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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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만(youmany)등록 2014.05.25 19:13
  내가 초등학교 2~3학년 무렵에 우리 집에는 점박이라는 고양이가 있었다. 우리가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은 같은 마을에 사는 강경댁이라는 어머니 친구 분 덕택이다. 이 분은 충청도 강경 사람이라 해서 강경댁으로 불리운다. 내 고향에서 강경은 자동차로는 한 시간 남짓 거리다. 그러나 5~60년대부터 강경 우시장을 출입하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기억에 의하면, 강경 길은 걸어서 꼬박 하루해가 걸리는 먼 길이라 했다. 강경은 예로부터 개성의 송상(松商)에 이어 강상(江商)이라 해서 상업으로 알아주던 지역이었다. 일제시대 상업 통계에 따르면, 강경은 평양, 개성, 김천, 대구와 더불어 전국 5대 시장으로 유명했다. 강경장에서는 서해바다에서 잡힌 생선을 가공한 젓갈과 건어물의 거래가 많았다. 또 이 지역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곡물은 물론 내륙지방의 특산물인 소가죽이 수집되어 한양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이었다. 타관사람, 특히 장사로 유명한 고장 출신인 이 분이 언제부터, 무슨 사연으로 우리 마을에 살기 시작했는지는 나로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
이분은 지역의 5일장마다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분이다. 같은 마을의 비슷한 연배이기도 해서 우리 어머니와 매우 친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 이분이 어느 날 아이들도 있으니 키워 보라며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평소 잡곡을 거래하던 집에서 팔던지 기르던지 알아서 하라며 새끼 세 마리를 주어서 가져왔다고 했다. 우리 집에 온 녀석은 암컷으로 등 부위에 달마시안처럼 검은 점박이 무늬가 새겨진 귀여운 녀석이었다. 달마시안과 다른 것은 배 부분은 흰색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에 강아지는 몇 차례 키워 본 적이 있어도 고양이는 처음이다. 강아지에 비해서 고양이는 키우기가 훨씬 까다롭다고 들었다. 강아지는 밖에서 키우지만, 고양이는 방안에서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집도 좁고 키울 장소가 마당치 않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어머니도 고양이를 받아드리기를 꺼렸다. 그러나 강경댁의 호의도 있고, 우리 형제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바람에 키우게 된 것이다.
장사꾼으로서 강경댁의 수완은 썩 좋은 편이라고 들었다. 이 분이 주로 거래하는 품목은 쌀과 잡곡류 등 곡물이었다. 이 분의 장사 수단은 장터에 가만히 앉아서 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산지를 돌아다니며 양곡을 수집하는 형태의 사업을 했다. 그러므로 남보다 빨리, 좋은 품질의 양곡을 좋은 가격에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대형마트의 곡물수집담당 바이어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새로울 것 없는 일상화된 사업 방식이지만, 거의 4~50년전에 이미 이런 방식의 사업을 구상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어머니도 이 분과 거래했다.
어머니는 가용이 필요할 때면 우리 집에서 나오는 잡곡류를 이분에게 넘기곤 했다. 지금은 시골 살림이라 해도 모두가 고령화 되어 있어 땅이 있더라도 일손이 달려서 여러 가지 잡곡을 골고루 심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만해도 무슨 곡식이든지 집안에서 필요한 정도는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했다. 자급자족형 농업이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기에 정부 방침에 따라 1년씩 휴경을 하기도 하고, 논에다 감자 등 밭작물을 심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쌀이 귀했다. 그래서 논에는 오로지 쌀농사를 지었고, 잡곡은 주로 밭에만 심었다. 논에서 생산된 벼는 추곡수매제도에 따라 정부에서 일괄 수매를 통해 가져갔다. 세금이나 비료대금과 같은 영농자금과 자녀들의 학비, 곗돈 등 큰 씀씀이는 추곡수매를 통해 해결했다. 그러나 생활비 등 가용에 쓰이는 소소한 돈은 그때그때 잡곡을 팔아 해결하곤 했다.
잡곡은 수확기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있었다. 서리태로 불리는 검정콩, 두부나 된장, 간장용 메주콩을 비롯하여 팥, 수수, 조, 참깨, 들깨, 메밀 등은 가을추수가 끝나가는 늦가을에 거두었고, 밥할 때 조금씩 섞어 먹으면 색깔도 예쁘고 맛있는 완두콩이나, 줄기로 뻗는 동부콩, 제비콩 등은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여러 차레 수확이 가능했다. 어머니는 산비탈을 갈아 일군 밭은 물론 마당 한쪽과 담장 밑까지 한 뼘의 땅도 빈 땅으로 놔두지 않고 여러 가지 잡곡의 종자를 뿌려 두었다가 알뜰하게 가꾸고 거두어 잘 말려서 식구들이 먹기도 하고 급한 가용이 필요할 때 많은 양은 아니더라도 한 두말씩 강경댁에게 넘겨서 귀중한 현금을 장만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 집에 드나들던 강경댁의 호의로 귀염둥이 점박이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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