반 할인점에서도 최소 2만5천원은 줘야 살 수 있습니다만, 저는 여기서 만원에 드리겠습니다. 여기에다가 무릎 보호대와 손목 아대도 같이 드립니다. 하나씩 써 보세요. 써보시면 몸이 부드럽습니다. 물건은 싸고 좋은 겁니다. 세 가지 물건을 다 드리고 만원입니다.'

달변이다. 하지만 지하철 장사는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 물건이 좋아 보여서 하나 사고 싶어도 누구나 자기가 최초 구매자가 되는 모험은 꺼리는 법이어서 누군가 먼저 구입하기를 바라면서 서로 눈치를 보아가며 다른 사람이 먼저 사면 연이어 따라 사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법인데, 오늘따라 그런 분위기가 살아 주질 않는다. 아저씨가 객차 내를 두어 번 왕복하는 동안에도 도무지 매기(買氣)가 일어나지 않는다.

가끔가다 조그만 휴대용 후레시나, 드라이버 셋트같은 연장 종류, 우산이나 우의, 야외 돗자리 등 천원이나 이천원짜리 자잘한 소품들은 잘 팔리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은 가격이 좀 나가는 물건이라서 인지 아니면 아저씨가 운이 없는지 전혀 팔리지 않는다. 운만 잘 맞으면 옆 사람이 사고 나도 사고 서로서로 경쟁적으로 사는 바람에 그야말로 불티나듯 팔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역시 가격이 문젠가? 사실 지하철 장사로 1만원이면 좀 비싸다. 물건이 얼마나 좋은 건지는 몰라도,

1천원, 혹은 2~3천원 짜리 라면 혹시 집에 가져가서 속은 것을 알아도 좀 기분이 나쁘다가 말겠지만, 그것이 만원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어쨌든 그 아저씨는 결국 내가 탄 객차에서 한 개도 팔지 못하고 말았다. 자기 물건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알고는 그 아저씨는 다른 칸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신다.
먼저 손에 든 물건을 가방에 넣더니 허리 요대를 풀어서 넣고 무릎 보호대, 손목 아대도 풀어서 가방에 정리하고 나서 그 가방을 끌고 전철 중앙에 섰다. 아마 앞 칸에 가서는 수고롭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착용하면서 설명을 할 작정인가 보다. 물건을 하나도 팔지 못해서 실망이 되기도 했으련만 아저씨는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겉모습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다음 칸으로 이동 준비를 마친 아저씨는 담담하게 마지막 멘트를 이어 갔다.

대개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거나 '소린을 피워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는 소리를 듣게 마련인데 까만 양복의 이 아저씨의 작별 인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객차내 손님들을 향하여 '꾸벅' 인사를 하더니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그 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맞아 드리는 기회가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순간 자지도 않으면서 눈을 감고 있던 객차내의 사람들이 눈을 번쩍번쩍 뜨는 것을 나는 보았다. 처음부터 눈을 감지는 않고 신문을 읽는 척하며 아저씨의 동작을 안보는 듯 하면서도 관찰하고 있던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마지막 멘트에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 놀란 것 같았다.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동안 그 분은 천천히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통로를 지나 앞 칸으로 건너 가셨다. 물건을 사지 않기 위해, 아니 물건에 관심있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얼른 다가와 서서 권유하는 것이 싫어서 눈을 감고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앞 칸으로 건너가는 그 분의 뒷모습을 감동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분이 차안에 남기고 간 말은 몇 마디 안 되는 것이었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흡사 바로 곁에서 에밀레 종소리를 들은 것처럼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듯 했다. 그 분은 짧은 그 한마디를 위해서 10분 이상을 반응도 없는 장사를 하신 것이 분명했다. 그 분에게 있어서는 그 한마디가 장사를 위한 긴 멘트보다 더 가치 있는 말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분은 평소 우리가 보던 여타 전도자의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지하철 한 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설교조의 우렁찬 목소리로 반 강제 주입식 교육을 하듯 "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지금 당장 주 예수를 믿으라."는 식으로 타인에게 전도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았다, 이럴 때 나에게 숫기가 좀 더 있었다면 "아저씨! 잠깐만이요. 요대하나 주세요" 하고 아저씨를 불러야 되는데 머뭇거리는 사이에 예수를 닮은 아저씨는 앞 칸으로 건너 가 버리셨다.

그 분이 가신 후 하루 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잠시 지하철 의자에 맡기고 퇴근하는 3~40명의 승객들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짐을 보았던 것은 내 눈의 착각일까? 불가에서도 '우주 만물 삼라만상에 부처가 있다'라고 가르치고, 기독교에서도 '사람의 몸이 곧 교회'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요컨대 신이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우리가 본 장사꾼 아저씨가 혹시 예수님이 아닐까?
그 분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 어쩐지 장사 되고 안 되고에는 관심 없는 듯 초연한 얼굴이더라니....,

문득 딸아이가 듣던 독일의 구연동화 '구두장이 마틴 이야기'가 생각난다.
『항구 도시 함부르크 시내 한 거리 모퉁이에 가난한 구두장이 마틴의 살림집 겸 가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장사를 마치고 가게 문을 닫으며 정리를 하던 마틴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마틴!  마틴!"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마틴은 사방을 둘러 보았어요.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마틴!" 
또 그 소리가 들렸어요. 마틴은 문을 닫다 말고 밖으로 나가서 거리를 쳐다보았어요. 아무도 없었어요.
"마틴! 나다. 너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라니 마틴은 놀라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어요.
"내가 내일 너에게 가겠다."
처음에는 놀라서 어리둥절했던 마틴은 이제는 더 이상 놀라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뛰었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들은 마틴은 너무나 가슴이 설렜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마틴은 평소보다 더 가게 안팎과 주변을 깨끗이 했습니다.
마틴은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했어요. 마틴이 유리창을 닦고 있을 때 청소부 슐츠가 지나가고 있었어요.
"어이 슐츠! 잠깐 들어오게. 갓 구운 토스트와 뜨거운 커피가 있다네. 이리 와 어서"
점심때까지도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후에 젊은 아낙이 지친 표정으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타나 길을 묻더니 아는 사람을 찾아 취직하러 멀리서 왔는데 그 사람이 이사를 가버렸다고 하소연하면서 이제 라이프니쯔까지 가야 하는데 여비도 없고 갈 길이 멀다며 걱정을 했습니다. 마틴은 아이와 엄마를 위해서 빵과 과일을 싸주고 돈을 좀 주어 보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도 하나님은 오시지 않고 대신 동네 홀아비 뮐러가 엊그제 다친 다리를 끌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어요. 마틴은 뮐러를 불러 저녁으로 준비한 돼지고기소시지와 감자 스튜를 같이 먹었습니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밖을 보면서 마틴은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오신다던 주님은 왜 안 오시는 거야. 내일은 오시려나?' 그 때였어요.
"마틴! 너는 나를 만났다."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예? 저는 주님을 만나지 않았는데요?" 마틴은 사실대로 대답했어요.
그 때 구두 진열장 위 빈 벽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어요.
그것은 빗자루를 들고 수레를 끌고 있는 청소부 슐츠였어요.
"이게 바로 나야" 
이번에는 젊은 아낙과 어린아이가 나타났어요.
"이것도 나야"
마을 홀아비 뮐러가 다리를 절며 나타났어요.
"이것도 나지"
마틴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거기에는 ' 네 이웃의 가장 작은 자에게 한 일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니라'라고 써 있었습니다.』

오늘 나는 지하철에서 예수를 만났다. 아니 최소한 예수를 닮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기독교 전도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고되게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아서 하루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하는, 어쩌면 당시 지하철안의 누구보다 더 힘들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몇 마디 투박한 진리의 소리가 몇 십년 경력 있는 목회자의 화려한 설교보다 더 감동적으로 들렸던 것은 왜일까.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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