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남긴 교훈

박정희를 이용하는 위선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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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슬기(kingka8789)등록 2013.12.07 15:14
죽음의 순간에서 담담했던 박정희는 성공한 인생일까? 총성이 오가는 긴박한 상황은 이성보다는 본능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그런 순간에서도 편안히 눈을 감으며 총알을 받아낸 자는 과연 인생에 대한 한 줌의 미련도 없던 것일까? 최근 박정희 동상이나 기념관을 세우려는 자들을 보며 문득 죽음 앞에서 동요하지 않았던 인간 박정희의 삶이 궁금해졌다. 박정희는 그의 삶 자체가 한국의 현대사라고 할 만큼 상징적이다. 존재의 상징성이 커서 우리 사회는 오히려 인간 박정희의 내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정희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아직 한국사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직접 인적 관계가 연결된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비판과 옹호는 단순한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친일의 막내이자 독재 시대 대부의 살인과 폭력이 어떻게 용납이 되느냐'는 비판과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지 않으냐'는 옹호의 대립구도는 접어두고 박정희 삶을 잠시 들여다보자.

그는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박성빈과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한다. 1932년 4월 1일 대구사범학교 제4기생으로 입학하고,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우수한 교사를 양성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그는 상당한 엘리트였다) 1940년 4월 4일에는 만주신경육군군관학교(관동군과 대치 상황에 있는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한 목적인 학교)에 입학하여 1942년 240명 가운데 수석으로 졸업해 일본 육사 유학생대에 특전 편입한다. 1942년 유학생대에 편입하여 일본 육사 57기가 되어 1944년 4월 일본 육사 유학생대를 3등으로 졸업한다. 해방 당시 일본군 중위였던 박정희(다카키 마사오)의 간단한 프로필이다. 일본 육사 당시 일본 왕에게 혈서를 쓰며 조선의 독립군을 토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박정희가 해방 후에도 숙청되지 않고 남로당을 거쳐 쿠데타를 통해 대한민국의 5, 6, 7, 8, 9대 대통령으로 독재자의 권세를 누렸다는 사실까지 추가하면 역사적 행적은 얼추 정리된 듯하다.

그의 삶의 과정을 보고 많은 국민은 '엘리트', '경제발전', '카리스마' 정도를 연상하고, 강인한 군인으로 어울리는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기보다는 출세와 생존을 위한 행로를 보였다. 친일에서 좌익으로, 좌익에서 반공 독재자로 변신 혹은 변절의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폭력은 카리스마의 이면으로 가려졌다. 그는 시대의 어둠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뤄냈고 엄청난 출세를 한다. 그렇게 세상에 이름을 남기며 아직 우리 사회를 붙잡고 있다. 도덕을 배제한 박정희의 삶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말년의 박정희도 자신의 삶을 그렇게 생각하며 생을 마감했을까?

대한민국 대표 우파논객 조갑제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박정희는 말년에 술에 취하면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정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타인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말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고 싶어 했다. 이 말 속에는 그동안의 회한과 통탄이 서려 있다.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박정희를 피도 눈물도 없는 짐승 같은 존재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말년의 박정희는 최소한 이 정도의 양심은 있었던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박정희와 같은 배신과 살인 속에서 살아왔다면 말년의 삶이 꽤 괴로울 것이라는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가에 힘을 싣는 증거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세상을 뜨던 날 궁정동 술자리에 동석했던 가수 심수봉의 인터뷰가 바로 그것이다. 다음은 인터뷰의 일부 내용이다.

"빵! 갑자기 총성이 들렸지요. 총성이 들리기 전 언성을 높여 싸웠다고요? 그런 건 다 거짓말이에요. 그분(박정희) 앞에서 김씨(김재규)와 차씨(차지철)가 투닥거리는 장면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총성은 갑자기 났어요. (중략) 저는 그 순간 이런 장면을 각하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바로 옆을 쳐다봤어요. 각하는 총소리에도 조금의 동요도 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계셨어요. 이 녀석들이 또 철없이 난동을 부리는구나 하는 식의 태연한 모습이었어요. 이때 운명의 총알이 튀었지요. 오른쪽 가슴으로부터 비스듬히 복부를 관통해서 왼쪽 아래 옆구리로 피가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아무런 흐트러짐이 없는 그 자세로 그대로 위엄을 지키며 끝까지 앉아계셨습니다."

박정희의 말년의 모습은 후회와 허무의 모습이라고 표현할만하지 않는가? 죽음을 기다렸던 것처럼 혹은 예견했던 것처럼 죽음 앞에서 침착한 모습이다. 자신의 부끄러운 삶을 정리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은 심수봉의 증언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박정희 본인의 평가에 대해서 먼저 살펴봐야 한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그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말라고 당부한 모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말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민족을 배신하고 이념을 배신하고 민중을 학살하는 삶은 떳떳할 수 없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러한 박정희의 말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박정희의 이런 모습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박정희를 이용한 권력 혹은 부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1979년 10월 26일, 첫 번째 총탄을 맞고 나서 고통을 감내하며 두 번째 총탄을 맞고 죽기까지 1~2분의 시간 동안 박정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 백남의가 늦은 임신이 부끄러워 자신을 낙태하기 위해 간장을 두 사발이나 들이키고 기절한 사건을 떠올렸을까? 좌익 활동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동료들을 밀고하여 그들과 생명을 맞바꾸며 살아난 배신의 기억을 떠올렸을까?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을지도 모른다.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시인 이상은 이렇게 말한다. 몸을 파는 여자에게 빌붙어 살면서 일제강점기를 견디던 지식인은 어쩌면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가장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처량한 인생이 처참한 한반도의 운명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가 우리에게 남겨준 비참한 역사가 더는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그의 강력한 염원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다. 21세기가 된 지금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20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자." 박정희로 대변되는 인권 말살과 변절의 이념으로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시대인 20세기를 청산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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