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너희만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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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철(stron1934)등록 2013.11.14 18:05
나는 분명히 봤다. 안산도 성남도 구단 인수에 소극적이던 무렵, "팀의 역사가 이대로 끝나는 건 원치 않는다. 우리는 팀의 역사가 지속되길 바란다. 우리는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드리겠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힌 인터뷰를 분명히 봤다. 지금도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8월 말~9월 초에 올라온 성남 일화 '박규남' 단장의 인터뷰 내용이다.

하지만 막상 성남시가 구단 인수에 뛰어들고 상황이 호의적으로 변하자 구단이 입장을 바꾸었다. 분명 팀의 역사가 지속되길 바란다며 무상 인수로 팀을 넘겨주겠다고 선언했으면서, 이제 와서 조금의 이익이라도 챙기기 위해 인수비용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구단은 "구단의 직원들을 갈아엎기 위해선 인수 비용을 내고 팀을 인수하라. 단, 무상 인수를 하고 싶으면 구단의 직원들을 고용승계 시켜줄 것을 약속하라"며 성남시에 요구했다. 불과 두 달 전만해도 무상으로 팀을 넘겨 줄 테니 우리의 역사만 유지해달라며 간곡히 요청하던 구단이다.

구단이 이러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남시에 요구했던 내용에는 '무상 인수를 하고 싶으면 구단의 직원들을 고용승계 시켜줄 것을 약속하라'는 내용이 있다. 분명 일화 구단 직원들의 일자리를 그대로 유지시켜달라는 것이 이들의 속내일 것이다. 하지만 성남시 태생으로 성남 일화라는 축구팀을 가까이 지켜봐왔던 나로서는 이들의 요구를 절대 받아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싶다.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그동안 일화 프런트의 만행과 근무태만을 늘 지켜봤다. 이 칼럼에서는 성남이 시민구단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일화 프런트는 버려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아봤다.

(△ 분당선 지하철에 붙어있던 성남 일화 2010년 포스터 사진. 참고로 나는 이걸 지난주 일요일에 목격했다. 지금은 2013년이다.) ⓒ 임형철


일단 기본적인 마케팅 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물론 일화라는 모기업의 특성상 성남시의 지원도 없었고, 마케팅을 하기엔 오히려 제약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런트 역시 이러한 현실을 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 성남시와 시민들의 잘못된 편견을 깨트리려는 모습보다는, 이걸 핑계 삼아 되려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근무태만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케팅이라고는 경기장 근처에(정말 딱 그 근처만이다.) 홈경기 일정 플래카드와 지하철에 붙여놓은 3년 전 구단 포스터가 전부였다. 지금도 2010년 구단 포스터가 분당선 지하철에 떡하니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 할 말이 없어졌던 경험이 있다.

구단 일에 관심이 없나 보다. 지난 주 일요일, 분당선을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전철에서 이 포스터를 발견했다. 사진 속에 보이는 포스터는 한창 2010시즌 중일 때 붙여놓은 것이다. 2010년은 탄천 종합운동장에 지붕이 생긴지 1년 째이면서 성남에서 한창 몰리나가 '몰느님' 소리를 들으며 날라다니던 때였고, 그 해 겨울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인터 밀란과 클럽월드컵 준결승에서 만나던 때였다.

해는 3년이 지나 지금은 서울이 광저우와 ACL 결승에서 맞붙고 있고, 성남의 주축 몰리나는 어느덧 서울에서 3년 차 시즌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2010 시즌 주축 멤버들은 윤영선과 김철호를 제외하고 모두 성남을 떠났다. 그럼에도 그 포스터가 아직 분당선 전철에서 성남 구단의 마케팅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니 할 말이 없다. 작년, "이 세상 모든 골은 내가 지킨다"라는 정성룡 포스터(정성룡은 그 해 수원 2년차였다.)가 없어지면서 드디어 포스터 관리가 시작됐나 싶었건만... 일화 프런트의 근무태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남의 홈경기를 보러 가면 타 구단에 비해 분위기가 정말 썰렁하다. 메리트라고는 재미있는 축구 경기 관람 밖에 없다. 맥콜을 좋아한다면 매점에서 판매하는 맥콜에 컵라면을 먹는 콤보에 더없이 기쁘겠지만, 매점에서의 기쁨은 어느 경기장에서든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이다. "성남의 홈 경기장 탄천 종합운동장에 왔다. 그리고 재밌는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홈경기 직관임에도 메리트가 고작 이게 전부다.

다양한 이벤트라던지, 시민들을 우리 팀의 진정한 팬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없었다. 2012년 한 해 동안은 그래도 나름 괜찮았던 이벤트를 경기마다 내걸긴 했지만, 이를 활용한 홍보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실상 신태용 감독님 및 선수 유니폼과 하프타임 경품 추첨을 이용해 마케팅을 펼쳤다 해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성남 시민은 몇 되지 않았다. 수도권 내 타 구단의 비슷한 이벤트들과 직접 비교해보면 온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부족함이다.

그나마 있는 관중도 대부분 무료 초청권이다. 일화 프런트가 마케팅엔 힘을 쓰지 않고, 연맹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관중수를 모으고자 급하게 초청권을 이리저리 뿌렸다. 특히 중-고등학교의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예전에 초대권 이용해서 몇 번 갔는데, 거길 돈 주고 가자니 아깝다"라는 말을 실제 가까이 있는 친구를 통해 들었다. 내년부터 당장 시민구단으로 새 출발해야하는 성남이지만, 기존 일화가 싸질러 놓은 배설물이 만만치 않아 이미지 개선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말 매력적인 구단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러한 근무태만 프런트들을 다시 안고 갈 생각인가?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팬들을 위한 세세한 배려도 부족하다. 경기장이 낯선 시민들을 위해 경기장 관리인들이 정확하게 안내해줘야 하는데, 시설공단 직원과 경호원 등 사람마다 안내해주는 말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축구를 보러온 팬들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 또한 성남시의 탓도 있지만 경기장 좌석에 쌓인 먼지는 기본, 특히 일반석 중 가장 비싸다는 스카이석의 좌석은 주유소에서 나눠주는 물티슈 한 통을 모두 소비해도 의자에 때가 남아있을 만큼 상태가 심각하다. 갑자기 관중이 몰린 경기 때는 매점에 음식이 부족해 팬들의 불만을 사기 일수이며, "매점에 유통기한 지난 물 밖에 없으니 물은 살 수 없다"는 매점 직원의 황당한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나마 그 물을 팔지 않았으니 다행으로 쳐야겠다.

(△ 2011년, 육개장 컵라면 과자 사태로 인해 내 친구는 1,500원을 주고 산 육개장 컵라면을 과자처럼 뜯어먹는 굴욕을 맛봐야만 했다.) ⓒ 임형철


2011년엔 문제가 심각했다. 매점에 뜨거운 물이 안 나와 육개장 컵라면을 산 팬들이 난항을 겪은 것이다. 실제로 함께 FA컵 결승을 보러 간 내 친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육개장을 샀다가 뜨거운 물을 받지 못해 컵라면을 과자처럼 먹는 굴욕을 맞기도 했다. 중요한 점은 육개장 컵라면 과자 사태의 피해 사례가 2011년 한 해 동안 꾸준히 언급됐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시민구단 창단 축하를 위해 경기장에 띄운 애드벌룬이 바람에 휘날려 선수들과 일반 팬들을 덮치기도 했다. 구단의 이미지 개선 및 홍보를 위한 세세한 배려와 노력이 부족하다. 일화 프런트의 무능력을 탓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탄천 종합운동장 상공에 띄운 애드벌룬은 킥 오프 15분 만에 관중이 많은 일반석으로 돌진했다. 이 과정에서 애드벌룬을 묶은 줄이 주저앉으면서 경기 중인 선수들을 덮쳐 경기가 지연되기도 했었고, 일반석에 앉은 팬들 또한 경기 관람에 방해를 받아야 했다. 결국 일화 프런트들은 90분 내내 애드벌룬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며, 선수들이 경기하는 잔디구장 주변 트랙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날 성남은 1-2로 강원에게 패했으며, 애드벌룬은 경기 패인으로 지적됐다.) ⓒ 임형철


(△ 안산행 루머가 터졌을 때, 연습 경기를 안산 와 스타디움으로 잡으며 연고 이전 밑밥을 깔던 일화 프런트들) ⓒ 임형철


더욱이 안산행 루머가 터졌을 때는 연습경기를 '안산 와 스타디움'으로 잡아 놓고, 구단 페이스북을 통해 성남 팬들에게 보러 오라는 능욕과 조롱을 선사한 적도 있었다. 성남팬들은 이에 대해 연고이전의 밑밥 깔기가 아니냐며 항의했고, 항의가 빗발치자 결국 연습경기 장소를 성남으로 옮겨야만 했다. 성남 팬들을 위해선 움직이지도 않더니, 프런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움직인다. 팬들의 정도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 경기장에 맥콜이 몇 개인지 셀 수가 없다.) ⓒ 임형철


성남시내에서 성남 일화의 이미지는 대부분 촌스럽다는 이미지로 기억된다. 어쩔 수 없다. 세련된 마케팅이 이루어지지 않고, 경기장 이곳저곳에는 '맥콜' 광고판과 노란색 상의에 빨간색 하의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유니폼 조합만 눈에 띄니 일반 시민들은 첫 눈에 팀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첫 인상은 구단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구단의 장점을 키워냈으면 충분히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세세한 부분에서의 배려가 필수인데, 당장 경기장에 내건 애드벌룬부터 경기 중에 잔디로 추락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일화 프런트들에게 개선과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쯤 되면 일부 성남팬들 사이에서 나와야 할 질문이 있다. "최근 수년간 구단이 재정난에 빠져 마케팅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맞는 이야기다. 최근 상황은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구단의 재정이 터지다 못해 넘쳐흘렀을 때, 중동 구단 급 재정력을 갖고 있었을 때, 구단이 마케팅에 투자를 한 장면을 목격한 경험이 있는가? 레알 성남이라 불리던 2000년대 초반, 성남 일화의 마케팅은 지금보다 더 좋지 않았다.

그 당시 홈경기의 메리트는 K리그 챔피언과 스타플레이어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3년 연속 우승의 신화를 써내려가던 성남의 평균 관중수는 해가 갈수록 하락했다. 리그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구단에 비해 참 체면 구기던 일이었다. 구단의 재정이 엄청나던 시절에도 이들은 시민들을 팬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성적지상주의, 마케팅은 철저히 외면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정말 기초적인 홈경기 일정조차 대다수의 시민들이 모르는 게 현실이다. 성남에 축구팀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시민들도 많이 봤다. 지난 13년간 일화 프런트가 조금이나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충분히 축구팀의 이미지가 좋은 방향으로 기억될 수 있었겠지만, 노력은커녕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만 만들었다. 여러모로 참 성남시와 궁합이 맞지 않는 일화 프런트들을 다시 새로운 시민구단의 프런트로 들이고 싶지 않은 이유다.

시민구단은 어디까지나 새 출발이다. 기존 일화 프런트의 무능력함과 근무태만으로 인해 쌓이게 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고, 성남 시민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성남의 축구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기존 일화 구단의 부정적이고 촌스러운 이미지를 극복하고 더 세련된 팀으로 시민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과정에서 그동안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일화 프런트를 또 다시 시민 구단의 식구로 들이겠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결정이다. 성남시가 시민구단을 제대로 운영해보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바로 무능력한 일화 프런트다.

구단이 유상 인수로 돌아선 이상 지금 상황을 성남시가 어떻게 대처할 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확실한 것은 팬으로서 부디 일화 프런트를 고용승계 시켜 구단이 과거와 같은 길을 또다시 걷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들에겐 전망이 없다. 꿈도 없다. 그저 지킬 자리에 대한 미련만 갖고 있다. 확실한 비전과 꿈이 있는, 열정이 있는 성남 시민구단의 길과는 분명히 다르다. 구단의 밝은 미래를 열망하는 만큼, 함께 밝은 미래를 피울 수 있는 재능 있고 능력 있는 프런트들로 새 출발하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일화 구단이 발버둥치는 이와 같은 상황이 부디 좋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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