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크리미아 합병은 정당하다!

이혼한 부인에게서 패물을 환수하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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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욱(arock)등록 2014.03.29 16:10
푸틴의 크리미아 반도 합병으로 세계가 시끄럽고 우리 정부도 러시아의 크림합병이 "국제법 위반"이라 공식 성토했지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크림반도에는 기원전에 "키림"이라는 유목 부족이 살아 크림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는데 스키타이-로마지배를 거쳐 고트 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AD 376년 흉노가 서진 하면서 크림반도를 휩쓸자 고트 족은 쫓기어 다뉴브 강을 건너 로마영내로 진입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중세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발단이다.
고대, 중세에는 말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런데 말은 살아있는 동물이니 반드시 중간 중간 물을 먹여야 한다. 마치 현대에 차가 아무리 좋아도 중간중간 주유소가 없으면 주행을 못하듯 아무리 천리마라도 물을 먹이지 않으면 달릴 수 없다. 말하자면 현대의 주유소 역할을 하는 강과 호수가 있어야 하고 그러니 강, 호수로 연결되는 길이 바로 고대에는 고속도로였다.
중국 신장,위구르에서 천산산맥을 넘으면 바로 이시쿨이라는 큰 호수가 나온다. 이 호수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고선지 장군의 옛 전장 탈라스 분지가 나오고 여기서 시르다리아(Sir Darya)란 큰 강을 따라가면 사마르칸트에 이른다. 여기서 콘스탄티노플 즉 동로마의 수도로 가려면 카스피해 남쪽을 돌아 지중해에 이르고, 동유럽으로 가려면 아무다리아(Amu Darya)강—아랄해—카스피해 북단—볼가강 하류—크림반도—다뉴브 강을 거쳐 동유럽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크림반도는 고대 주요 교통로의 길목이었다. 크림반도 인구 구성 중 세번 째로 많은 타타르인들은 원래 당나라 때 여러 사서에 등장하는 달달(達怛), 달단(達靼), 달단(達旦), 탑단(塔旦), 달단(韃靼)의 이름이 어원인데 고대 몽올실위 내의 실위인을 가리키며, 이들이 본래의 몽골인이고 그 언어가 원래의 몽골어이다.
그런데 서양인들로서는 외모가 똑 같은 동양인들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동양인들로서 족보가 확실한 중국,고려,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타타르인"들로 불렀으며 특히 러시아는 250년간의 몽고지배를 받던 시기를 "타타르의 멍애"라 부른다.
흉노의 지배를 받던 크리미아는 9세기 말(862년) 노르만의 일파가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에 세운 키에프 공국의 땅이 되었다. 그렇지만 971년 키에프 공국의 지배자 스뱌트슬라브와 비잔틴의 황제 치미스체스와의 싸움에서 크림반도와 발칸반도를 포기하는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이후 비잔틴 령이 되었다. 
그러다가 13세기 몽고의 서정이 시작되면서 이 땅은 다시 몽골 타타르의 땅이 되었고 특히 본격적 서방정벌에 나선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는 1237년 크리미아를 서정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았다.
그 후 몽고가 물러나자 이 땅은 1490년부터 1792년까지 둘궐족의 후예인 오스만투르크의 지배하에 있다가 2차례에 걸친 러시아,투르크 전쟁의 결과로 1792년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이 시기에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2세는 크리미아의 타타르족을 상대로 대대적인 인종 청소 정책을 시작하여 타타르 족을 러시아 곳곳으로 추방하고, 대신 스위스와 독일 기독교도들을 데려와 살도록 했다. 그 바람에 크림의 타타르 인구는 500만 명에서 30만으로 크게 줄었다. 이때 인종청소 정책이 없었더라면 이번에 주민투표에서 러시아의 귀속에 찬성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강제이주 작전은 1930년대에 스탈린에 의해 재탕되었는데 연해주의 30만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내쫓은 것은 경제력과 인구 면에서 압도적인 한인들이 연해주를 차지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후 1954년 구소련의 정권을 장악한 흐루시초프는 크림반도를 자기의 출신지인 우크라이나공화국에 편입시켰는데 이 때는 우크라이나가 독립된 국가가 아니고 소연방(USSR)의 일부였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울릉도를 경상북도에서 강원도로 편입시키는 정도의 의미라 볼 수 있다.
이상의 상황을 요약하면 AD 376년 고트족이 물러난 후, 이 땅의 임자는 훈족이 486년간, 키에프공국이 109년간, 동로마제국(비잔틴)이 266년간, 몽고가 253년간, 투르크가 302년간, 러시아가 199년간, 우크라이나가 23년간 지배하였다.(우크라이나는 1954년부터 따져 60년간이라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는 1991년 이전에는 독립국가가 아니었으니 주장에 무리가 있다)
키에프 공국은 지금의 우크라이나에 있었으니 그 옛날 키에프 공국의 지배까지 합하면 132년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키에프 공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백러시아 모두 자기들의 모태로 삼고 있으므로 우크라이나 혼자 키에프공국의 역사는 우리 만의 역사다 우길 수는 없다.
필자는 1997년부터 17년 동안 러시아,CIS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초기 모스크바에서 현지 직원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회식을 한 적이 있다. 그 중 영업부장은 러시아인, 경리부장은 우크라이나 출신, 자재부장은 그루지아 출신이었는데 셋이서 "크리미아가 누구 땅이냐?"로 열을 올리며 두 시간 이상 토론하는 광경을 보았다.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토론하다 결론으로 내린 것은 "크리미아는 원래 타타르인의 땅이다"였다.
위 연대기에서 보면 훈족,몽고,돌궐이 지배한 기간을 합하면 1000년을 넘는다. 훈족,몽고,돌궐 모두 "타타르"로 보면 이들이 내린 결론이 맞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토는 최후에 실효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나라의 땅이다. 그 원인은 알라스카 처럼 국가간 매매에 의하여, 조약에 의하여, 또 병탄에 의하여 일수도 있다. 다만 무력병탄은 내부에서 시끄럽지 않고 평온이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 이번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무력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속칭 "깡으로" 대들었으면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크림내부의 적군동조자가 3분의 2를 넘으니 그렇게 못한 것이다.
고려는 몽고가 정벌전쟁을 벌일 시 끝판에 나라를 없애지 않고 땅을 조금 할양 받고 휴전한 유일무이한 케이스였다. 그것은 고려가 1231년부터 1273년까지 40년을 '깡으로' 몽고에 대항한 덕분이었다. 여담이지만 일본 학자들 중 한일감정이 싹튼 원조가 고려가 여몽연합군으로 일본 정벌에 나선 때부터라 하는데, 도리어 고려가 40여년간 버티며 몽고에 대항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13세기에 벌써 몽고군의 말발굽 아래 초토화 되었을 것이니 오히려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절을 수백 번 해야 한다.
신라가 삼국통일 후 당에게 먹히지 않은 것도 '깡으로'버티며 당나라와 8년 동안 싸운 덕분이다.
이번 크림사태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북한의 변고 시 우리가 주변국들의 야욕을 물리치고 온전한 통일을 이루자면 '깡으로' 버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영변 핵시설을 없애지 않고 우리가 고스란히 접수할 방법이 있다면 그게 최선의 방법일 지 모른다. 이번 크림사태에서 보듯 외세, 동맹 이런 건 믿을 게 못 된다. EU도 미국도 결정적일 때 망서리고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자신의 힘이 없으면 꽝이다.
이번 크림사태는 우크라이나의 자업자득인 면이 강하다.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될 때 솔제니친은 "다른 나라는 다 쪼개져 나가도 러시아,우크라이나,백러시아'는 쪼개지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적 이해가 없는 작가가 그런 말을 했을 때는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기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이에 대해 거국적 대처 방안을 강구했어야 했는데 내부의 정쟁으로 고스란히 갖다 바친 꼴이 되었다. 주민투표에 대항해 겨우 23년간의 실효지배를 내세우기엔 명분마저 약하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RU라는 남자와 UK라는 여자가 함께 살았는데 사이가 좋을 때 RU가 UK에게 소중한 가보를 맡겼다. 근데 둘 사이가 틀어져 UK가 집을 나가면서 그 보물을 들고 나가버렸다. 근데 나중에 UK가 EU라는 딴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RU가 화가 나 UK를 찾아가 그 보물을 도로 뺏아 버렸다. UK는 맡긴 게 아니라 "그저 줬다"하면서 EU에게 좀 찾도록 도와달라 하고, RU는 "내가 골 비었냐? 그저 주게?"하고….. 문제는 그 보물이 워낙 비싼 거라 RU로서는 그냥 줘버릴 수는 없는 처지……
푸틴은 제 2의 피터대제를 꿈꾸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우크라이나 동부 만이 아니라 전체를 먹으려 할지 모른다.
1653년 당시 폴란드에 예속되었던 우크라이나는 독립전쟁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독립한 뒤 러시아에 '결합'되어도 좋다는 제의와 함께 러시아의 지원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폴란드에 선전포고를 해서 전쟁 결과 우크라이나 반쪽을 할양 받았다.  이번에 거꾸로 당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반면 러시아도 언젠가 자기가 써먹은 그물에 자기들이 당할 수도 있다.
러시아 내에도 자치 공화국이 여럿 있다. 사하공화국 같은 곳은 면적이 우리나라 남북한의 30배 이며 백만인구 가운데 절반이 이쿠챠인으로 모양새가 우리와 흡사할 뿐더러 DNA분석결과 우리와 거의 같다. 만약 여기서 주민투표로 우리는 한국,아니면 미국에 결합하고자 한다 혹은 독립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단 무력으로 보호되는 전제 하에…
땅만해도 러시아 전체의 17.3%에 해당하고 광물자원은 40%를 점한다. 물론 내버려두지 않겠지만 이쿠치아는 1991년 구소련 해체 당시 실지로 독립 움직임이 있었다.
국제질서에서 땅의 전쟁은 언제나 힘이 결정한다.
간섭은 구실을 마련하기 나름이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할 때도 불법정권 타도(인조반정)가 아니었던가? 힘이 있어야 '통일대박'이 현실화 되는 것이지 아니면 망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필자;역사소설가/러시아 사업가)

덧붙이는 글 기사제보로 보냈는데 생나무에도 안 떠서 다시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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