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대자보 '대립물의 통합'

대학 새내기의 대자보 여행

검토 완료

조승희(bloodi)등록 2014.01.08 19:33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갑자기  방  한 쪽 벽을 단순한 낙서가 아닌 사진을 잘라서 넣고 퀴즈(quiz)도 적어 잡지처럼 한 쪽 벽을 이쁘게 꾸미면 어떨지? 습기로 곰팡이 핀 얼룩한 벽지가 생기가 돌지 않을까? 싶은 나름 대견한 마음이 불쑥 돋아 났다.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느낌도 살짝쿵 들긴 했지만 방을 이쁘게 꾸미고 싶은 나의 욕구를 말릴 수 없었다. 2시간 남짓 작업(?)을 끝내고 동생들에게 관람하게 하고 크레파스며 잡지 사진으로 도배된 벽면이 어떤지 의견을 묻는 나만의 전시회를 무사하게 마치었으나 문제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 눈에 이 낙서가 맘에 들지 않으셨다는 게 화근이었다. 아버지는 한쪽 벽면에 크레파스며 잡지 사진을 조각조각 붙여놓은 작업물이 단순한 낙서로 보이셨는지 나의 작품에 평가도 없이  벌을 세우셨다.
그 날 이후로 자신의 의견이나 느낌을 써서 붙이 놓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경직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대학생 새내기에게 캠퍼스의 줄잇는 대자보는 친구이자 대학생활의 길잡이였다."

시간은 흘러 대학은 가야 하는 곳이고 대학에 가면  할 수 있는 자유가 많다는 선생님의 꼬임만이 전부인 고등학교 시절로 치달았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고작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엉덩이살 키워 가며 지식 습득하며 시험문제를 푸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할 일도 없는 고등학교 3학년도 보내었다. 그 후에는 수험표를 들고 두꺼운 안경을 끼고 대학 캠퍼스를 밟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마주했던 것은 덕지 덕지 붙여진 수많은 대자보와 그 위에 덧붙여 지길 반복한 청테이프 자국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당황스러움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캠퍼스 안에 덕지 덕지 붙은 대자보는 내가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경직감과 분명 상반된 것이기에 새내기로 입학하려던 나를 어리둥절하기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손가락 한번의 클릭으로 좋아요. 싫어요 댓글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정성스러움을 간직한 대자보를 보면서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경직된 마음이 서서히 사라지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재미있게 만화로 그려진 대자보는 눈길을 끌었고 유행어를 써서 내용을 전달한 대자보는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대학생 새내기에게 캠퍼스의 줄잇는 대자보는 친구이자 대학생활의 길잡이였다.

우연찮게 들어갔던 동아리에서 새내기와 선배가 함께 하는 모꼬지때의 일이다.
항상 수줍고 웃는 모습도 언제나 조심스럽던 누구에게나 있었던 1학년때  말이다. 활짝 핀 개나리의 향기를 맡으려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동아리 모꼬지에서'라는 타이틀을 단 대자보에  다른 사진과 함께 붙여 놓여 있었다.  그런데 내 학과 친구가 살며시 내팔을 잡아 끌며 그 사진 밑에 적어진  볼펜낙서가 있다며 손끝으로 가리키는데 '대립물의 통합' 로 적어져 있는게 아닌가? 그 순간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오로지 '대립물'이라는 단어만 내 눈에 들어 왔다. 주변에서는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가득하고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 올랐다.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기시겠다.
갑자기 헐크로(?) 변신한 얼굴로 누가 이런 테러를 저질렀는지 물어보고 그 사람을 찾아가 항의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우린 친한 친구가 되었고 많은 추억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의 일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어 내 마음 한켠에 늘 항상 있지만 돌이켜 생각하건데 그 때 느꼈던 감정은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그 친구의 자신의 솔직함을 표현할 줄 아는 용기이지 않았을까 싶다.  주눅이 들어 있는 새파란 새내기가  어떻게 자신의 느낌을 대자보에 적었을까 하는 경이감 이었을 게다. 나에게는 다른이의 관심을 현실로 마주하게 하는 경험으로 아직도 내 손을 오그라들게 만든 경험이었지만 또 다른 용기를 배우게 하는 계기이기도 했기에 유쾌한 에피소드로 기억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타인에 대한 안부와 관심으로 가득차 있던 그 시절의 대자보가 본인만의 이해와 타인에 대한 비방으로 흘러 넘치다 못해 허우적대는 인터넷 시대에  더욱 그리운 것은 나만 그러한 것일까?

덧붙이는 글 (대자보의 추억의 응모글)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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