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늑대와 강아지들>, 남중생들만 가르쳐 온 한 여교사의 교단 일기

나의 중심을 지키면서 아이들과 더불어 여유 있고 즐겁게 교직 생활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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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두(sigollee)등록 2014.04.06 14:44
나는 올해로 교사 생활 20년을 넘어서고 있다. 사립학교에서 고등학교 남학생들과 10년, 중학교 남학생들과 10년을 생활하였다. 매년 반 아이들에게 돌아가면서 <학급일기>를 쓰게 한다. 졸업생들 중에는 교육 실습생이나 동료 교사로 학교 현장에서 만나기도 한다. 이럴 때면 그 시절 썼던 하급일기를 건네주며 지난날을 이야기한다. 중학교로 옮기면서는 해마다 2학년 3반을 맡게 되면 <이삼실록>으로 이름 붙여 매일 돌아가면서 글을 쓰게 하고, 타이핑하여 나눠가진다. 싫어하는 아이들이 제법 많다.
말썽 많았던 한 녀석의 글을 보자.

왜 쓰는지 모르겠다.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 한 게 아닌데도 ○○와 한마디도 못하고 계속 쓰라고 하신다. ○○실록을 쓰면서도 정말 의문이다. 다른 애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만 여기에는 ○○실록을 안 쓰고 싶은 그런 의견이 없다. 나는 ○○실록을 정말로 쓰고 싶은 애들만 썼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선생님은 한 마디도 하지 말라고 자꾸 그러신다. 정말 미치겠다! 선생님은 요새 귀가 안 좋아져서 많이 예민해 진 것 같다. 빨리 나으셔서 내가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다. 우리는 이 ○○실록을 쓰는 것에 쓰고 싶은 애들만 써야한다. 하지만 애들은 그런 말은 잘 못한다. 제발 다른 애들도 이글을 본다면 나처럼 의견을 밝혔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매일 자습시간에 조용하라고 하신다. 수업에도 늘 집중하라고 늘 하신다. 나의 빼어난 얼굴과 아름다운 목소리에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이 녀석은 3학년 올라갈 때 꼭 데려가 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하였다. 3학년 때 한 반이 되자 기뻐 날뛰었다. 2학년 때건 3학년 때건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학년 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는 주위 교사들의 얘기를 듣고 모범 청소년으로 추천하여 표창 받게도 하였다.

지난 방학 때 읽은 <내 어린 늑대와 강아지들>(안정선, 교육공동체벗)은 23년 동안, 남중에서 남중생들만 가르쳐 온 한 여교사의 교단 일기이자 생태 보고서이다. 읽으면서 지난 10년 동안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공감되는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남교사와 여교사의 거리가 느껴지는 지점도 많았다. 그동안 풀꽃선생만큼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고, 교직 생활을 기쁨과 즐거움을 갖지 못한 점들이 몹시 반성되었다.

요즘 학교는 위에서 하라는 거는 많고 시간은 쫓긴다. 허나, 이 책으로 인해 언젠가부터 갖게 된 우리 반의 급훈 '산처럼 의연하게, 바다같이 정열적으로', 나의 중심을 지키면서 아이들과 더불어 여유 있고 즐겁게 교직 생활을 하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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