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준 후손, 90 평생 가장 기쁜 날

‘달성을 빛낸 인물’ 7인의 흉상 제막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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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두(sigollee)등록 2014.03.30 16:09
3월 29일 토요일 오후 달성군 현풍면에서는 달성종합스포츠파크 준공식에 이어 '달성을 빛낸 인물' 7인의 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달성을 빛낸 인물'은 달성군이 군 개청 100주년을 맞아 달성종합스포츠파크 입구 달성국민체육센터 옆에 설치하였다.

달성군은 100년 달성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군의 역사성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홍보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00년 달성 인물동산 조성'을 추진해 왔다.

달성군은 공정한 대상자 선정을 위해 전문기관 조사용역과 달성뿌리찾기자문위원회 자문을 거쳤으며 2013년 4월 100년 달성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7명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7인은 일연과 박팽년, 김굉필, 곽준, 곽재우, 김충선, 문영박 들로 달성에서 출생했거나 활동한 인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뚜렷한 업적을 남겨 군민의 귀감이 되고 긍지를 느낄만한 인물이다.

달성군은 2013년 9월 6일(월) '달성을 빛낸 인물 흉상 제작설치 착수보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사업비 2억2500만원을 투입해 2013년 9월부터 2014년 1월까지 5개월간 7인의 흉상과 기단, 업적 표지석, 야간경관조명 들을 설치했다.

비가 오는 날씨 속에 진행된 제막식에는 각 문중의 대표들과 김문오 달성군수, 이종진 국회의원, 대구시장 후보, 군의원 등이 참석하였다.

김문오 달성군수는 경북대학교의 조사용역을 바탕으로 문중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인물을 선정하여, 군민들이 자긍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인물들이 모셔질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종진 국회의원은 '100년 달성 사업 가운데 가장 적은 돈을 들이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며 김문오 달성군수를 추켜세웠고, 문중 대표로 나온 곽준 후손은 '90 평생에 가장 기쁜 날'이라며 고마워하였다.

일연은 비슬산 일대 보당암, 인흥사 등 여러 절에 수십 년 있으면서 <삼국유사>를 구상하였다고 보인다. 박팽년은 단종 복위 운동을 주도한 사육신의 한 명이며, 김굉필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희생된 인물로 성균관과 향교의 문묘에 배향되었다.

곽준과 곽재우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고, 김충선은 일본군 장수로 조선에 귀화한 분이다. 문영박은 일제 강점기 임시 정부를 돕기 위해 의연금을 보내준 공훈이 인정되어 1980년에 건국포장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한편, 이날 문영박의 표지석에는 임시정부에서 보낸 특발문에 본국운성(本國運城)이라 되어 있는데 본국달성(本國達城)을 잘못 적은 것이 아닌가 한다.

문영박(文永樸, 1880. 8. 3~1930. 12. 18)의 독립유공자공훈록은 다음과 같다.

http://search.i815.or.kr/Search/TotalSearch.jsp?sT=3&tid=&v_allword=%EB%AC%B8%EC%98%81%EB%B0%95&x=26&y=9

문영박(文永樸) 1880. 8. 3~1930. 12. 18 號 : 壽峯 字 : 章之 이명 : 文樸

대구 달성(達城)사람이다.

영남의 거유(巨儒)로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부터 1931년 만주사변(滿洲事變)이 일어나기 전 그가 별세할 때까지 13년 동안 전국각지를 왕래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계속 송달해 주어 독립운동을 크게 고무 진작시켰다.

이러한 재정적인 지원을 사례하고, 그의 자손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서 1930년 12월 그가 별세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1931년에 이교재(李敎載)를 국내에 밀파하여 그를 애도하는 추조문과 특발문(特發文)을 보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경상도 책임자로 임명되었던 이교재는 일경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이를 전달하지 못하고 자택 천정에 감추어 두었는데, 광복 후에야 발견하여 비로소 그의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당시 영남지방의 유학자로서 한서(漢書)만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인수문고목록(仁壽文庫目錄)을 펴내는 등 학문적으로 크게 기여하였는데 현재도 달성군 화원면 인흥촌(仁興村)의 수봉정사(壽峯精舍)에는 만권당(萬卷堂)이라는 서고가 남아있다.

임시정부에서 보내 온 특발문 즉 격문의 역문은 다음과 같다.

"임시정부가 세워진지 13년이 됐지만, 아직도 우리가 독립하지 못한 것은 일제의 탄압 때문이다. 우리 임시정부가 세워진 것은 동양평화와 유신(維新)을 크게 내세워 세계평화를 유지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이다.

고인(故人)이 이러한 임시정부를 돕기 위해 의연금을 보내주어 무궁한 국가발전에 밑거름이 된 것을 감사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8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음.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5卷, 國家報勳處, 1988年, pp.566~568.
註・大韓民國臨時政府 特發文(1931. 10. 3) 및 추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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