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아이를 소비하는 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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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슬기(kingka8789)등록 2013.11.07 14:34
  사랑이 넘쳐난다. 혼인율이 OECD 최상위권이면서도 출산율이 최하위권인 것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아주 심각한 경제위기 때문인 것 같다. 모두가 이렇게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아이를 낳지 않을 수는 없다. 아빠랑 어디 가거나 슈퍼맨이 돌아오는 시간에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SNS에도 예쁜 강아지 사진들과 더불어 귀엽게 생긴 아이들의 모습들이 쉴 새 없이 공유된다. 인형인가 싶을 정도로 귀여운 아이들은 새로운 스타가 되었다. 아이 사랑에 뒤처져있었던 SBS는 부랴부랴 10월 말부터 새로운 아이 사랑용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이제 이런 아이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감정이 메마른 야박한 사람들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아이들이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일까?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아이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아이들은 더 어려지고 싶어 한다. 동생을 부러워하거나 시험이 없던 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어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은 현재의 삶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OECD에서 어린이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최근 4년 조사에서 한국은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한다.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어른들의 그것보다 더 낮다. 서울시 조사에 의하면 어린이 4명당 1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행복하지 않은 어른들 틈에서 아이들은 온전히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른들의 불행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주입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불안은 그대로 부모에게 이전되고 그 불안은 다시 연약한 어린이들에게 전해진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겁주고 쫓아내기 바쁘다. 놀이터에서 학원으로, 오프라인 공간에서 온라인 공간으로. 밖에 나가 모여 놀만 한 공간은 없다. 기성세대들이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하던 놀이와 이야기들을 요즘 아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할 뿐이다. 책이나 음악보다는 게임으로 아이들을 내몰고 있다. 부모와 소통을 하기보다는 고독한 상황으로 쫓아낸다. 아이를 진정한 사랑의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한 대상으로 사용한다. 부모가 삶에서 불안을 느끼면 아이들에게 꿈을 주입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하여,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하여, 노숙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삶을 버텨나간다.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의 동기는 행복이 아니다. 부모의 협박에 못 견딘 것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행복의 영역에서 불행의 영역으로 쫓겨난다.  

아이들이 유일하게 동료들과 소통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공간은 게임이다. 자신들이 아이들을 완전히 오프라인 공간에서 몰아내 놓고는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부모들을 보면 참으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게임 캐릭터들은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그들만의 골목길에 모여 소통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해결한다. 게임을 하느라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공부하라고 하는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 게임의 공간으로 도망간 것이다. 아이들의 게임 중독은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의 원인은 어른들에게 있다. 아이를 사랑하는가?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이의 내면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이를 믿지 못한다. 가장 편안해야 하는 집이 아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모든 것은 아이를 위한 사랑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이에게 투자한 금액을 계산한다. 

요즘 대중매체나 온라인 공간에서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들을 보면 이제 아이들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른들은 직장에서 받는 불안을 직장에서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받는 불안을 정치 영역에서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면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이들의 자살은 그렇게 발생한다. 부모가 원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이 세상에서 상처받을 때 희망은 사라진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들을 이렇게 잔인하게 취급한다. 그리고는 어린아이들의 귀여운 모습만을 소비한다. 아이의 이미지만을 상품화한다. 좋은 풍경을 바라보듯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가 한 인격체로 성숙해가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아이의 고통에 함께하지 않는다. 귀엽고 착하고 똑똑한 아이들만 잠시 애완견 놀아주듯 소비하는 어른들이 자신은 '아이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귀여워서 참 좋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행복하게 해주게 된다. 어른들은 좀 더 성숙하고 강해져서 아이들을 보호할 책임도 있다. 자신의 불안을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른들의 불안의 원인은 무엇인가? 결국, 먹고 사는 문제이다. 노동과 임금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참여하는 주인으로 서 있어야 한다. 주인인 국민의 대리인들이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한 정책들을 만들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점점 아이들을 위한 정책들은 후퇴하고 있다. 어른들의 탐욕으로 엉뚱한 정책들을 만든다. 여성가족부의 경우 게임 규제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교육부는 입시제도 개선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초중고 교육문제에서 게임과 입시는 둘 다 본질이 아니다. 그것들은 좋은 대학과 높은 연봉에 자신의 아이들을 밀어 넣기 위한 눈앞에 욕심일 뿐이다.   

이젠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언젠가 OECD 어린이 행복지수가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것을 기대한다. 어른들이 어른답게 서는 것이 필요하다. 불안을 초래하는 문제의 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른들의 불안은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없다면 아이는 어른들의 스트레스를 받아내는 하수구로 전락한다. 이것도 부족해 아이들의 내면은 무시한 채, 제삼자의 시각으로, 아이들의 이미지만 소비하는 사회는 사실상 아이를 착취하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아이가 울면 온갖 인상을 쓰면서, 스타가 된 아이들을 매주 쳐다본다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옳다고 믿는 몇몇 감옥에 아이들을 가둬놓고 아이들이 성숙한 주체가 되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많은 어른들에게 다시 물어봐야 한다. 그동안 아이들을 왜 좋아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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