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 주연의 영화 <역린>이 순항 중이다. 정조(현빈 분)는 왕위에 오르고 나서도 암살의 위기를 여러 번 겪었는데, <역린>은 그중 '정유역변'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역사를 가르치는 나는 영화 속 어느 부분이 팩트이고 어느 부분이 픽션인지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전문가'라 하기에는 참을 수 없는 어리바리함을 보였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그리고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평범한 '국민'으로서는 손색없이 영화를 즐겼다.
<역린>은 애초부터 역사에 탄탄한 기반을 둔 사극 영화라고 부르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무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실제 역사적 배경과 정조라는 인물을 잣대로 영화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내 견해로는 단지 역사적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액션·사랑·우정·운명 등 이러저러한 극적 재미를 일으킬 요소들을 버무린, '짬뽕'이라기보다는 '비빔밥' 같은 영화다.
영화는 작품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슴을 찌르는 두 개의 대사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입속에서 되뇌어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라 굳이 줄거리를 소개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백성' 축에도 끼지 못했던 복빙이
혜경궁 홍씨(김성령 분)가 정순왕후의 서재에 어린 나인 복빙이와 함께 묶여 있었다. 세답방 나인 월혜(정은채 분)는 이들을 찾아와 같은 방을 썼던 정든 복빙이를 달랬다. 이때 혜경궁 홍씨는 월혜에게 왕의 암살 소식을 빨리 알려야 한다고 채근하는데, 월혜는 혜경궁을 보며 한마디 한다. 나는 이때 월혜가 "이미 조치를 취해 놓았습니다"라는 류의 대답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선과 악의 구도로 정조는 선이고 정순왕후는 악이라고 구분돼 있을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월혜의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 어린아이가 왕대비를 독살하고 나서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영화 속에서 혜경궁 홍씨는 젊은 시어머니 정순왕후를 죽이고 아들 정조를 지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짰다. 10살밖에 안 되는 어린 복빙이를 궁으로 들여와 나인으로 만들고, 정순왕후 방에 들였다. 그리고 왕후의 귀여움을 받으며 신임을 얻게 했다. 그 어린 것이 설마 왕후를 독살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 틈을 노려 복빙에게 독이 든 차를 배달 시켰다. 정순왕후는 그것을 이미 알아채고 반격을 가했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두고 월혜는 이렇게 혜경궁 홍씨에게 쏘아붙였다. "이 어린아이가 왕대비를 독살하고 나서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그렇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어린 복빙이를 직접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니지만, 정순왕후를 죽인다고 해도 복빙이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걸 모를 리는 없었다. 어린아이가 죽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혜경궁 입장에서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아들 정조를 살리고 왕권을 유지하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 복빙이는 '국민'이 아니었고, '백성' 축에도 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체면과, 권력과,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숨 쉬는 인형'이었을 뿐이었다.
제 역할 못한 정부의 '선장·항해사·승무원'
▲ 진도 팽목항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한 뒤 가족대책본부 천막을 나서고 있다. 왼쪽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 남소연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고등학생들과 여러 승객들을 태웠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사고 발생 이후 한 달이 가까이 지난 지금도 수색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여러 형태로 사고의 원인이 검토됐다. 정부와 보수 언론에서는 선장의 비도덕성과 선주의 개인비리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이것들이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전에도 비도덕적인 선장, 비리를 저지른 자본가들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이런 비극을 막을 수는 없다.
보다 더 구조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선장부터 비정규직으로 채용돼 고용이 불안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선원들 간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점, 비용 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무리하게 배를 개조하고 과적해 사고에 취약했다는 점, 그렇게 사고의 징후가 여러 번 있었어도 이윤 추구를 위해서 무리하게 배를 운행했다는 점,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선박 연령의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는 '규제 완화'가 '안전 완화'로 작용했다는 점 등등.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재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는 우리 정부의 '선장, 항해사, 승무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제 역할을 하지 않는 한 이런 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는 생존자, 실종자, 사망자의 숫자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초기 생존자의 숫자는 몇 차례 바뀌더니 결국 174명으로 집계됐다. 안타깝게도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도록 텔레비전 화면의 생존자 숫자는 변함이 없었다. 한 명도 추가로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물론 정부로서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을 게다, 사람이라면…. 그런데 바다에서 배가 침몰했을 때 배 안의 승객들이 살아서 구조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 아닐까. 그렇다면 소위 골든타임 안에 총력을 기울여서 구조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사고 초기 자발적인 구조활동을 벌이려던 잠수사와 선박들은 활동을 금지 당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말 정부 발표대로 민간 활동이 오히려 구조에 비효율적이거나 방해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의 활동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컨트롤 타워'에서 관과 민의 구조활동을 전체적으로 지휘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시는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일부 언론을 통해 수백 명의 잠수사와 수백 척의 구조 선박 및 헬기를 동원해 마치 전시작전을 방불케 하는 총력 구조활동을 벌이는 것처럼 선전했다. 하지만, 결국 드러난 것은 10여 명의 잠수사와 몇 대의 선박 및 헬기뿐이었다.
속이 타들어 갔던 실종자 가족들이 언론 보도의 구조활동과 실제 현장에서 보여지는 구조활동이 터무니없이 차이가 있는 것을 보고 분통을 터뜨린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대책본부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으면 배 안에 갇혀 있던 학생들과 승객들이 살아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세월호 선장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했고, 재난대책본부는 '가만히 있기만' 하고 방송에서만 구조한 꼴이다.
오직 지극히 정성을 다하여야...
▲ 영화 <역린> 속 정조(현빈 분)는 대립세력인 구선복(송영창 분)을 감동하게 해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이미지는 영화 <역린> 중 한 장면. ⓒ 초이스컷 픽쳐스·파파스필름
<역린>에서 인상적이었던 두 번째 대사는 <중용> 23장이다. 정조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구절로, 내시였던 상책(정재역 분)에게 여러 차례 암송하게 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은 정조가 신하 한 명과 말을 달려 구선복(송영창 분) 장군의 부대를 찾아갔던 장면이다. 당시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구선복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을 때 그를 조롱하던 인물이었다. 그를 보는 정조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홍국영(박성웅 분)은 구선복과 여러 차례 부딪히고 정조에게 안하무인인 구선복을 그대로 둘 것인지 묻는다. 그런 구선복에 대해 정조는 "생각해 둔 바가 있다"라고 답했다.
벌판에 대군이 포진해 있고, 그들 앞에는 출동 명령을 곧 내릴 것 같은 구선복 장군이 말 위에 올라 있다. 정조는 혈혈단신으로 나아가 구선복 앞에 칼을 꽂고 말한다.
"구선복 장군은 그 칼로 나를 벨 것인가? 아니면 나의 칼이 돼 부도덕한 세상을 벨 것인가?"
정조를 적대시하던 대표적인 노론의 장군인 구선복이었지만 정조가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것에 감동하게 되고 이내 변해 정조의 편에 서게 됐다. 물론 영화 속 이야기긴 하지만 달랑 부하 하나를 대동하고 수천의 군대를 마주했던 정조, 그의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결국 세상을 변하게 했다.
정부의 대처, 감동도 위로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 수많은 정치인들이 현장과 분향소를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진도를 찾았다. 그녀는 "1분 1초가 급해, 구조 최선 다해달라"라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지극히 지당한 말씀임에도 그녀의 말은 '영혼 없는 명령'으로 들렸는지, 재난본부의 구조 활동은 지지부진했다. 그리고 1분 1초는커녕 하루 이틀이 지나도 구조소식은 물론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도 빠르게 진행되지 못했다.
4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안산 분향소를 방문했다. 검은 옷을 입고 분향소 앞을 혼자 걸어가는 모습은 잔잔한 음악과 함께 애도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 보수 언론에 나온 그녀의 모습은 한 편의 멋진 광고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나온 '박근혜 대통령 안산 분향소 방문 실제는 이랬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면, 그녀가 한 편의 광고를 찍고 있을 때 주위에서는 유족들의 애끓는 비명과 고함이 분향소를 가득 메웠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듣지 않았던 건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에 심취해 듣지 못했던 건지, 1분 동안 하염없이 걷기만 하다가 카메라를 거둔 순간 돌아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애도 이미지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보수 언론은 그 정성을 효과 만점의 광고 영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의 정성은 자식을 잃은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고,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은 듯했다.
5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을 방문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후보가 진도를 방문해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의 국격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침몰했다"라고 말한 직후였다. 그동안 구조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정부의 무능을 여실히 드러내는 기간이었고, 박 정권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이런 정부 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참담하게 느끼는 기간이었다.
지극 정성을 다했습니까
▲ "세월호 참사, 무능정권 물러나라" '세월호 참사 관련 특검 실시'와 '무능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감리교신학대 학생들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강제연행되고 있다. ⓒ 권우성
그로부터 4일 후인 어버이날, 감리교신학대학생들이 광화문 세종대왕상에 올랐다. '유가족을 우롱하는 박근혜는 물러가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자, 주위의 경찰이 달려왔다. 경찰은 '1분 1초'를 다투면서 대학생들을 끌어내렸다. 단 한 명의 대학생도 '실종'되지 않았고 높은 동상 위에서 전원이 안전하게 '구조'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많이 억울한가 보다. '대통령이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직접 잠수해서 승객들을 구조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박근혜가 책임지라고 비판하냐'고 말한다.
그렇다. 어느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이 잠수복 입고 직접 구조활동에 나서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한 순간부터 현재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재난본부와 경찰들, 유가족과 국민들은 영향을 받는다. 대통령이 말하지 않아도 겉으로 배어 나오는 태도에서 구조 작업의 향방은 결정된다.
정조는 대립 세력에 속해 있던 구선복을 감동시켰고 그를 변화시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난본부가 '구조작업'이라는 커다란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감동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보수 언론과 경찰들을 감동시켰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보수 언론은 박근혜 정부의 생존을 위해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고, 경찰은 항의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안전하게 구조하는 일에 1분 1초를 낭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정조처럼 그녀와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켰더라면, 반대편은 아니지만 자녀들의 무사귀환을 애타게 빌던 가족들을 감동시켰더라면, 최소한 자신의 '충복'인 안전행정부와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 공무원들이 '커다란 일'만이라도 최선을 다할 수 있을 정도로 감동시켰더라면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비참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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